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론 테이트. 그녀는 1960년대에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던 배우였고,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로만 폴란스키의 부인이었다. 떠오르는 샛별이었던 그녀는 1969년, '찰스 맨슨'의 사주를 받은 약물 중독자 4명에게 습격을 받아 같이 있던 친구들과 함께 살해당했다. 당시 샤론은 임신 8개월이었기 때문에 에 그녀의 죽음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샤론 테이트 사건'을 소재로 하는 만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9번째 영화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1960년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다. 끔찍한 살인사건이 암시하듯, 1960년대 할리우드는 화려하게 빛나던 40년대의 모습과는 달랐다. 투자받는 자본도 줄어들고, 새로운 형식의 유럽 영화들에도 도전받으면서 할리우드는 조금씩 쇠퇴하고 있었다. 이처럼 빛바래 가는 할리우드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바탕으로, 쿠엔틴 타란티노는 자신만의 의외성과 전형성을 조금씩 섞어가며 '샤론 테이트 사건'과 할리우드를 밝게 다시 채색한다.

영화에는 3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우선 허구의 인물이 2명 있다. 배우 경력의 정상을 밟고 쇠퇴기에 접어든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리고 잘 나가던 스턴트맨이었지만 지금은 릭의 매니저로 일하는 '클리프(브래드 피트)'가 그들이다. 세 번째 주인공이자 유일한 실존 인물은 바로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다. 영화는 세 인물이 경험하는 3일의 시간을 스크린에 펼쳐 보인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스틸컷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스틸컷 ⓒ 소니픽쳐스


흥미로운 것은 <워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이 주인공들에게 부여하는 의미와 그들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버디무비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영화 전개의 8할을 책임지는 릭과 달튼의 호흡은 할리우드의 쇠퇴와 새로운 가능성을 암시한다. 한창 잘 나가던 서부극의 주인공이었으나 나이가 들고 한물가면서 떠오르는 신예들에게 밀려서 조연과 단역으로 전락한 릭. 환하게 빛나던 스타였던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얼굴이 영화에 중요하지 않은 현실에 좌절하고, 소설 속 인물과 자신을 동치 시키면서 눈물을 보인다. 한편 클리프는 과거를 그리워하면서도 함께 일했던 영화 제작자 '조지 스판(브루스 덕)'을 만난 후 현실을 인정하려는 듯 보인다. 그렇기에 클리프는 릭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새로운 도전으로 이끌어 줄 수 있다.

클리프는 세트장에서 릭에게 모든 역량을 보여주라고 당부한다. 그는 이탈리아 웨스턴 영화에 릭이 출연하는 것을 지지하며, 이탈리아에서 나름 성공을 거둔 릭이 미국으로 돌아가서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겠다는 결심도 존중한다. 이러한 전개는 실제 할리우드 역사를 의인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60년대 말 할리우드는 프랑스의 '누벨바그' 영화들이나 이탈리아의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들의 영향을 받아 세대교체를 이루고 도약의 가능성을 발견한 바 있다. 그리고 이는 릭과 클리프의 스토리와 큰 연관성이 없는 샤론의 비중이 왜 영화 내에서 상당한지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극장에서 감상하며 주변 관객들의 반응을 즐기는 샤론은 떠오르는 스타다. 릭과 클리프의 시대를 넘겨받는 세대이자, 릭이 경험한 가능성을 꽃피워야 할 세대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시각으로 영화의 엔딩을 접하면, 그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샤론에게 닥칠 비극을 살짝 비틀어 오히려 통쾌한 복수극을 선사한 뒤 샤론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기 때문이다. 릭과 샤론, 한 물 갔지만 가능성을 발견한 할리우드와 자신만만하게 떠오르는 할리우드가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마치 릭과 샤론 둘 모두 더 희망적이고 밝은 미래를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는 듯이.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스틸컷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스틸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이러한 인물과 시대의 연결성은 각 인물들의 발걸음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지치고 힘이 빠진 릭의 발걸음. 힘이 들어가 있지는 않으나 아직 단호하고 각이 잡힌 클리프의 발걸음. 사뿐사뿐하고 경쾌한 샤론의 발걸음. 영화는 세 명의 발걸음을 반복해서 카메라에 담는데, 이를 통해 인물의 상황과 개성, 할리우드의 과거와 변화, 그리고 엔딩의 개연성까지 확보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 이 세 배우들이 필요했던 이유를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할리우드의 역사와 미국의 대중문화사를 다루는 영화이기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전개되는 방식도 낯설다. 타란티노 감독의 개인적 취향이 듬뿍 들어갔기 때문이다. 샤론 테이트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영화의 방향을 예상하기 어렵다. 히피족들이 재등장하기 전까지 영화의 전개는 상당히 느슨하고 지루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사실 자신이 뭘 하더라도 관객들이 따라와 줄 거라는 타란티노 감독의 자신감이 엿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60년대 할리우드의 향취를 실컷 풍긴다. 이를 위해 화면의 비율, 흑백 화면, 영화 세트장, 음악, 모든 것을 활용한다. 서부극 주인공들의 구도가 반복해서 등장하거나, 이소룡을 오마주한 것처럼 다양한 고전 영화들도 빠짐없이 등장시킨다. 마치 샤론 테이트가 본인이 출연한 작품을 영화관에서 보듯이, 타란티노도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들을 본인 작품에 최대한 반영하려고 하는 것처럼.

하지만 히피족이 등장하면서 시작되는 영화의 후반부는, 마침내 기대하던 바를 충족시켜 준다. <장고: 분노의 추격자>와 같은 전작들에서도 보여주었듯이 과장된 액션, 잔인하고 충격적인 묘사,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유쾌한 분위기에 담아내는 연출은 앞선 2시간 동안의 답답함을 일거에 해소시켜준다. 작중 배우도 결국 가짜 아니냐라며 까이던 릭이 보여주는 충격적인 액션은 타란티노가 생각하는 영화, 그의 영화 스타일을 오롯이 대변하는 듯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영화적 상상력으로 과거를 스크린에 구현했다는 점에서 데이미안 셔젤 감독의 <라라랜드>와 유사하다. 다만 <라라랜드>가 경의를 담아 역사를 재현했다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영화 안에서 역사의 비극을 대신 복수하고 애정이 듬뿍 담긴 위로를 건넸다는, 방향성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처럼 영화산업을 영화 안에 담고, 끔찍한 역사에 대해 영화적으로 위로를 건네고, 유쾌하고 희망차게 재탄생시킬 수 있다는 점. 이 영화를 보면서 할리우드의 힘과 타란티노의 상상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지 않을까. 비록 친절하지는 않지만, 비극을 희망으로 재탄생시키는 힘을 보여주는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 관련 사진.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 관련 사진. ⓒ 소니 픽쳐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게재한 글입니다
영화리뷰 쿠엔틴 타란티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드 피트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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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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