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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광복절 74주년 기념식을 시청하다가 두 시를 보았다. 국가기념일에서 대통령이 시구를 인용하는 것은 드물지 싶다. 그 시는 김기림의 시 새나라 송(頌)'이다. 그리고 또 하나 축가 중 하나로 부른 것은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이다. 

김기림의 시 중 아주 낯선 작품인데 대통령이 직접 뽑은 시인지 연설비서관이 찾아서 안내한 것인지 묻고 싶기도 한다. 아무튼 김기림의 시 4연의 마지막 행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 세워 가자'가 작금의 현실에 가장 어울리기에 힘 주어 여러 번 이야기한 듯 하다. 해방후 조국을 '시멘과 철로 단단히' 나라를 만들어 어떠한 외세에도 우리의 주권을 확고히 하자는 김기림 시인의 외침이 70년이 지난 지금과 들어맞기에 인용한 것이 아니었을까?

김기림은 초기 모더니즘을 개척한 시인으로 문학 교과서에 한두 편은 실린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이라면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라는 시를 알 터이다. '흰나비가 바다를 청무우밭으로 착각해서 내렸갔다가 소스라치게 올라오는 시'이다. 이제 그 흰나비는 광복을 맞아 그런 두려움이 없을 게다. 거센 바다가 아니라 희망이 앞에 놓여있기에 김기림 시인은 그 마음으로 새나라를 그리며 칭송하는 시를 쓴 게 아닐까?

새나라 송(頌)    김기림 

거리로 마을로 산으로 골짜구니로
이어가는 전선은 새 나라의 신경
이름 없는 나루 외따른 동리일망정
빠진 곳 하나 없이 기름과 피
골고루 돌아 다사론 땅이 되라

어린 기사들 어서 자라나
굴뚝마다 우리들의 검은 꽃묶음
연기를 올리자
김빠진 공장마다 동력을 보내서
그대와 나 온 백성이 새 나라 키워 가자

산신과 살기와 염병이 함께 사는 비석이 흔한 마을에 모―터와
전기를 보내서
산신을 쫓고 마마를 몰아내자
기름 친 기계로 운명과 농장을 휘몰아 갈
희망과 자신과 힘을 보내자

용광로에 불을 켜라 새 나라의 심장에
철선을 뽑고 철근을 늘이고 철판을 피리자
세멘과 철과 희망 위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 세워 가자

녹슬은 궤도에 우리들의 기관차 달리자
전쟁에 해어진 화차와 트럭에
벽돌을 싣자 세멘을 올리자
애매한 지배와 굴욕이 좀먹던 부락과 나루에
내 나라 굳은 터 다져 가자


다음은 심훈의 '그날이 오면'이다. 당연히 그날은 광복을 의미한다. 앞에 김기림의 '새나라 송'이 광복을 맞은 환희를 노래했다면 '그날이 오면'은 광복을 염원하는 절규에 가까운 소리로 죽창을 들게 만드는 시이다. 즉 비장미가 느껴진다. 광복만 온다면 그 기쁨을 알리기 위해 머리가 깨져도 한이 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조국의 광복을 기다렸건만 심훈 시인은 광복의 기쁨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 시를 팝페라가수 임형주님이 아주 부드러운 음색으로 불렀다. 비장미 넘치게 성악으로 부르겠지 예상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러나 이상하게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부드러움 속에 강함이 있다고 해야 하나. 이 시는 문학 교과서에 실려 있기도 하다. 이 시를 학생과 공부할 기회가 있다면 노래도 함께 부르며 수업해야지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날이 오면    심훈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두 시는 서정성보다는 목적성이 두드러진다. 그렇다고 해서 시의 의미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비유나 기발한 상징성이 지녀야만 뛰어난 시가 아니다. 시는 압축과 함축이 생명이다. 짧은 말로 독자의 가슴에 울림을 주는 것이 시다. 함축(비유나 상징)이 부족해도 간결하고 명료한 언어로 삶과 희노애락을 표현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하나는 대통령의 경축사로, 또 다른 하나는 노래로 국민들의 가슴에 광복의 의미를 새기는데 크게 기여하지 않았을까? 국어교사로서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든다.

태그:#그날이 오면, #새나라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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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주로 입시지도를 하다 중학교로 왔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나누며 지식뿐만 아니라 문학적 감수성을 쑥쑥 자라게 물을 뿌려 주고 싶습니다. 세상을 비판적으로 또는 따뜻하게 볼 수 있는 학생으로 성장하는데 오늘도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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