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미국 3대 트레일 중 가장 길고 험하다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이하 피시티) 4300km. 미국 LA 문화단체 '컬쳐앤소사이티(대표 줄리엔 정)' 기획으로 고난의 행군을 자처한 한국 하이커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 기자말

쿠바 철창서 사흘, 시작부터 꼬인 피시티

피시티를 시작하기 한 달 전, 나는 쿠바 감옥에 있었다.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치아 의료봉사를 끝내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여행을 하다 피시티에 도전하기 전에 쿠바를 둘러보려고 했다.

아름다운 쿠바 여성, 쿠바나(Cubana)들과 살사춤, 황홀한 저녁 노을, 고요한 바다 등 미국 서부 4300km를 종단하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이하 피시티)을 시작하기 전 여유를 부리고 싶었다.
  
쿠바 감옥 쿠바에 구금되기 전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 쿠바 감옥 쿠바에 구금되기 전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 정힘찬

관련사진보기

 
남아공 미국 영사관에서 미국 여행 비자인 B1/B2와 피시티 퍼밋을 받고 쿠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만5000km, 13시간 비행 끝에 쿠바 수도가 있는 아바나 공항에 도착했다. 그, 런, 데! 땡전 한 푼이 없다.

쿠바에서는 입국 비자를 공항에서 돈 내고 사야 하는데 준비해 뒀던 350달러가 종적을 감춘 것이었다. 범인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호스텔 청소부인 것 같았다. 나를 응큼한 눈으로 바라보더라니. 룸메이트들이 그 청소부를 조심하라고 나에게 일러주었건만 난 그 말을 귓등으로 들은 것이다.

넋 놓고 있을 수 없었다. 공항 직원에게 은행 카드로 돈을 뽑아와도 되겠냐고 물었다. 곱슬머리를 볶아 브로콜리처럼 만든 여성 직원은 흔쾌히 허락했다. 현금 인출기를 찾아갔다. 그런데 돈이 뽑히지 않았다. 공항 직원은 "쿠바가 미국과 사이가 안 좋아서 은행 거래가 안 되는 걸 거야"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내 카드는 미국 은행인 시티뱅크였다.

그러고는 쿠바 이민국 직원에게 끌려갔다. 다른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아 보겠다, 다른 카드로 돈을 뽑아보겠다고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 끌려간 곳은 감옥처럼 생긴 좁은 조사실이었다. 질문 세례가 시작됐다. 여권에 입출국 도장이 왜 이렇게 많냐, 뭐 하는 사람이냐, 여행을 왜 하냐 이것저것 따져 물었다.

질문 농도는 짙어졌다. 이민국 직원은 내 휴대전화를 빼앗아 사진첩을 열었다. 그 안에는 여행하며 찍은 사진과 여자 친구 사진이 있었다. 그러더니 한국 여자는 어떤 성향이냐, 여자 친구와는 어디서 데이트 하냐, 여행을 같이 했냐는 등 사생활을 캐물었다.

자존심이 팍 상했다. 묵비권을 행사하고 싶었지만 총 든 사내 두 명이 옆에 떡 하니 서 있었다. 심지어 항문에 마약을 숨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내 옷을 홀딱 벗게 하고는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해 시켰다.

난, 작은 창이 있는 1평 남짓한 곳에 들어갔다. 그곳 직원들은 '구금 시설(Detainment Center)'이라고 말했다. 허름하고 지저분한 1인용 침대와 무릎 높이의 조그마한 문이 달린 냄새 나는 푸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바닥에는 죽은 바퀴벌레, 천장 구석에는 거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피시티 시작부터 '망삘(망한 느낌)'이었다.

감옥에 사흘 동안 갇혀 있은 뒤 한국으로 강제 출국됐다. 한국에 돌아오니 친구들은 출소를 축하한다며 생두부를 내 입에 마구 집어 넣었다. 피시티 전 2주 휴가를 결국 한국에서 보냈다.

그렇게 다시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쿠바가 생각이 나 가슴이 쫄렸지만 미국은 문을 열어주었다. 2017년 4월 23일 오전 6시. 미리 연락해 뒀던 '트레일 엔젤' 스콧을 만나 그의 차를 타고 멕시코 국경 마을인 캠포로 갔다. 피시티에서는 하이커를 돕는 사람을 '트레일 엔젤'이라고 부른다.

근육통은 참아도 더러운 건 못 참는다

미국 캘리포니아 4월 날씨는 한국 봄과 달랐다. 팍삭 마른 날씨에 태양은 온몸의 마지막 수분 한 방울까지도 빼앗으려 이글거렸다. 더 참을 수 없는 건 불결함이었다. 피시티를 걷는 첫날부터 찐득한 땀방울이 온몸을 뒤덮었다. 손톱과 발톱, 살결이 접힌 주름마다 시커먼 때가 꼈다.

머리는 기름져 질펀하게 늘어붙었다. 텐트 문을 잠시만 열어도 모래가 가득 들어왔다. 더욱이 지저분한 몰골로 자야 하는 게 가장 큰 충격이었다. 그나마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하이킹을 끝내고 온수로 몸을 씻고 포근한 침대에서 잠을 잤는데 말이다. 
   
