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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의 필요성을 느낀 것은 하루이틀이 아니지만, 미루고 미루다 마흔을 코앞에 두고서야 시작하게 된 것. 무슨 운동이든 상관 없으니 꾸준히 해보겠다고 새해 계획 1순위로 올려두었다. 그래놓고도 겨울은 다 보내고 봄부터 시작했으니, 나도 참 나다. 

주변에 수영 예찬론자들이 많은 터라 수영을 시작했는데 영 재미가 붙지 않았다. 재미야 실력이 늘어야 생기니 일단 반 년은 이 악물고 배워보라는 친구도 있었지만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수영할 생각에 밤잠까지 설칠 정도였으니. 몸 건강 얻으려다 정신 건강을 해칠 것 같아서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 

요가로 바꿔 보았다. 처음 한 달은 기본 동작을 따라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지만 곧 흥미를 잃었다. 요가가 몸만이 아닌 정신 수련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수련이 되지 않은 나는 잡념에 시달렸고 그 한 시간이 번뇌와 고통의 시간이 되고 만 것. 

다음은 필라테스 도전. 파워풀한 강사님의 지도에 맞춰 열심히 움직이고 나면, 내 몸에 있는 줄도 몰랐던 근육이 한꺼번에 되살아나는 듯했다. 땀을 뻘뻘 흘린 뒤 샤워를 하고 나면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샤워한 듯 개운해졌다. 

그러나 이 또한 얼마 안 가고 말았다. 그놈의 잡념이 문제다. 운동만 하면 '나는 누구인가' 고민이 시작되니, 나란 인간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그렇게 수영, 요가, 필라테스를 전전하다 가을이 되었다. 새해 계획을 짤 때까지만 해도 비단 2018년만이 아니라 평생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으려는 당찬 포부가 있었지만, 슬그머니 계획은 '1년 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떻게든 1년만 버텨보자. 

1년을 해봐도 영 재미가 없다면 내 것이 아닌 게 아닐까. 그뒤부터는 당당하게 난 운동은 체질이 아니라고 선언할 수 있지 않을까. 체질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 운동한다니 좀 웃기지만, 순전히 그걸 증명하겠다는 오기로 꾸역꾸역 체육관에 갔다.

다음은 헬스장 등록. 다른 운동은 정해진 시간이라도 있었는데 이번엔 완전히 나의 자율 의지에 달린 것. 연말까지 등록은 하겠지만 아마 몇 번 오지도 않고 끝나겠지, 나는 이렇게 운동과는 영영 이별하고 말겠지, 하는 시원섭섭한 예감을 느꼈다. 

많고 많은 기구들은 사용법도 잘 모르고, 알아내고 싶은 의욕도 없었다. 그래도 걷는 거야 자신 있으니까 별 생각없이 러닝머신 위에 올랐다. 터벅터벅, 어떤 의지도 없이.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지금 달리기 사랑꾼이다. 일주일에 최소 5일, 이른 새벽의 달리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작년 가을부터 시작해 또 가을을 맞았으니, 거의 1년이 되어 간다. 이제 건강을 위해 달리지 않는다. 그저 달리기가 좋아서 달린다. 오히려 달릴 수 있기 위해 건강 관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 

가끔은 검색도 해 본다. 몇 살까지 달릴 수 있을까. 중년 이후엔 무릎 관절을 생각해서 달리기를 자제하라는 전문가 의견이 보이면, 조금 슬퍼진다. 최대한 오래오래, 가능하다면 죽는 날까지 달리고 싶다. 나는 달리기가 정말, 너무 좋다. 이제까지 대체 어떻게 살았지?
 
<핸드백 대신 배낭을 메고>
 <핸드백 대신 배낭을 메고>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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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활력 갱생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유이카와 케이의 <핸드백 대신 배낭을 메고> 역시 뒤늦게 운동의 매력에 흠뻑 빠진 경험담이다. 그녀가 배낭을 메고 향하는 곳은 산. 운동이라곤 하지 않아 체중 증가와 요통에 시달렸다는 그녀가 에베레스트 트래킹에 도전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다. 

그녀의 등산은 반려견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일상을 온통 차지하고 있던 반려견 루이가 9년 5개월의 생을 마친 것. 그만하면 천수를 누렸다지만 위로가 될 리 없다. 그녀는 루이가 떠난 상실감으로 하루하루를 맥없이 멍하니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 남편의 제안으로 등산을 시작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산행의 고통을 맛보고 싶었던 것 같다. 숨이 차오르고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한계점까지 나를 몰아붙이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루이를 잃은 상실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p26)

실의에 빠져 시작한 등산은 그녀를 사로잡는다. 집에서 가까운 아사마산은 어느 새 홈그라운드가 되고, 등산은 일상이 된다. 하산 후 뒤풀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오십 대 중반에 시작한 산행이 슬픔을 잊게 하고 새로운 삶을 열어준 것이다. 

그녀에게 산행은 단지 운동이 아니다. 소설가로서의 슬럼프를 겪을 때 빠져나올 수 있게 된 것도 산 덕분이랄까. 1975년 여성 산악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반을 이룬 다베이 준코를 모델로 소설을 쓰게 된 것. 그렇게 슬럼프도 극복한다.

숱하게 산에 올라도 고소공포증은 사라지지 않고, 가슴까지 차오른 눈더미 속에서 수영을 하는 일도 생기지만, 그럼에도 등산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에베르스트 트래킹은 고산병 때문에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끝났지만, 좋은 추억이 되었다. 산행에 대한 열정도 변함없다.
 
"산과의 만남은 나 자신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체력이 닿는 한 가장 나답게 등산을 즐길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p254)

그녀가 말하는 산행의 즐거움을 들으며 나 역시 운동의 즐거움에 대해 호들갑스럽게 말하고 싶어졌다. 그녀를 슬픔에서 구원한 것도 운동이며 나 역시 그렇다. 우울한 날엔 더 필사적으로 달린다. 그렇게 내 마음을 다스린다. 몸 건강을 위해 시작한 운동이 생각도 못한 내 정신 건강을 돌보고 있는 것이다. 

등산은 물론, 요가나 필라테스도 더없이 좋은 운동임이 분명하다. 다만 모든 사람에게 맞는 단 하나의 운동은 없지 않을까. 그렇기에 더욱,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았을 때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운동은 체질상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내가 운동 예찬론자가 될 줄 누가 알았겠나. 

등산을 그저 운동으로만 받아들이면 산 애호가들로서는 서운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산엔 내가 모르는 매력이 있을 터. 책을 읽으며 산에 대한 호기심도 일렁댔으니, 가을에 읽길 잘했다. 이번 주말에는 등산 당첨. 전보다 조금은 체력이 늘었으니, 등산을 사랑하게 되어도 좋겠다. 내 몸과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더 추가될 테니까.
 
"변화무쌍한 모습에 산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자연이 주는 새로운 선물 앞에 경외감과 함께 이렇게 살아 움직일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p44)

핸드백 대신 배낭을 메고 - 소설가의 활력 갱생 에세이

유이카와 케이 (지은이), 신찬 (옮긴이), 웅진지식하우스(2019)


태그:#핸드백 대신 배낭을 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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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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