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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할 적폐가 있지만, 국민의 약 70%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적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험해보니 국가 적폐보다 마을(아파트) 적폐의 청산이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4년간 아파트 회장을 하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경험과 성취한 작은 성공의 이야기들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기자말

3번의 해임투표, 1번의 회장재선거, 3번의 가처분 재판. 이 모든 게 3개월 동안 몰아닥친 일이었다. 해임투표가 중지된 것도 공공기관인 법원 때문이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저들은 내가 해임될 때까지 해임투표를 강행할 태세였다.

정신적 스트레스로 나는 병원으로 가야 했지만 대다수의 입주민은 무관심했다. 가까이에서 나를 지켜본 입주민은 안타까워하고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그들은 말 그대로 '원외(院外)'였기 때문에 한계가 컸고 그마저 소수였다. 심지어 상당수 입주민은 똑같은 사람들이니까 싸운다고 여기는 듯했다. 정치인 평가하듯 '다 그놈이 그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입주자대표회의와 일반정치와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바로 동대표 활동에는 감시의 눈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가장 작은 단위인 시의회만 해도 감시하는 언론과 단체가 있지만 입주자대표회의에는 그런 게 전혀 없다. '뭘 그런 데까지 신경을 쓰냐'는 분위기가 강하다.

끝까지 버텼던 이유

이런 상황에서 나는 왜 버텼던 걸까? 임기 내내 괴롭힘당할 게 뻔한데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리와 승냥이 같은 저들에게 물어뜯기고 있는 걸까? 그냥 사임하면 될 것을.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사임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사임을 하면 저들은 불법을 저지르려다 발각되어서 사임한 것이라고 매일 게시판에 공고할 것이 뻔하다. 그렇게 해야 자신들의 정당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그간의 행위들로 미뤄보면 충분히 예상되는 바였다.

이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사임 후 아파트를 떠나는 수밖에 없다. 다른 아파트 사례를 살펴보니 아파트에서 동대표 활동하다가 불의를 목격하고 개혁하러 나선 경우 100의 99는 진흙탕에서 싸우다가 병을 얻고 이사했다. 그러나 나는 이사 갈 수가 없다. 주변에 우리 아파트와 비슷한 규모의 다른 집을 매입할 수도, 전세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사임하면 저들이 무슨 짓을 할지 뻔하기 때문이다. 저들의 행적으로 미뤄볼 때 불필요한 공사를 마구 추진하고 자기들과 뒷거래하기 쉬운 업체를 공사업체로 선정할 것이다. 입주민이 손해 볼 것이 명약관화한데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그만두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사임의 객관적 명분은 충분했지만 여기서 아파트 회장을 그만두는 것은 현존하는 악(惡)을 피하는, 정확히 말해서 악에게 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 뻔했다. 내가 지향하는 정의로운 사회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억울한 사람을 양산하는 시스템을 개혁해야만 가능하다. 비록 작은 단위이지만 저들을 그냥 두면 입주민의 피해 규모는 커지고 저들에게 대항했던 사람들의 억울함은 해결할 길이 없어져 도저히 사임할 수 없었다.

작전 변경, '회장 해임'에서 '동대표 해임'으로

법원의 판결과 수원시의 행정지시로 '회장 해임'이 불가능해지자 저들은 '동대표 해임'으로 작전을 변경했다. 동대표직을 날리면 회장직은 자동으로 상실된다는 규약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회장은 동대표만 할 수 있다. 회장 해임투표는 아파트 입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하지만, 동대표 해임투표는 해당 동의 입주민만 참여하기 때문에 입주민의 반발도 그만큼 줄어든다.

이를 위해 저들은 '동대표 남기업 해임 안건'을 정기(임시)회의 안건으로 상정해달라는 요청서를 정식으로 제출했다. 이 요청서를 받은 나는 회의 안건으로 상정할 수 없는 이유를 서면으로 답변했다. 그러자 이들은 회의 때마다 문건으로 안건 상정을 요구했다. 하여 나는 이 문제를 법무법인 '에셀'의 오재욱 변호사와 상의했다. 오 변호사는 형식을 갖춰서 요청하면 받아주는 것이 맞다며 계속 거부하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일단 안건으로 상정하고 대책을 세우자고 했다.
  
나에 대한 동대표 해임 안건을 상정하겠다고 하자 저들이 환호했다. 안건만 상정되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 저들이 동대표 해임을 의결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으니까. 그러나 나는 오재욱 변호사가 제안한 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선 의도적으로 '동대표 남기업 해임안'을 회의의 마지막 안건으로 삼았고, 안건 상정을 선언하는 동시에 미리 준비한 '안건배척사유', 즉 동대표 해임사유가 회장 해임사유와 동일하고 이미 이에 대해서는 법원이 해임투표를 중지하라고 했다는 내용을 낭독했다. 그런 후 "이런 까닭에 안건은 심의 표결 없이 배척한다"고 선언해버렸다. 저들이 어리둥절한 틈을 타 나는 곧바로 폐회를 선언하고 회의장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저들은 완전히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어버렸다.

