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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내 어머니는 새벽녘에 인적이 드문 곳에서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항상 그러하듯이 내 어머니를 따라다니던 개는 맹렬이 어머니 주변을 맴돌 면서 짖었고 마침내 이웃 주민들이 어머니를 발견했다.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비록 사지를 마음대로 움직이지는 못하셨지만 17년을 더 사시다가 올해 별세하셨다. 그 당시 내 어머니가 몸 쓸 병으로 쓰러지신 것도 가슴 아프고 원통할 일이었지만 늘 어머니와 함께 했으며 어머니의 목숨을 구한 그 강아지가 더 이상 주인과 함께 하지 못하게 된 사실도 적잖이 괴로운 일이었다.

그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얼마나 주인이 보고 싶었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반대로 어머니가 올해 돌아가셨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겼지만 어머니가 다른 세상에서 17년 전에 헤어졌던 반려견을 다시 만나 정답게 지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된다.

어찌 보면 헛된 상상에 지나지 않지만 그나마 어머니에게 반려견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상상을 하고 잠시나마 미소를 짓게 되는 기회라도 주어진 것 아니겠는가. 물론 그 새벽의 일을 계기로 각성을 해서 개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 것은 아니다. 오직 주인만 바라보며 주인의 사랑만을 먹고 자라는 개가 자랑스럽지 않기는 힘들지 않은가.

<서민의 개좋음>은 잘 지은 제목이다. 어떤 의도로 지은 제목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좋음'이란 말은 내게는 중의적으로 읽힌다. 요새 아이들이 '개맛있다(참 맛있어)'라든가 '개싫어(매우 싫어)'라는 말을 하는데 적잖이 거부감이 있었다. 개라는 사랑스러운 동물을 조금 부정적인 접두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만이었다. 그런데 '개'를 사전에서 찾아봤더니 '정도가 심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사용가능한 표준말이 아닌가.

그러니까 '개싫어'라는 말이 아주 비속어는 아닌 셈이다. 어쨌든 <서민의 개좋음>은 개가 좋다는 의미로 쓴 것 같은데 '개가 무척 좋다'라는 의미가 연상되기도 한다. 일전에 내 장서표를 만들 때 판화가가 나를 상징하는 동물과 식물 하나를 알려달라고 했을 때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고 개와 백일홍(할아버지 산소에 피어나는 꽃이다)을 선택했다. 

그런데도 나는 개를 키우지 않는다. 아무래도 제대로 키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미용실을 예약하고 시간을 내서 들르는 것도 귀찮아하는 내가 어떻게 반려견을 제대로 관리하겠는가. 더구나 나는 지난 17년 동안 어머니 병구완을 하면서 걱정을 하고 마음을 졸이면서 살다가 결국엔 어머니를 다른 세상으로 보냈지 않는가. 나에게 반려견이 있다면 더 없이 행복하겠지만 아프고 병들고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마주할 슬픔이 두렵다. 

<서민의 개좋음>은 반려견을 입양할지를 두고 고민하거나 이미 반려견을 가지고 있는 모두가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2017년을 기준으로 매년 버려지는 유기견이 8만 마리라고 한다. 개를 학대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견주들이다. 반려견을 버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개를 단순히 비용이 저렴한 경보장치로 생각하고 무거운 쇠사슬로 평생 동안 묶어두는 사람도 개를 학대하는 사람들이다.

<서민의 개좋음>을 개를 키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꼭 읽어서 개를 키우기 위해서 필요한 자격, 조건, 마음가짐을 알았으면 좋겠다. <서민의 개좋음>을 이미 개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 꼭 읽어서 개를 위해서 해주어야 할 주인으로서의 도리와 의미를 알았으면 좋겠다.

서민 선생이 말하는 개를 키울 자격은 이렇다. 첫째 식구 모두가 개를 좋아해야 한다. 나처럼 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아내가 있으면 개를 키워서는 안 된다. 반려견은 주인에게 사랑 받고 싶어서 꼬리를 흔들며 다가가는데 주인이 무서워하며 뒷걸음하면 개가 느끼는 혼란은 상상을 초월할 테니까 말이다.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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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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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무슨 일이 있어도 개를 책임져야 한다. 개를 그냥 살아 숨 쉬는 장난감 정도로 생각하고 별 생각 없이 입양했다가 그 귀여운 동물이 침대나 아끼는 옷에 똥을 싸기도 하며, 아프면 큰돈이 들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반려견을 버리는 사람이 많다. 반려견의 생로병사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함께 해야 견주가 될 자격이 있다.

셋째 개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단순히 외롭다고 개를 입양해서는 안 된다. 개가 당신이 출근을 하고 나면 하루 종일 문 앞에서 당신을 기다린다고 생각해보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하는 싱글족들이 개를 키워서는 안 되는 이유다. 

넷째 개를 기울 만큼 충분한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최소 오만 원 내외의 미용비를 시작으로 개 한 마리를 키우는 데는 많은 돈이 든다. 개 치료비로 50만 원을 기꺼이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개를 키울 자격이 있다.

반려견과 함께 하면서 해주어야 하고, 해주면 좋은 것들은 <서민의 개좋음>에 하도 많아서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서민 선생은 과연 대한민국 '1% 개빠'라는 것이 실감된다. 서민 선생은 <서민의 개좋음>의 차별성을 개를 키우는 사람이나 키우려는 계획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라는 데 있다고 밝혔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물론 다른 매체나 책에서 전혀 보고 듣지 못한 '슬기로운 견주 생활'에 대한 노하우가 많기도 하지만 서민 선생 특유의 유머스러운 문체가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책의 중간 중간에 유머가 마치 지뢰처럼 숨겨져 있어서 방심을 하고 읽다가 갑자기 폭소를 터트리는 바람에 입안에 있던 과자 부스러기가 분출되는 불상사를 조심해야 한다. 

태그:#서민, #반려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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