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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 '공생', '상생', '공유' 이제는 지겹다. 뜨거운 심장에서부터 나오는 말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가 시키는 말을 그냥 받아쓰는 것 같아서 듣기 싫다. 우리 사회에 공존을 누가 해치고 있나? 도둑이 제 발 저리고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공존을 저해하는 자들이 이 성스러운 단어를 입에 올릴 때면 내 뜨거운 심장에서 공존의 거북함이 느껴진다.

언제부터인가 뉴스만 보면 '4차 산업혁명', 'AI', '인공지능', '로봇'과 같은 단어가 쏟아진다. 동시에 등장한 신개념이 있다. '공유경제'다. 정부는 '혁신성장'이란 미명 아래 로봇 산업을 미래에 밥그릇을 책임져줄 핵심 동력으로 보고, 언론은 나름의 노력으로 대중을 이해시키려 한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미적지근하고, 그 가운데 기업은 규제완화를 외친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체로 하나의 문제로 귀결된다. 바로 '일자리' 걱정이다.

정부는 예전에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며, 다시 쓰자)' 운동하듯이 '공유경제'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고 쉽게 말하지만 그럴듯한 소망일 뿐이다. 이미 유럽 최대 무역항인 네덜란드 로테르담은 사람이 하는 일을 로봇이 대부분 하고 있고, 일본 언론은 2030년이 되면 자국 내에 없어지는 일자리를 대략 240만 개까지 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고용정보원의 '기술 변화에 따른 일자리 영향 연구 보고서'를 보면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2025년 취업자 2561만 명 중 1807만 명(71%)이 '일자리 대체 위험'에 직면한다. 이제 로봇과 인간의 전쟁은 영화 속에서나 보는 이야기가 아니게 됐다.
 
 더 이상 앞만 보고 빠르게 달려서는 안 된다. 주위를 돌아보고 미래를 질문하며 옆 사람과의 공존부터 실천해야 한다.
 더 이상 앞만 보고 빠르게 달려서는 안 된다. 주위를 돌아보고 미래를 질문하며 옆 사람과의 공존부터 실천해야 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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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지금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고용한파를 걱정하지만 일단 우리나라만 놓고 보자. 우리는 이제 겨우 신분제 사회와 식민지 시대를 넘어선지 반세기 조금 지났다. 태어났을 때부터 가진 국적, 성별, 경제적 상황 등은 강제 노역의 아픈 역사를 넘어 지금껏 갑을 구조 아래 온갖 부당함을 겪으면서도 참고 일하게 만드는 고장 난 컨베이어 벨트로 작용했다.

아직도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처리 비율은 내국인의 산재처리 비율보다 10배 가까이 낮고,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는 OECD에서 불명예 1위다. 부익부 빈익빈은 갈수록 심해져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부모님 직업으로 왕따를 시키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어느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우리는 '경제성장'을 위해 '공유'란 거룩한 이름을 입에 올린다. '자율 주행 자동차', '자동화된 집', '필요할 때 심부름을 대신해주는 서비스'… 이러한 새로운 산업은 많은 사람들의 돈과 시간을 아껴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성장한 거대 플랫폼 기업은 다수의 저임금 플랫폼 노동자를 만들어내고, 기존의 유사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갈 곳을 잃고 있다. 더 심각한 건, '아마존',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은 이미 많은 플랫폼 노동자 또한 로봇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택시업계의 계속된 파업도 같은 맥락이다. '타다'란 플랫폼 기업은 막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차량 소유주와 손님 사이에 연결 망을 구축한다. 이미 6년 전 자율 주행 서비스 '우버 택시'를 법적으로 금지했지만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이란 거대한 흐름에 다시 한번 조금씩 발맞춰간다.

택시 기사는 분노한다. 불공정한 경쟁 시스템을 그들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쏘카' 이재웅 대표는 죽음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말라고 했지만 택시 기사의 분신자살은 우리 사회가 빚은 비극이며 해결해야 할 과제다.

지금 택시업계가 들고일어나는 현상은 우리가 앞으로 맞이할 큰 소용돌이의 단면을 보여준 거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알파고와 이세돌'의 싸움을 볼지 모른다. 그저 흥미롭게만 여긴 로봇 뉴스는 이제 내 삶의 문제로 다가온다. 그런 가운데 전 세계는 이미 인간의 노동생산성에 최소 6배가량 효율성을 내는 로봇과 어떻게 하면 공존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자본가에게는 아직도 흥미로운 고민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노동자에게는 불안한 걱정거리일 뿐이다. 함께 사는 가족, 내 옆에 사는 이웃과도 공존이 어려운 마당에 로봇과의 공존이라. 이건 마치 도망갈 구멍도 만들어놓지 않고, 먹이를 다투는 생쥐들 한가운데 큰 고양이를 놔둔 것과 다름없다. 더 이상 앞만 보고 빠르게 달려서는 안 된다. 주위를 돌아보고 미래를 질문하며 옆 사람과의 공존부터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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