또다시 경비원을 동원하다

입주자대표회의를 통한 동대표 해임 절차가 막히자 저들은 해임동의서를 통한 동대표 해임투표 작전에 돌입했다. 지난번처럼 또다시 경비원에게 해임서명서를 받아오게 했다. 하지만 그들의 거듭되는 만행에 분개한 입주민들도 늘어갔고 이와 같은 경비원의 행태는 바로 나에게 접수될 수밖에 없었다.

해당 경비원을 찾아가 증거를 압수하고 누가 시켰냐고 따져 물었다. 시원한 가을날인데도 땀을 뻘뻘 흘리던 그 경비원은 끝내 누가 시켰는지 말하지 않았다. 자기가 그냥 해본 것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관리소장이 시킨 게 분명했다.

적폐세력에 적극적으로 부역하는 아파트 유급직원들의 공통된 특징이 하나 있다. 입주민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이 안 좋다는 것이다. 그들은 특정인에게만 지나치게 충성하고 입주민들에게는 대충대충 대한다. 자기들의 근무 안정성이 특정인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선관위원 추첨까지 조작하는 적폐세력들

저들이 동대표 남기업 해임에 성공하려면 반드시 선거관리위원회를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적폐세력들이 장악하고 있었던 선거관리위원회에서 1명이 2016년 2월 말에 이사 가는 바람에 저들이 선관위를 다시 장악하려면 자기편 1명을 선관위원으로 위촉해야 했다.
  
 추첨함에 표가 4장 남아 있는지 확인하자고 하자?관리소장이 추첨함에 있던 표를 모두 찢어버렸다.
 추첨함에 표가 4장 남아 있는지 확인하자고 하자?관리소장이 추첨함에 있던 표를 모두 찢어버렸다.
ⓒ 프로젝트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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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관리위원회 모집공고가 나자 나를 지지하고 보호하려는 입주민 6명이 지원서를 제출했다. 저들 쪽에서는 70대 후반의 할머니 1명이 지원했다. 절실한 저들이 1명만 지원하다니 뭔가 이상했다.

7명이 지원했기 때문에 추첨을 거쳐야 했다. 추첨일은 2016년 9월 30일 오후 2시였고 장소는 관리사무소 입주자대표회의실이었다. 저들과 한 몸이자 만날 때마다 나에게 쌍욕을 퍼붓던 선거관리위원장과 나를 어떻게든 해임시키려 안달 난 관리소장이 추첨을 진행했다. 당시 경남 거창에 출장 중이었던 나는 혹시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6대 1이었기 때문에 낙관하고 있었다. 다만 관리소장과 선거관리위원장이 추첨을 진행한다는 것이 찜찜할 뿐이었다.

7장의 표를 함에 넣고 1명씩 뽑기를 진행했다. 추첨 순서는 1, 2번이 우리 쪽이고, 3번이 그 노인이었다. 첫 번째 지원자와 두 번째 지원자가 낙첨표를 뽑았다. 긴장이 흘렀다. 그런데 세 번째 지원자인 그 노인이 당첨표를 뽑는 게 아닌가. 당첨표를 뽑자마자 선관위원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노인이 선관위원으로 위촉되었다고 선언했고 관리소장은 추첨함을 가져가려 했다.

그런데 수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추첨했던 첫 번째 두 번째 지원자 모두는 자신의 손이 빈손임을 보이고 추첨함에 손을 넣었는데 그 노인은 뭔가 움켜쥔 채로 손을 넣은 것이다. 그 광경을 목격한 나를 지지하는 지원자 6명이 거칠게 항의했다.

추첨함에 표가 4장 남아 있는지 확인하자고 하자 관리소장이 추첨함에 있던 표를 모두 찢어버렸다. (처음에 7장의 표를 넣고 추첨을 진행했고 3명이 표를 뽑았으니 정상적으로 진행했으면 추첨함에는 4장이 남아 있어야 한다.) 추첨부정이 확실했다. 관리소장의 행동에 분개한 6명의 지원자들이 추첨을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한쪽 방에 대기하고 있던 적폐세력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항의하는 지원자들을 거칠게 몰아붙여 쫓아버렸다. 마치 조폭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또다시 비상이 걸렸다. 저들이 밟을 다음 단계가 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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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토지정의와 기본소득, 그리고 통일을 염두에 둔 대안 국가모델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