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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가지 나쁜 사과가 있다. '말로만 하는 사과'와 '말로도 안 하는 사과'다. 둘 다 끝 모를 자존심 싸움이다. 잘못을 뉘우치고 상대방에게 진심을 다해 용서를 구하는 것이 맞지만 실제로는 치열한 내면 갈등으로 연장된다. '사과하는 것이 나에게 도움 되는지' '괜히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행위가 아닌지' 머릿속에 여러 계산이 맴돈다. 가진 게 많을수록 사과가 부담스럽다.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는 게 우선인데, 그게 쉽지 않다. 자기를 내려놓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자기를 쉽게 내려놓지 않는다. 권력 앞에서 '사과는 곧 사퇴'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칼 슈미트는 저서인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정치란 적과 동지의 구별'이라고 했다. 보통 사과는 서로 화해의 계기가 되지만 정치인에게 사과는 적에게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죄가 클수록 입을 싹 닫는다. 겨우 내뱉는 '말로만 하는 사과'는 이미 질타를 다 받은 뒤, 또는 엄청난 죄가 드러나는 전조 단계라 시기상 그 진정성을 믿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 때 국민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흘린 눈물의 사과는 '감정적 호소가 필요'라고 적힌 기무사 문건과 함께 '악어의 눈물'임이 밝혀졌고, 국정 농단 사태에서 탄핵까지 그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자신을 향한 '미투 운동'이 벌어지자 SNS 상으로 '모두 제 잘못'이라며 사과를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합의에 의한 관계'라며 발뺌했다.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은 세월호 참사를 두고 '시체장사', 5.18광주 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고 빗대 질타를 받은 뒤 사과했지만 3개월 만에 당 지도부로 복귀했다. 그는 "당의 밝은 미래를 위한 건강한 토론이라고 생각한다"는 등 마치 제3자로 자신을 바라보며 죄의식을 지웠다. 악어가 비웃을 일이다.

정치인의 '말로만 하는 사과'는 더 이상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 조국 법무부 장관은 수차례 자신의 의혹에 사과하고 해명했지만 사퇴 압박은 더 거세진다. 그의 사과가 믿을 수 없을뿐더러 사퇴 유무에 따라 승패가 판단되기 때문이다. 야당은 오랫동안 칼날을 갈았다는 듯 박근혜 정부 때와 비교하며 지금 상황을 '헌정 농단'이라고까지 표현한다. 당 지도부는 삭발과 단식까지 감행한다.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는 게 우선인데, 그게 쉽지 않다. 자기를 내려놓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는 게 우선인데, 그게 쉽지 않다. 자기를 내려놓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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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진실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바다에 빠져 죽을뻔한 사람에게 물의 양보다 그 자체가 두렵듯 집단이 기억하는 고통도 마찬가지다. 말로만 내뱉던 정치인들의 위선적인 사과가 아픈 기억으로 남을 뿐이다. '믿을 놈 없다'는 정치혐오는 그렇게 정당성을 얻는다. 여야가 벌이는 '조국 지키기 대 조국 내리기'라는 전형적인 기득권 싸움에 시민은 지치고 그 속에서 벌어진 여론 조사는 마치 진실처럼 왜곡된다. 반복해서 말로만 하는 사과가 낳은 비극적 정치 현실이다.

말로도 하지 않는 사과가 있다. 언론이다. 빠른 보도보다 정확한 보도가 중요하다는 데는 기자와 독자 모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언론의 보도 행태는 현실에서 그러지 못하다. 전체 맥락에서 벗어나거나 잘못된 보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과하지 않는다. 과욕 때문이든, 부주의 때문이든, 과도한 축약 때문이든, 혹은 악의적인 목적이 있었든 '오보'의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국민의 알 권리만큼 정정 받을 권리도 중요하지만 언론은 망각한다. 오히려 알 권리를 빌미 삼아 신속하게 보도하려다 보면 '오보는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인다. 결국 사회는 더 큰 혼란에 빠지지만 언론은 입을 닫는다.

'조국 딸이 포르쉐를 탄다' '시험 한 번 안 보고 외고, 고대, 의전원을 갔다' '의전원 합격 직전에 생일을 7개월 늦췄다' '조국 아들은 학교폭력 가해자다' 등의 오보는 야당 의원들로부터 제기된 의혹이지만 언론은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퍼 날랐다. <중앙선데이> 정도가 '참여연대가 조국 사퇴 성명'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쓴 뒤 참여연대 측 항의를 받자 정정보도를 실었을 뿐이다.

사람이 살면서 '고맙다' '미안하다'라는 말만 잘 하고 살아도 행복한 삶이라고 하는데 사과를 제대로 받은 기억이 없다. 모든 비겁한 말을 쏟아내다가 구속되기 전 포토 존에서 겨우 '유감이다' '송구스럽다' 정도의 말을 들을 뿐이다. 언론의 정정보도는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 한다. 개인과 국가, 그리고 개인과 언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악어'와 '악어새' 관계다. 설령 정치를 혐오하고 언론을 불신한다면 그들에게 이제라도 똑바로 사과를 받아야 한다.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는 걸 바라는 게 아니다. 해명을 듣고 싶은 게 아니다. 처절하게 스스로를 내려놓고 반성하며 상대방에게 진심을 다해 용서를 구하는 한 마디의 '말'과 그걸 반복하지 않는 '행동'을 원한다. 나의 '행복추구권'은 '제대로 사과받을 권리'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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