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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최진리(설리)씨.
 고 최진리(설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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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 최진리(설리) 님을 잘 모릅니다. 직접 만난 적도 없으니까요. 글을 쓰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도 충격이었지만, 소식을 접한 주변의 또래 청년들의 안타까움과 분노를 접했습니다. 고인이 겪었을 고통에 개인적 경험이 겹쳐져 글을 쓸 용기를 내어 봅니다. 악플의 저주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고백이자 한편으로는 사회적 고발입니다.

악플의 힘, 무간지옥을 경험하다 

'악플의 힘'은 '정신적 고사'라고 생각합니다. 악플에 대한 경험은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20대 병역거부 시절 때의 일입니다. 지금이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서 '정당한 권리'로 인정받은 행위이지만 당시에는 개념조차 생소했었고, 3년 이하의 실형에 처해지는 엄격한 불법행위였습니다. 어느 정도 사회적 비난을 각오했지만, 온라인 악플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기억하기에 한 언론사의 기사에 무려 1만40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인터넷 문화 초창기였던 2000년대 초반 기준으로는 어마어마한 양이었고, 거의 대부분 원색적인 비난과 욕설로 가득했습니다.

댓글 속의 저는 '매국노'였고, '정신병자'였고, '가짜 불교인'이었으며, '사기꾼'이자 '쓰레기인생'으로 묘사됐습니다. 희로애락이 스며 있는 하나의 인생이 그저 허술한 단어 몇 개로 규정되고 낙인 찍혔습니다. 그들은 성이 차지 않을 때는 부모와 형제들을 불러냈습니다. 심지어 '네 지인이 강간당해도 가만있나 보자'라고 위협했습니다. 그것도 성이 차지 않을 때는 제 사진에서 목을 잘라 십자가에 걸어두기까지 했습니다. 당시 제게 있어서 인터넷은 끝이 보이지 않는 '무간지옥' 같은 곳으로 느껴졌습니다.

난생처음 경험해보는 원색적 악플에 대해 느꼈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은 '억울함'이었습니다. 그들은 묻지 않았고,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으며,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날은 억울함이 복받쳐서 뜬눈으로 새벽을 맞은 적도 있었습니다. '진실은 그렇지 않아, 내 이야기를 좀 들어 줘!'라고 절규했으나 이진법화되지 못했던 '감정코드'는 사이버 세계의 강을 결코 건너지 못했습니다.

초창기에는 그 댓글들을 하나씩 죄다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나중엔 오기의 발동이기도 했습니다. 때론 이를 악물었고 때론 부정했고, 때론 가슴이 미칠 것처럼 뛰었고 때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이유를 다 알 수가 없었습니다. 떨리는 심장 소리와 한숨, 그리고 눈물은 그들에게 닿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언어와 나의 언어는 극히 짧은 행간을 두고도 결코 만나지 못했습니다.

가장 힘이 들었던 것은 '답글' 혹은 '댓댓글'을 달 수 없을 때였습니다. 나에겐 방어권이 없었습니다. 무수히 쏟아지는 악플은 마치 전쟁터의 빗발치는 총탄 같을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누가 총을 겨누는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오직 전쟁터 한복판에서 무장해제 당한 채 홀로 서 있는 두려움과 아득함만이 밀려왔습니다.

악플에 댓글을 달 수 없는 이유

때론 엄폐물에 몸을 숨겨 회심의 반격을 위한 '복수의 말'을 갈고 닦은 적도 있었습니다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처음 떨리는 손으로 댓글에 대한 답글을 한마디 적고 난 직후,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답글은 그들에게 나의 위치와 신분을 노출시켰습니다. 그들은 드러나지 않지만 나를 훤히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제 약점과 상처를 찾아 집요하게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상대가 누구인지도, 왜인지도 모른 채 총알받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대응하지 않는 것이 이기는 거야'라는 자기 최면만이 유일한 위안이 됐습니다.

주변에서는 이런 속사정을 듣고 곧잘 충고했습니다. '그러게 뭣하러 댓글을 읽고 그래, 읽지 마'라고 아주 간단하고 쉽게 충고했습니다. 스스로 헷갈렸습니다. '읽어봤자, 내 손해'라는 이성적 논리와 '도대체 나를 왜 괴물로 보는 것일까?'라는 감정적 무의식이 충돌했습니다. 하지만 무의식은 이성을 지배했습니다.

보지 않을 인내와 무대응의 용기는 쉽게 초월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무시와 자기최면을 무한반복하면서 조금씩 무뎌지는 것일 따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착각이었죠.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천년 거목도 잔 도끼질 천 번이면 거꾸러진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경험하면서 깨달았던 건 악플에는 결정적 한방이라는 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툭' 내뱉은 별 것 아닌 단어들이 쌓이고 쌓여 안으로부터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악플러에게 시달리는 이들에게 '그러게 뭣 하러 보니?'라는 책망은 하등 위로가 안 되는 일입니다. 정말 돕고 싶다면 그저 옆에서 함께 지켜봐줬으면 합니다.

