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 40분, 영화 티켓을 받았다. 상영까지 약 1시간을 남겨두고, 저녁을 먹으려고 돌아다녔다. '알랭 뒤카스' 영화라고 해서, 파스타를 먹을까 했다(파스타는 이탈리아에 더 가깝긴 하지만, 같은 유럽이니까 그게 그거라고 여겼다). 영화관 근처 파스타 집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다가, 파스타를 문득 촉박한 시간에 먹는다는 게 조금 어색할 것 같았다. 파스타는 왠지 여유를 갖고 천천히 맛을 '음미'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급하게 먹어 삼킨다는 말은 국밥이나, 김밥과 조금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프랑스 요리 영화를 보기 전에 국밥이나 김밥을 먹어 삼키는 건 더더욱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음식. 하얀 면 위를 검은색이 우아하게 덮어주는 짜장면. 불어로 하면 '좌르장면느'. 오늘 저녁은 짜장면이다. 그 정도면 파스타를 동양식으로 충분히 대체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나름 탁월한 선택이라고 먹는 내내 흡족했다.

영화 속 그는 지금까지 받은 미슐랭 스타만 21개라고 했다. 1984년에 미슐랭 2스타를 받고, 1990년에는 최연소로 미슐랭 3스타를 받았다는 기록을 세운 다음, 1997년의 파리와 2005년의 뉴욕에서 트리플 3스타를 달성했다고. 그를 '프렌치 퀴진의 거장'이라고 일컫는 칭호는 결코 호들갑스러운 게 아니다.

과연 영화 속 그의 면모는 거장다웠다. 유일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이동시간에도 그는 결코 쉬지 않았다. 내내 레스토랑의 경영을 생각하거나, 음식에 대한 고민을 했다. 이동 거리도 입이 떡 벌어진다. (자신의 세계) 안에 갇혀있으면 발전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그는, (자신의 세계) 바깥으로 나가려 한다. 한달음에 일본 도쿄, 교토로 가서 스시와 빵을 먹고, 홍콩으로 가서 캐비어를 먹는다. 뉴욕에서는 와인을 마시고, 런던으로 가서 스테이크를 먹는다. 영화에서 그는 정말 많이 먹는다. 확실히 그는 장이 큰 '거장'이었다. 이 영화 제목이 '위대한 여정'이라는 것도, 왠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영화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 스틸컷

영화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 스틸컷 ⓒ 아웃사이드 필름, (주)미로스페이스

  
영화는 알랭 뒤카스가 베르사유 궁전 내의 '오흐'(Ore) 레스토랑을 열기까지의 2년을 담았다. 카메라는 분주하게 그의 삶을 쫓는다. 거장의 일상을 찰나라도 놓칠까 봐, 재빠르고도 섬세하게 카메라를 그에게 가져다댄다. 레스토랑의 운영 회의, 그가 먹는 음식의 종류들, 바라보는 풍경들, 그런 것들이 영화에 세세히 담겼다.

영화를 보기 전,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배가 고파지면 어떡하나, 라는 생각을 조금 했다. 그런데 그가 먹는 음식들이 전혀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캐비어를 보며, 저건 어떤 맛일까 라는 호기심은 많이 일었다). 비슷한 유럽풍 음식이 다채롭게 나오는 영화 <트립 투 스페인>을 볼 때는 군침이 돌았던 것을 생각하니, 내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이 영화에는 분명 그보다 훨씬 더 진귀한 음식들이 나오는데 왜 그런 걸까.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질문이었다. 이 글을 쓰며, 그 질문을 소화해보려고 생각했다.

그건 '이질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가 만드는 음식은 내가 전혀 먹어보지 못한 요리다. 그렇다면, 단지 생경하다는 이유 때문에, 그러니까 애초에 맛본 적 없으니까 군침이 돌지 않는 걸까. 하지만 영화 <트립 투 스페인>에서의 음식 역시 이전에 맛본 적 없었지만, 맛있어 보였다. 그것과 이 영화는 무엇이 다른 걸까.

피사체. 피사체가 달랐다. <트립 투 스페인>에서는 맛을 느끼는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을 담았다. 이 영화에서 그런 장면은 쉽게 볼 수 없었다. 단지, 알랭 뒤카스만 맛있게 먹었을 뿐. 그가 만든 음식을 사람들이 먹으며 어떻게 감격에 젖게 되는지, 어떤 맛을 음미하는지 등의 모습은 아웃 포커싱으로 흐릿하게 처리됐다. 이 영화의 초점은 '알랭 뒤카스'이기 때문이다(사실 이 영화의 목적이 관객들에게 식욕을 돋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영화를 기획한 감독의 선택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영화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 스틸컷

영화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 스틸컷 ⓒ 아웃사이드 필름, (주)미로스페이스

  
한편으로 나는 '알랭 뒤카스'라는 거장의 면모에서 매력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는 너무 매끈했다. 빈틈없이 철저하고,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 완벽했다. 옛날에는 왕만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을 나름대로 변주해서 요리하는 고급스러운 손길처럼, 그는 그 자체로 우아한 고급이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나는 짜장면스러운 게 더 끌린다. 그게 더 빈틈이 많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면과 면 사이의 성근 틈으로, 검은 장이 스며들고 그것을 한입에 넣으면, 입 안의 검은 동굴 안에서 꿈틀대며 넘어간다. 그렇게 한 그릇을 뚝딱하면, 딱 적당하게 포만감이 든다. 이 정도면 됐다, 라고 말하는 게 좋다. 이 정도면 됐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아무래도 나는 '거장'이나 '위대'보다는 작은 위와 장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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