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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2일, 강남역 철탑에서 넉 달 넘게 고공농성 중인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는 서초동 촛불의 100분의 1이라도 함께 해달라고했다. 그러나 서초동 촛불은 강남역 김용희를 향해 움직이지 않았다. 수백만이 모여서 외친 검찰개혁의 에너지는 노동자 투쟁에 힘이 될 수 없는 걸까?

'그래도 되는 나라'를 만드는 검찰

지난 8월 29일 대법원은 한국도로공사가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을 불법파견으로 사용해왔으며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도로공사 이강래 사장은 꿈쩍도 하지 않고,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을 환경정비 업무로 채용하거나 거부하면 자회사로 계약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불법파견의 '불법'이 무색한 상황이다. 도로공사 이강래 사장은 무엇을 믿고 그러는 것일까?

"대한민국은 그래도 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15년 동안 11번의 불법파견 판단을 받았고, 최근 간접공정까지 추가 판결이 나와서 12번의 불법파견 사례가 쌓여있다. 하지만 15년 동안 현대기아차 사용자들은 그 누구도 파견법 위반으로 조사받거나 기소된 적이 없다. 아니, 최근 한 건이 기소되었는데 법원이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내용의 절반만 기소해 오히려 공식적으로 절반의 책임만으로 끝나게 만들었다. 아사히글라스, 한국지엠, 파리바게뜨 등은 불법파견으로 판단되고도 과태료 처분으로 끝났다. 그나마 부과된 과태료마저도 내지 않고, 과태료 처분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접수하면 그만이다.
 
사장에게는 솜방망이, 노동자에게는 철퇴?!
▲ 노동법위반 강력수사 촉구 캠페인 사장에게는 솜방망이, 노동자에게는 철퇴?!
ⓒ 함께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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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 살인만 범죄가 아니다. 직접 고용해야 하는 노동자를 도급으로 위장해서 고용하는 행위도 법에서 금지한 범죄행위다. 그러나 15년 동안 12번 불법파견을 판정받았는데도 범죄행위가 버젓이 계속되도록 방치하는 것은 검찰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현대기아차 노동자들은 2018년 10월에는 불법파견 사건 담당 검사를, 2019년 10월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직무유기로 고발했다.

검찰과 노동자, 그 뜨거운 상관관계

불법파견 뿐만이 아니다. 임금체불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처벌되는 범죄지만, 무혐의로 사건종결 내지는 정식재판으로 넘기지 않고 약식명령으로 벌금 내고 끝인 경우가 허다하다.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이 정식 재판에 회부하지 않으니, 반복된다.
  
노동관련 범죄에는 턱없이 낮은 검찰 기소율
▲ 노동법위반 강력수사 촉구 캠페인 노동관련 범죄에는 턱없이 낮은 검찰 기소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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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주는 작업 현장을 안전하게 만들 의무가 있는데, 이 안전조치 의무를 지키지 않아서 노동자가 사망하는 것도 중대 범죄다. 2012년 엘지화학 청주공장에서 다이옥신 폭발 사고로 8명이 사망했으나, 검찰은 경영진은 무혐의 처분하고 관리자인 공장장만 기소했다. 그뿐만 아니라 노동자 사망사고는 하청 노동자인 경우가 많은데, 대기업인 원청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기소하는 사례는 거의 전무하다.

