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뮤지션들의 삶과 음악, 꿈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불빛 아래서> 포스터

인디 뮤지션들의 삶과 음악, 꿈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불빛 아래서> 포스터 ⓒ 창작집단 너와

 
영화 <불빛 아래서> 개봉을 하루 앞둔 지난 28일, 문득 2011년 방송된 < MBC 스페셜 > '나는 록의 전설이다' 편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당시 임재범은 MBC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를 통해 전 국민적인 관심을 얻고 있었고 부활 김태원 역시 KBS 2TV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 등 여러 예능에 출연해 '국민 할매'라는 애칭을 얻었을 때였다. 다큐멘터리의 결론은 대중 음악계의 한 획을 그었던 락의 전설들도 어렵다는 것이다. 

<불빛 아래서> 개봉을 앞두고 8년 전 만들어진 방송 다큐가 불현듯 생각이 난 이유는 지난 29일 저녁 서울 종로에 위치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불빛 아래서> 관객과의 대화(GV) 때문이었다. 이날 특별 게스트로 초청된 시나위 신대철은 당시 <나는 록의 전설이다>에도 등장했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락의 전설들이나 영화 <불빛 아래서>에 등장한 인디 밴드들 모두 사정은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이날 GV에는 신대철 이외에도 영화를 연출한 조이예환 감독과 영화 주요 출연자 로큰롤라디오(김내현, 김진규, 이민우, 최민규), 웨이스티드 쟈니스(안지, 백선혁)이 참석했다. 
 
 지난 29일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불빛 아래서> 개봉 기념 GV에 참석한 시나위 신대철, 조이예환 감독, 로큰롤라디오, 웨이스티드 쟈니스

지난 29일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불빛 아래서> 개봉 기념 GV에 참석한 시나위 신대철, 조이예환 감독, 로큰롤라디오, 웨이스티드 쟈니스 ⓒ 권진경

 
신대철은 GV에 나선 이유에 대해 "(<불빛 아래서> 속 뮤지션들과) 나의 삶이 다르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인디 뮤지션들의 삶을 다룬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래도 당시 <나는 록의 전설이다>에 등장했던 임재범, 신대철, 김태원과 백두산 유현상과 김도균은 수많은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이들은 그 인지도를 발판으로 각종 예능에 출연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반면 1980년대 말 시나위, 부활, 백두산처럼 센세이션한 돌풍을 일으킬 기회조차 없어보이는 당대 인디 뮤지션들은 돈 걱정 하지 않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절을 맞이할 수 있을까. 

평소 인디 밴드 음악에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조이예환 감독이 연출한 <불빛 아래서>는 동시대 활동하는 인디 뮤지션들의 삶과 음악, 꿈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에는 로큰롤라디오, 웨이스티드 쟈니스, 더 루스터스 등 세 밴드가 등장하는데 이 중 더 루스터스는 다큐멘터리 제작 도중 그룹 해체라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더 루스터스와 달리 비교적 인디 음악 신에서 이름이 알려진 로큰롤라디오와 웨이스티드 쟈니스는 계속 음악 활동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한 이들의 사정 또한 어려워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로큰롤라디오는 2013년 데뷔 이후 각종 대중음악상 신인상을 휩쓸며 홍대 인디 신을 구원할 떠오르는 신성으로 주목받았고, 일찍이 실력을 인정받은 웨이스티드 쟈니스는 홍대 밴드로서는 드물게 메이저 기획사(SM 엔터테인먼트) 산하 인디 레이블과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그런 그들마저도 오랜 부침을 겪는 것이 이 바닥의 현실(?)이다. 
 
 지난 29일 저녁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불빛 아래서> 개봉 기념 GV에 참석한 시나위 신대철

지난 29일 저녁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불빛 아래서> 개봉 기념 GV에 참석한 시나위 신대철 ⓒ 권진경

 
그래도 꾸준히 공연할 수 있는 무대가 있는 로큰롤라디오와 웨이스티드 쟈니스는 그렇지 못한 수많은 인디 밴드들 보다는 상황이 훨씬 나아 보인다. 하지만 인디 신에서 비교적 많은 관심을 받는 뮤지션조차도 생계를 걱정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음악 외에도 다양한 부업을 이어가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짠함'을 유도한다. 

