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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권지안 작가
 그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권지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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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소개가 별도로 필요할까. 2006년 타이푼의 메인보컬로 데뷔해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넘도록 전쟁 같은 연예계에서 버티고 있다. '솔비'다. 하지만 최근엔 권지안이라는 본명을 더 자주 쓴다. 2012년에 첫 개인전을 연 그는 2015년에는 음악과 미술을 결합한 '셀프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신선한 충격을 던져줬다.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그는 지금 가수보다 화가로서의 삶을 꿈꾸고 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1시간 남짓 떨어진 경기도 장흥으로 차를 몰고 갔다. 한적한 유원지가 있을 법한 아담한 길가에서 오두막집이 눈에 들어온다. 통나무로 지어진 건물은 언뜻 보기에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이다. 굳이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입구에서부터 아티스트 냄새가 코를 찌른다.

표지판에 적힌 글자는 '빌라빌라콜라'. 솔비의 작업실 이름이란다. 아니 권지안의 작업실이 맞겠지. 특이하다 생각했는데, 어떤 이유로 이렇게 이름을 지었는지 물으니 말괄량이 삐삐를 좋아해서라고 했다. 삐삐네 집인 '빌라빌레쿨라'에서 착안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그곳에서는 마법이 이뤄질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내부로 들어가니, 그가 몇 년간 그려왔던 크고 작은 그림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바닥엔 최근까지 작업을 이어온 것으로 보이는 물감과 재료들이 널브러져 있다. 정리가 안 된 모양새에서 작업하면서 느꼈을 고민이 전해진다. 그의 그림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미술 작품들과 조금 다르다. 정해진 규칙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게다가 붓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대신 손을 이용하고 때로는 온몸을 캔버스에 던지기도 한다.

그의 최근 활동은 미술계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방송에서도 주목했고, 최근 경매에서 적지 않은 가격으로 거래도 됐다.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은 것일까. 세계적인 미술 축제에 초청받았다. 유럽 최대의 페스티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말이다.

음악에서 정상을 찍었는데, 미술로 전향했다. '전향했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음악보다 미술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인사동에서 막을 내린 개인전 <Real Reality; 불편한 진실>은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관람했다. 작품은 추상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작가가 어떻게 느꼈을지 짐작하게 되는 작품. 그는 그림을 설명하면서 '치유'를 언급했다. 그에게 치유를 받아야 할 만큼의 아픔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쓰나미 같이 밀려온 불행
 
 자신의 작품을 전시한 개인전 'Real Reality'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권지안 작가
 자신의 작품을 전시한 개인전 "Real Reality"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권지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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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시작하면서 그가 아픔을 고백했다. 2009년 온 세상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동영상 사건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 허위임이 드러났고, 동영상을 유포한 자는 체포됐다. 그러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2년 동안 당사자는 죽지 못해 사는 심정이었으리라. 정상을 달리던 스타는 방송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입은 정신적 충격으로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할 정도로 삶의 이유마저 희미한 시기였다. 

"2009년 어느 날 매니저가 동영상을 전해줬어요. 처음엔 가볍게 넘겼죠.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메신저를 통해서 퍼지더라고요. 제 의지랑 상관없이. 엄마는 물론 가족, 친구들까지 다 봤어요. 그런데 어느 날, 진위 여부를 확인도 안 하고 기사가 터졌어요. 단정 짓는 것처럼 말이죠. 엄청나게 이슈가 됐어요. 오해는 걷잡을 수 없이 퍼졌어요.

주변에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봤는데, '네가 나서면 더 확산되니까 나서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동영상의 당사자에게도 피해가 갈까봐 더 이상 이슈를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얼마 있다가 경찰에서 회사로 연락이 왔어요. 조치를 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 연락을 했대요. 그래서 고소를 하게 됐죠. 유포한 자들을 다 잡았는데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더라고요. 심지어 고등학생까지…."


안 좋은 일은 한 번에 몰려온다. 당시엔 개인적인 일까지 불행이 겹쳤다. 심지어 집에 도둑이 들어 다 털리기도 했다. 게다가 소속사가 바뀌는 시기였는데 새로 옮긴 곳마저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정신없이 지낸 2009년을 뒤로하니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5살부터 연예인을 꿈꾸며 살아왔고 연습생 시절을 거쳐 20대 초반에 그 꿈을 이뤘는데…. 과연 이게 뭔가?'라는 좌절감을 느꼈다. '내가 생각한 꿈이 이게 맞나?'라는 자괴감마저.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정신적으로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쓰나미같이 밀려오는 불행은 그가 감당하기에 벅찼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당시의 정신적 충격은 심리 상태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누군가 "심리치료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피아노를 비롯해 꽃꽂이, 기타 등으로 하루를 쉬는 시간도 없이 다 채웠다. 피아노를 가르치던 선생님께 물었다. 미술을 배우고 싶은데 그림 그리는 분들 중에 아시는 분이 있냐고. 마침 그 선생님의 친동생이 초등학교 앞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지체할 것 없이 다음날 바로 소개받았다.