헌법에서 보장한 노동조합을 애써 만들었더니 협박, 회유, 불이익 등으로 노동조합을 약화하고 없애려고 하는 것도 심각한 노동 범죄이다. 유성기업은 원청인 현대차가 직접 개입하고 창조컨설팅이라는 노무법인이 설계하여, 노조 탄압이 시도된 대표적인 사례다. 노동부는 당시 유성기업의 부당노동행위를 확인하고 구속의견을 내고, 임원들의 출국 금지를 요청하고 PC 등 증거인멸의 우려를 전달했으나, 당시 검찰은 이를 외면하고 핵심 혐의를 모두 기소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2016년 유성기업 조합원 한광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청이 고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서초동 한복판에서, 이런 내용을 외치기 위해 모인 노동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사용자가 노동법을 위반해도 제대로 수사나 기소가 이루어지지 않고 반대로 이러한 문제에 항의하는 노동자에게는 엄정하게 대응하는 현실을 규탄했다. 이런 주장을 담아 '노동법 위반행위 강력수사 촉구를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검찰개혁 시작으로 노동개혁 적폐청산
▲ 노동법위반 강력수사 촉구 캠페인 검찰개혁 시작으로 노동개혁 적폐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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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행사의 스피커 음향 때문에 이들이 외치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는데도 피켓의 구호를 보고 찾아온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서명을 시작했다. 그중 누군가는 한글자 한글자 꼭꼭 눌러 서명하고 나서 "이런 이야기가 더 빨리 나왔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검찰개혁 촛불을 든 시민들은 서명에 동참하던 그 순간 조국이 아니라 임금체불, 산재 사망에 분노하는 노동자가 되었다.
  
가장 분노하는 노동법 위반 행위는? 노조파괴
   
내가 가장 분노하는 노동법 위반은?
▲ 노동법위반 강력수사 촉구 캠페인 내가 가장 분노하는 노동법 위반은?
ⓒ 신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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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가장 분노하는 노동법 위반 행위는'이라는 질문에 많은 시민이 "노조파괴"라고 답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0%인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차별하고, 협박하고, 탈퇴를 강요하는 행위에 가장 분노한다고 답한 것이다. 노동조합은 모든 노동자의 권리이며, 이것은 무엇으로도 훼손되어선 안 된다는 노동권의 가치가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 촛불은 서초동에 있었으나 스티커를 붙인 사람들의 마음은 강남역으로 날아가 삼성의 무노조 경영 피해자, 노동자 김용희에게 가 닿았을 것이다. '노조파괴'에 분노한다고 스티커를 붙이는 시민들의 손을 지켜보며, 서명운동을 벌인 노동자들은 '내가 바로 김용희다'라는 마음으로 서초동을 지켰다.
  
내가 가장 분노하는 노동법 위반은? 노조파괴!
 내가 가장 분노하는 노동법 위반은? 노조파괴!
ⓒ 신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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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서명운동을 준비한 '함께노동(준)'의 한 회원은 "서초동 촛불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강남역으로 행진하자고 제안하고 싶었다. 마음은 강남역에 있지만 서초동에 있는 것이 한편으로 마음이 무겁기도 했는데, 지금은 어쩐지 김용희씨와 함께 있는 기분이 든다. 우리의 마음이 서초동에 있는 시민들에게도, 김용희씨가 있는 강남역에도 전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촛불은 어디에서 밝혀질까

이날 약 4시간 동안 서명에 동참한 시민은 총 928명. 서초동 촛불은 일단락되었고 무언가 아쉬운 노동자들의 마음도 이제 다음 자리가 어디인지를 찾고 있다. 조국 사퇴 후폭풍은 국회 안의 여야 간 겨루기로 옮겨져 가고 있다. 국회 안에서는 또다시 노동권 후퇴가 예정되어 있다.

지난 10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기업의 애로를 해소해야 하고 탄력근로제 확대법안의 국회 통과가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이어서 10월 11일 경사노위는 청년, 비정규직, 여성 계층 대표를 배제하고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를 전격 합의했다. 불법을 수사하지 않고, 불법이던 것도 불법이 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 검찰, 국회, 정부 동시 합작으로 진행되고 있다.

10월 12일 서초동에 노동자 몇몇이 모여서 그들을 향해 아주 작은 공을 쏘아 올렸다. 그 공을 본 사람들은 같은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촛불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서로의 구체적인 얼굴을 확인한 이들은 다음을 예비할 힘이 생겼다. 노동자가 서초동에서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날아갈 다음 방향은, 바로 노동권을 후퇴시키는 국회와 정부, 재벌을 향한 싸움이 될 것이다.

태그:#노동법, #노동운동, #검찰개혁, #노동조합, #재벌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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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오월 공인노무사. <세상을 바꾸는 2022 대선공동행동>, <사라진 노동찾기 대선행동단>에서 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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