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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설리의 죽음 소식을 전하는 AP통신 기사의 제목을 보고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되었다. '설리, 보수적인 한국 속 페미니스터 파이터'란 표제와 '대중 반발 감수하고도 자유롭게 자신 표현한 아티스트'라는 부제가 따라 붙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고 설리에게 아무런 댓글도 달지 않았건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선정적인 댓글과 인신공격적인 말에 상처를 받고 상처가 아물면 다시 곪아 터지는 시간을 보냈을 그녀를 생각하며 고개를 숙여 잠시 묵념하였다.
  
쾌활한 성격과 말투만큼이나 일부 누리꾼이 내뱉는 수준 이하의 댓글 정도는 그냥 툴툴 털어 버릴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도 인간이었다. 작은 돌팔매에 멍이 들어 시간이 흐를수록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흔히 말하는 사회적 타살이 아닐까?  
나혜석
 나혜석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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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나혜석이 생각났다. 설리와 나혜석 두 여성이 중첩되며 20년전 대학시절 나혜석의 수필집과 그림을 보고 '식민지 시대, 시대를 넘어 앞서 나가다가 죽었다'며  안타까워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문화원형백과에는 나혜석 소개 첫 문구로 '인형이 되기를 거부한 영원한 신여성'으로 되어 있었다. 인형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이 하라는 대로 할 수 밖에 없는 여성을 비유한 것이고 신여성은 그것을 깨는 폐미니스트의 선각자로 해석하였다. 그를 소개하는 대부분의 글에서 일제 식민지 시대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이자 여권운동가라고도 되어 있다.

그는 조선에서 해외에서 유명세를 탔고 여러 미술전을 열면서 사회적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그는 '앞서나가는'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그녀는 설리처럼 이 땅에서 사라져야만했다. 나혜석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혹자는 그를 우리 나라 최초의 이혼녀라고 한다.

나혜석은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이혼에 이르는 과정을 쓴 '이혼고백장(1934년)'을 발표했다. 책의 일부에는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리. 그러니 소녀들이. 깨어나 내 뒤를 따라오라'라는 내용이 있다. 이 책은 엄청한 반향을 몰고 왔다.

조선의 가부장적 사회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려면 남성부터 정조를 지키라고 했다. 한 발짝 더 나가 정조라는 것은 강요할 수 없고 주체의 자유 의지에 속하는 '취미'라고 말했다. 이 주장은 그녀를 사지로 내몰았다. 거리에서 돌팔매질까지 당했다고 한다. 그녀가 그린 그림이 불탔고 그녀는 병이 들었다. 그런 그녀를 가족,친지도 외면했다. 결국 쓸쓸히 행려병자로 죽었다. 필자는 지금 이 순간 설리에게서 그녀를 보고, 그녀에게서 설리를 본다. 설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다른 요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남성들의 혐오적, 냉소적 비웃음과 비난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권신장이나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시대는 지났고 그것을 여전히 주장하는 여성이나 단체는 그것에서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는 서구 유럽처럼 남녀평등을 넘어 남여존중의 시대에 진입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무 낭만적인 생각에 도취된 나를 돌아본다. 여전히 남성중심의 가정폭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수치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여성혐오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는 뉴스에 귀를 열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아직 우리 사회가 폭력적인 남성중심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자각한다.  

나혜석이 겪었을 식민지 조선시대 현실과 설리가 겪었을 고통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남성들이며 여성을 향해 비웃으며 돌을 던지는 야만적 행태를 그만 하자.

태그:#설리, #나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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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주로 입시지도를 하다 중학교로 왔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나누며 지식뿐만 아니라 문학적 감수성을 쑥쑥 자라게 물을 뿌려 주고 싶습니다. 세상을 비판적으로 또는 따뜻하게 볼 수 있는 학생으로 성장하는데 오늘도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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