휴식 사막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나무그늘 아래 휴식을 취하는 하이커들
▲ 휴식 사막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나무그늘 아래 휴식을 취하는 하이커들
ⓒ 정힘찬

관련사진보기


하이킹이 이어지자 나도 자연스럽게 세수도 하지 않고 잠을 잤다. 텐트도 길 옆 아무 곳에나 쳤다. 저녁밥도 거른 채 이 모든 게 꿈이기를 바라며 침낭에 몸을 구겨 넣었다. 아침 햇살은 여지없이 내 눈을 강타했다. 어제 점심에 먹은 라면 찌꺼기가 이 사이에 껴 있었다.

난 위생을 으뜸으로 생각하는 의학도다. 아프리카 말라위 국립병원에서 구강외과 수술을 배울 때도 수술 장비에 균 하나라도 침투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완벽한 무균 세상에서 살았다. 하지만 피시티는 나를 잡균의 세상으로 내몰았다. 피시티에서 의학도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건 겨우 닦는 칫솔질뿐이었다.
 
마을 의료봉사중. 아프리카 말라위 한 마을에서 의료봉사를 하고있다.
▲ 마을 의료봉사중. 아프리카 말라위 한 마을에서 의료봉사를 하고있다.
ⓒ 정힘찬

관련사진보기

  
지독한 길치, 거꾸로 가는 나의 발걸음

나는 길치다. 공간지각 능력이 제로에 가깝다. 한두 번 길을 잃는 거야 용서하는데 수십 번 반복한다. 구글 지도를 보고도 거꾸로 걷는 수준이다. 그 습성은 피시티에서도 나타났다. 트레킹 첫날 피시티 출발지에 세워져 있는 피시티 모뉴먼트(기념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혼자 길을 걸었다.

"어이 거기(Hey! hey!)

누군가 나를 불러 세웠다.

"이 방향이야, 그 방향이 아니라고"(It`s this way! not that way)

나는 어이 없게도 북쪽 캐나다 방향이 아닌 남쪽 멕시코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하마터면 멕시코 국경 장벽을 넘을 뻔했다. 길치가 길치인 이유가 있다. 방향이 틀린 데도 용감하게 전진한다는 것이다. 뭔가 이 길이 맞는다고 느끼면 열에 아홉은 아니다. 하이커들은 그런 나를 보고는 트레일에서 부르는 별명인 '트레일 네임(Trail Name)'을 만들어줬다.

하이커: "너 트레일 네임 있어?"
나: "아직 없는데"
하이커: "그럼 우리가 지어줄게",
나: "뭔데?"
하이커: 디스웨이(This way, 이 길)"
 

그 순간 모두 빵 터졌다. 나는 디스웨이가 됐다.
  
This way 사막에서의 길.
▲ This way 사막에서의 길.
ⓒ 정힘찬

관련사진보기

  
고행이라 쓰고 '재미'라 읽는다

하이커들은 이런 생각을 하며 걷는다. '대체 왜 걷는가?' 누군가에게 피시티는 일생일대 도전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죽기 전에 해봐야 할 버킷리스트다. 하지만 내 목표는 거창하지 않았다. 2년 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걸음이 빠른 체코인을 만났다. 어느 날 난 그에게 잘 걷는 비결을 물었다. 그때 그가 처음 피시티에 대해 말해줬다.

"그곳에는 하루 70km씩 걷는 사람도 있어. 마실 물과 텐트, 침낭 등 생존하기 위한 모든 도구를 들고 걸어야 해. 6개월 동안 신발은 5켤레 정도를 바꿔 신지. 강하게 내리쬐는 황무지 햇빛을 이겨내야 하고 높은 산도 올라야 하지. 세차게 흐르는 강물도 뚫고 나가야 해. 때로는 모든 산이 눈으로 뒤덮여 있을 수도 있어."

그 말을 듣고는 세상에 별 미친놈이 많다고 생각했다. 대체 6개월씩이나 왜 걷는단 말인가.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의 말이 내 머리를 계속 맴돌았다는 것이다. 급기야 그 말을 들은 지 6개월 뒤부터는 피시티를 종주한 한국인이 있나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출간한 책과 온라인 블로그, 소셜미디어 글을 읽었다.

피시티 길에 오르기 전 친구들이 물었다.

"왜 걸어?"
"왜 반년이란 시간을 거기다 허비해?"


내 대답은 같았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별다른 이유 없이 하면 안 되는 거야?"라고 했다. 하지만 피시티를 정작 걸으면서 하루에 1000번도 넘게 포기할까 생각했다. 꽉 끼는 등산화를 신다가 물집이 크게 잡혀 샌들형 신발인 크록스를 신고 일주일간 걷기도 했다. 첫 구간인 사막을 지날 때 목구멍은 자주 타올랐다. 한 번은 물통 6개를 들고 물이 없는 40km 구간을 내처 걸어야 했다.
 
물집 물집이 너무 크게 나 크록스를 신고 걷기 시작했다.
▲ 물집 물집이 너무 크게 나 크록스를 신고 걷기 시작했다.
ⓒ 정힘찬

관련사진보기

 
현지 출신 하이커들은 힘들면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느 하이커는 3번이나 집으로 도망갔다가 트레일로 왔다고 했다. 하지만 난 계속 걸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한 달쯤 지나자 몸이 길에 적응했다.

처음 하루에 15km 정도밖에 걸을 수 없었던 다리는 30~40km를 버텨내기 시작했다. 조금씩 웃으며 걸을 수 있었고 각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시답잖은 개그를 치며 걷기도 했다. 새빨간 훈장처럼 자리하던 뒤꿈치의 물집은 한 달이 지나자 거북이 등 같은 굳은살로 재무장됐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Tell me what you read, then I`ll tell you who you are.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