기사와 악플이 무한반복적으로 집중되던 시기는 꼬박 3년여였습니다. 3년여의 재판이 종지부를 찍고 감옥에 가서야 역설적이게도 저는 악플의 감옥에서 해방됐습니다. 감옥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댓글을 볼 방도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악플로부터의 자유, 감옥
 
 2005년 3월,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수감 중인 필자가 국회 국방위원회 공청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는 모습.
 2005년 3월,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수감 중인 필자가 국회 국방위원회 공청회에 출석해 증언하고 있는 모습.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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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때론 아이러니합니다. 감옥에 갇혀서야 자유의 몸이 되다니 말입니다. 그나마 감옥이라는 피난처라도 있었다는 것을 위안 삼을 수 있을까요? 무명의 청년에게도 이 정도였는데, 인기와 명예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방송인과 정치인은 쉽게 안식처 혹은 도피처를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기도와 명상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어쩌면 비난의 화살이 주는 물리적 아픔보다 그 화살을 맞으면서도 스스로를 자책하고, 무기력의 늪으로 빠져드는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오래 길들여지다 보면 악플러보다 자신을 더 미워하고 싫어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 감정이 단단해지기 전에 해체시키거나 빠져 나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교의 전통에 따르는 이 마음공부법은 큰 위안과 힘이 됐습니다. 어느 순간 악플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설령 면전에서의 비난과 욕설에도 어느 정도 웃어넘기는 여유와 힘을 갖게 됐습니다. 급기야 '반대자와 친구하기'에까지 도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이제 겨우 25살이었습니다. 그녀의 솔직함과 자유로움이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피해나 상처를 준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20대라 하면 세상은 온통 신비로우며 호기심이 삶을 이끌 때였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 나를 던져 산산이 부서진다 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껏 자신만만 하다가도 가벼운 불씨 하나에 산산이 녹아버릴 수 있는 불안하고 나약한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얼음공주 엘사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20대는 엘사의 얼음 정체성처럼 아름다움과 위험성을 동시에 가진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녀에게 사이버 세계에서 날아오는 정체불명의 화살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었을까? 오죽했으면 겨우 스무 살의 나이에 은퇴를 결심했을까 싶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오히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녀의 솔직함과 자유로움은 치명적인 화살이 돼 돌아왔던 것 같습니다. 어떤 네티즌의 비난처럼 '악플을 단 이들이 살인자다', 이런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누군가의 고통에 대한 이해에 관한 것입니다.

인터넷 선진국의 오명, 악플러의 천국 
 
 사이버 세계는 엄폐물이 너무 많아 누구라도 너무 쉽게 자신의 몸을 숨긴 채, 상대의 심장을 향해 치명적인 화살을 쏠 수가 있는 공간입니다.
 사이버 세계는 엄폐물이 너무 많아 누구라도 너무 쉽게 자신의 몸을 숨긴 채, 상대의 심장을 향해 치명적인 화살을 쏠 수가 있는 공간입니다.
ⓒ px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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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성의 선의'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로빈후드의 선한 도둑질이나 김밥 할머니의 몰래 기부처럼 아주 가끔의 특별한 일입니다. 대체로 자신을 숨길 때 '양심'보다는 '욕망'의 지배를 훨씬 강하게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사이버 세계는 엄폐물이 너무 많아 누구라도 너무 쉽게 자신의 몸을 숨긴 채, 상대의 심장을 향해 치명적인 화살을 쏠 수가 있는 공간입니다.

오래전부터 한국의 사이버 문화가 지극히 폭력적이며 일방적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물론 국가권력 혹은 불의한 권위에 대한 저항의 수단이자 통로로서 사이버의 익명성 그리고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어느 정도 보호돼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타인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주 내에서, 나아가 공동체와 사회가 합의한 관용과 규범 내에서 가능한 것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인터넷 선진국'이라는 자부심 아래 '익명의 폭력성'에 대해 너무 방관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조국 장관과 가족에게 쏟아진 200만 건의 기사에 달린 댓글이 얼마였을까요? 영화 <조커>의 광기와 폭력의 근원에는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거리폭력, 타인의 조롱, 매스미디어의 비웃음이 있지 않았나요? 누군가에겐 유희와 배설의 공간이 누군가에겐 폭력과 생사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설리의 죽음에 우리 모두가 공범일 수는 없으나, 이대로 방치한다면 또 다른 비극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악플러에게 유난히 관대하며 관용적입니다. 사이버 명예훼손죄와 모욕죄가 처벌의 범주 정도입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혐오표현을 형사범죄로 여겨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으며, 표현의 자유를 헌법 1조로 명시한 미국에서조차 혐오와 차별에 관한 처벌 규정을 매우 강력하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악플을 방치·방관하는 것은 사이버 상의 총기 규제를 해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인터넷망과 스마트폰 보급률을 가진 대한민국의 미래세대는 자신도 모르게 피해와 가해의 공간에 빠져들 것입니다. 그녀의 죽임이 헛되지 않는 길을 찾는 것이 우리의 몫은 아닐까요?

어느덧 돌아보니 20년 전의 옛 일이 됐습니다. 때로는 견디기 어려울 것만 같았는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악플러들과는 싸울 가치가 없고, 달랠 수 없으며, 눈길을 줄 이유도 없고, 극복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위안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오늘도 악플의 감옥에서 신음하는 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습니다.

"님아, 부디 그 강을 건너진 마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미래당(우리미래)에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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