김도균, 김태원과 함께 한국의 3대 기타리스트로 추앙받는 신대철 또한 시나위 활동 중단 이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밴드 활동을 잠시 접고 각종 가요 음반 세션(녹음) 연주를 전전해야 했다. 연주, 창작, 밴드 연습 시간을 쪼개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후배 뮤지션들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터다. 하지만 불공정한 음원 시장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바른음악 협동조합까지 만든 신대철은 후배들의 고충을 안쓰럽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아무리 천재적인 작곡가, 뮤지션이 있다고 할지라도 당대의 어필을 받지 못해서 묻혀버리는 꽃들도 많이 있어요. 여기 나오신 밴드들이 결코 어디에 떨어지거나 열심히 안하는 분들이 아니예요. 단지 지금 우리나라의 미디어 환경 자체가 전파의 폭력 같은 게 있어요. 온갖 미디어에서 음악을 다루지만 굉장히 편중된 측면이 있거든요.

TV와 라디오 같은 메이저 미디어에서 과연 인디들을 다뤄주느냐. 제가 볼 때 이건 횡포이고 폭력에 가깝다고 봅니다.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데 어떻게 이들이 살아 남겠어요. 현재 인디 뮤지션들은 정말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어 보인다는거죠. 그게 좀 안타까워요." (신대철) 


한국 대중 음악계와 미디어에 노출되는 음악 장르가 지극히 편중적이라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나온 이야기이다. <나는 록의 전설이다>가 만들어진 2011년이나 2019년이나 인디 뮤지션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말은 계속 나왔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다. 오히려 상황이 더욱 악화 되었을 뿐. 하지만 비단 인디 음악에만 해당되는 구조적인 모순일까? 

나 또한 <불빛 아래서>의 뮤지션들 이야기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독립영화 신에 몸담고 있는 주변인들이 처한 상황 또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니까) 난 솔직히 돈 빼고 되게 행복해"라는 <불빛 아래서> 속 누군가의 말처럼, 주변의 만류와 걱정에도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하는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 하지만 슬슬 지치는 느낌도 없지 않다. 아니 이제는 그 피로도가 온 몸에 겹겹이 누적된 것 같다. 

"사실 많이 힘들어요. 계속 음악활동을 해야하는지 막막해지는 순간도 있고요. 하지만 지금까지 밴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도 크고 수많은 밴드들이 사라지는 와중에 살아남았다는 자부심도 크고. 내일 우리가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영화에서 저희 멤버 최민규가 한 말처럼 또 고기 낚으러 가아죠. 저희는 뮤지션이니까 좋은 음악 만들어서 많은 분들에게 최대한 들려드릴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로큰롤라디오 김진규) 
 
 인디 뮤지션들의 삶과 음악, 꿈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불빛 아래서> 한 장면

인디 뮤지션들의 삶과 음악, 꿈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불빛 아래서> 한 장면 ⓒ 창작집단 너와

 
<불빛 아래서>에 출연한 뮤지션들도 나와 내 주변 영화인들 사정과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이들은 인디 뮤지션에게 기회조자 주지 않은 현실에 한탄만 늘어놓는 대신 "나만 힘든게 아니라, 다 힘들어"라면서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금 무대에 오를 채비에 나선다. 

"인생 뭐 있어. 그냥 즐기면서 살면 되는거지." 한 때 유행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즐기면서 살아가는 뮤지션들의 이야기. 희미해 보이지만 더 나은 내일이 있다는 희망을 품고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 시대 모든 청춘들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불빛 아래서>는 전국 극장가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불빛 아래서 신대철 인디밴드 로큰롤라디오 웨이스티드 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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