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신>

영화 <변신>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홍선 감독의 영화를 꽤나 좋아했다. <공모자들>의 섬뜩함과 <반드시 잡는다>의 재기 발랄함을 말이다. 때문에 신작 <변신>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오컬트 장르 유행에 편승하며 강점이 사라진 듯하다. 소재는 좋았으나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보였다.

악마가 구마 사제의 집에 찾아온다
 
 영화 <변신> 스틸컷

영화 <변신> 스틸컷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어리석은 인간을 교묘히 속이고 세 치 혀로 꾀임에 빠지게 만드는 사탄이 가족이라면?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는 고매한 인간은 악마에게 속아 스스로 파멸을 맞이하는 나약한 동물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동안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던 구마(驅魔) 신부의 가족을 들여다본다. 구마 신부는 자신을 희생하며 타인을 악의 손길에서 구하지만 개인적인 이야기, 가족사는 알 길이 없었다. 때문에 영화 <변신>은 오컬트 장르를 차용 사제의 가족을 소재로 집에서 일어나는 심리 호러를 다룬 다층적인 공포 영화다.

가족의 얼굴로 변신하는 악마는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든 후 교란시켜 파멸로 이끄는 교묘함을 가졌다. 나약한 인간의 몸을 빌려 활개치는 악마가 아니다. 외모와 목소리까지 도플갱어처럼 똑같아 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2층 집 구조는, 2층에서 일어나는 일은 1층에서 알 수 없거나 시간차가 발생해 극도의 긴장감을 이루는 장치로 활용된다. 가족 구성원 중 하나가 자리를 비우면 그 사람으로 변신해 이상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때문에 똘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신선한 소재를 끝까지 끌고 가지 못해 
 
 영화 <변신> 스틸컷

영화 <변신> 스틸컷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더 이상 믿지 못하는 가족의 해체는 악마가 원하는 분노의 시작이었다. 악마는 분노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분노는 신을 원망하고, 자신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은 감정이다. 문제는 목적이 무엇이든 인간을 가지고 놀다가 파괴시킨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죽고, 악마만 남는다. 그게 절대악의 목적이다.

전반부는 예측하기 힘든 공포와 빠른 전개가 기대감을 높였다. 자고 있는 둘째 딸 방에 들어와 '우리 딸 이제 다 컸네'라며 음흉한 미소를 날리는 아빠(성동일)라든가, 분노의 대파 다듬기를 선보이며 굳은 얼굴로 아침상을 내온 엄마(장영남)의 신들린 계란말이를 먹는 장면이라던가, 한밤중 자다 말고 식칼을 들고 다니는 막내의 이상행동은 섬뜩함을 고조시켰다.
 
 영화 <변신> 스틸컷

영화 <변신> 스틸컷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그 장점은 구마 사제이자 삼촌인 중수(배성우)가 집으로 찾아오면서 변질되기 시작한다. 특히 구마 의식의 트라우마 때문에 필리핀에 있는 스승(백윤식)을 부를 때부터 스케일이 커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먼 길 오신 그분들은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악마가 누구라고 말한 탓에 거기에 집중하느라 다른 가족은 안중에도 없다.

여기저기서 개연성 없이 터지는 장면, 믿지 못해 서로를 의심하는 가족 심리가 얼기설기 봉합되며 캐릭터의 본질도 사라지게 된다. 악마의 저주로 시험대에 오른 구마 사제는 안타깝게도 이 영화를 구하지 못한다. 전체적으로 생각해보니 오컬트와 미스터리를 차용한 가족 드라마였다. 서로를 믿지 못해 의심하고 음해하고, 헐뜯는 일은 가족뿐만 아니라 어떤 집단에서도 가능하다.

한 마리 벌레가 되어버린 인간의 고통  
 
 영화 <변신> 스틸컷

영화 <변신> 스틸컷 ⓒ (주)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문득 '프란츠 카프카'의 동명 소설 《변신》이 떠오른다. 어느 날 눈을 떴더니 벌레가 되어 있었고, 물심양면으로 가족을 부양하기 바빴던 청년이 서서히 가족에게 외면받는다는 이야기다. 결국 청년은 감금되어 사육당하고, 혐오의 대상에서 없어졌으면 하는 존재가 된다는 슬픈 이야기다.

영화 <변신>의 중수 또한 한 소녀의 구마 의식 실패로 가족이 고통받아 미움을 받고 있는 상태다. 되도록 가까이하고 싶지 않아 이사 소식도 알리지 않았다. 벌레가 되어버리자 "가족 구성원이라는 생각과 믿음을 버리라"고 말한 카프카 소설 속 누이의 매정한 말처럼. 하지만 영화는 가족의 위기가 닥치자 도움을 요청한다. 중수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외국 선교의 길을 가려던 전 날 밤, 가족을 찾은 것은 분명 믿음을 다시 봉합할 수 있을 거라 기대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믿음을 잃어버리 자, 소통의 부재는 반드시 벌레(악마)가 되어 찾아오기 마련인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어리석은 인간을 이용한 악마의 술책은 언제나 당신을 가까이에서 노린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혜령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변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