선생님은 그를 진심으로 대했다. 그에게 왜 이걸 배우고 싶은지 이유를 고백했다. 선생님은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거 같았다. 언젠가 책 한 권과 스케치북을 사가지고 왔다. 무언가를 건네주며 똑같이 그려보라고 시켰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틈 날 때마다 똑같이 그려보라고 했다. 그와 그림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힐링이었다.

"세상에 내 편이 단 한 명도 없을 거 같았는데 그는 내 편이었어요."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어느 날 데생이 지루해져 물감으로 그려보고 싶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색을 쓰는 법을 알려줬다. 마음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이끌어냈다. 선생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야기를 글로 써보세요. 그리고 그것을 일기처럼 그림으로 그려보세요."

2010년 미술을 시작했고, 2015년엔 음악을 캔버스에 그리는 '셀프 컬래버레이션' 시리즈를 선보였다. '음악 하는 솔비와 미술 하는 권지안의 만남'. 미술에 점점 빠지면서 권지안의 작업 세계가 궁금해졌다. 그는 한동안 미술에 몰입하면서 더 깊은 욕구를 쏟아냈다. 미술 서적도 뒤졌고, 미술사도 공부했다. 그런 고민을 털어놓으니 선생님은 일러스트를 알려줬다. 지금의 권지안을 만들어준 '추상'과 '현대미술'의 개념이 자리 잡히는 순간이다.

"삶과 일치된 그림을 그려보는 게 어떠니?"
 
 권지안(솔비) 작가는 여성의 삶을 표현한 퍼포먼스 '레드'를 선보이고 있다.
 권지안(솔비) 작가는 여성의 삶을 표현한 퍼포먼스 "레드"를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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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영화계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에 갔다가 현재 소속사 대표를 만났다. 당시 가나아트센터에서 미술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전문가였기에 그를 붙잡고 많은 것을 물었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라붙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대하던 소속사 대표가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삶과 일치시킬 수 있는 그림을 그려보는 게 어떠니?"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삶을 고민했다. 삶이 뭘까? 어렵게 고민해서 그에게 건넸다. "어려서부터 무대에 서는 게 제 일이었어요. 음악을 그림으로 표현해보고 싶어요." "그거 재미있겠네. 어떤 방식으로 해볼까?"

몇 번의 안무를 짜고 오랫동안 연습했다. 그동안 죽을힘을 다한 동작이 한 번의 무대로 사라지는 게 아쉬웠다. 그래서 이렇게 날려버릴 바에는 연습한 것을 캔버스에 흔적으로 남기자 다짐했다.

2017년부터 최근까지의 작품들을 모아 전시를 열었다. SNS를 통해서 알려진 우리 사회의 불편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들이다. 그동안 그렸던 70여 점을 모았다. 시리즈는 <레드>(RED), <블루>(BLUE), <바이올렛>(VIOLET)으로 이어진다.

먼저 2017년에 선보인 <레드>부터 소개하자면, 이는 상처받는 여성의 삶을 대변한다. 아마도 그가 여성으로서 겪었던 수치와 상처에 관한 이야기인 듯싶다. 이듬해 선보인 <블루>는 계급사회와 사회계층 간의 불평등을 표현한다. 퍼포먼스엔 슈트가 등장하는데, 이는 자신의 계급을 높이고 싶은 현대인의 욕망을 드러낸 오브제다.

하지만 보이는 외적인 것이 정말로 중요한가를 되묻는다. 실제로 퍼포먼스에 사용된 노래 <클라스 업>의 가사엔 'meaningless'(의미 없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시리즈를 마감하는 <바이올렛>은 아름답게 포장된 사랑의 이면이다. 이별의 흔적인 '멍'의 색깔을 나타내는 아픔. 결국 그가 받았던 상처를 표현한 것이다.

2017년 5월, KBS <뮤직뱅크>에서 이 퍼포먼스를 라이브로 공개해 화제가 됐다. 원래는 가나아트센터에서 언론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쇼케이스 작품이었는데 이것이 방송으로 발전한 것이다. 생방송 직전에 PD와 상의했는데, 지금껏 한 번도 선보인 적 없는 파격이 두려웠다. 하지만 PD는 그를 믿어줬다. 나중에는 타 방송사의 음악 프로그램에서 "우리는 왜 안 해주냐?"라는 볼멘소리까지 들었다.

생방송이 나간 후 큰 이슈가 됐다. 실시간 검색어의 상위권을 휩쓸었고, 방송 조회 수가 무려 30만을 넘기며 댓글도 넘쳐났다. "충격이다", "왜 애들 보는 프로그램에서 이런 걸 하냐?"라는 댓글도 있었다. 나중에 PD에게 괜찮은지 물으니 "정 안 되면 잘리지 뭐"라며 안심시켜줬다. 당시엔 그만큼 심각했다. 그러나 초반의 부정적인 분위기가 반전됐다. 아이돌 후배도 "음악방송에 변화가 필요했는데 선배가 해줬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문화예술 시사 월간지 '문화+서울' 8월호의 인터뷰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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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시사 월간지 <문화+서울>의 편집장으로, 매주마다 한겨레 신문에 '주간추천 전시/공연'과 '사람in예술' 코너에서 글을 쓰고 있다. https://bit.ly/2M2J5y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