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에는 영화 <조커>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조커

조커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그러니까 조커가 잘했다는 거야?"

영화 <조커>를 보고 상영관을 나서는데, 아리송하다는 한 남성의 말이 들렸다. 남편도 그 말을 들었는지, 이심전심이라는 듯 되물었다. "조커가 옳다는 거야?" 어허... <조커>를 내가 만들었나? 그나저나 물음에 즉답할 수 없었다. 뭔가 불편했고 찜찜했다. 하루를 묵히고 생각을 정리해 본다.

'조커의 울분에 공감한다. 하지만 잘했달 수는 없다.'
 
희망이 사라진 도시 고담에서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은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산다. 고작 연명할 만큼 밥벌이를 하고, 아들을 애완견처럼 '해피'라 부르는 온전하지 않은 늙은 어머니를 돌보며, 환자에게 영혼 없이 응하는 심리 상담사에게 약을 부탁하며, 왜 사는지 모를 이 세상을 견디고 있다.
 
하루에 7가지 약을 먹으며 우울을 잠재우는 아서는 이제 이마저도 받을 수 없게 된다. 저소득층에게 제공되던 상담과 투약 복지 예산이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고담시의 가혹함은 사회가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적나라하게 전시한다. 약이 끊긴 정신질환자에게 세상은 괴물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과 같다. 괴물의 아가리에 먹히느니 차라리 괴물이 되겠다고 앙다문 발악을 약자의 탓만으로 돌릴 수 있을까. 사회나 국가의 존립 이유가 강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테제가 여전히 유효하다면 말이다.
 
스토킹하던 이웃 싱글 맘(재지 비츠)과 연인으로 진전되는 장면에서 관객은 그의 망상을 눈치챈다. 그가 나르시시즘에 빠진 정도를 넘어 환각을 겪는다는 것은 이미 그가 상당히 위험한 정신질환자임을 알린다.
 
아서의 어머니 페니(프란시스 콘로이)가 고담시의 거물인 토마스 웨인(브레트 컬렌)에게 수십 차례 편지를 보내고 그 답장을 기다리던 어느 날, 아서는 몰래 어머니의 편지를 읽는다. 편지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아서는 웨인을 만나보고 싶다. 웨인을 만나 자신을 그냥 안아주면 되지 않느냐고 애원하는 아서는 어느새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어릴 적 소년이 되어 있다.
 
'조현병을 만든 어머니' 신화, 진부하다 
 
 영화 <조커> 장면

영화 <조커> 장면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웨인의 폭로로 자신의 출생과 성장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영화는 아서의 어머니가 정신질환을 앓았고, 이미 사람들로부터 "미친 여자"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는 사실을 제공한다. 하지만 영화는 싱글 여성인 페니에게, 그것도 정신질환자에게 어떻게 아이가 입양되었고, 왜 학대 속에 방치되었는지를 납득시키지 않는다. 아이를 혼자 키울 능력이 있는 여성이라도, 싱글인 여성에게 입양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 1980년대를 배경하고 있는 고담시에서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게다 아서가 어머니의 학대 속에 양육되다 그 트라우마로 정신질환을 가지게 되었다는 암시는, 영화가 '조현병을 만든 어머니' 신화를 너무 쉽게 차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조현병은 유전과 환경 그리고 뇌의 이상으로 생기는 복합적 질병이다. 조현병이 양육자인 어머니에 의해서 발현된다는 더 이상 합리적이지 않은 설정이 어디 조커뿐인가.

얼마 전 종영한 <검법남녀2>의 외과의사 장철(노민우)은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학대 당하고 심각한 다중인격장애를 겪는다. 드라마 <마더>의 설악(손석구)은 어릴 적 어머니에게 학대 당한 경험을 극복하지 못하고 어린아이를 죽이는 잔혹함을 보여준다. 이밖에도 '조현병을 만든 어머니' 신화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끊임없이 반복 재생된다. 어린 시절 학대의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삶을 지켜내고 이들에게 이런 빈번한 설정,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누구나 살면서 상처받는다. 그렇다고 상처받은 고통으로 모두 정신 장애를 겪는 것은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손쉽게 차용되는 '조현병을 만든 어머니' 신화의 또 다른 문제는, 현실에서 평범하게 만날 수 있는 범죄자의 모습을 지우게 하는 데 있다. 특정 정신질환자를 연쇄 살인범이나 흉악범으로 고정하게 함으로써 주변의 친밀한 범죄자를 소거시킨다. 몇 십 년이 지나 지금 밝혀지고 있는 화성 연쇄 살인범은 학대받은 정신질환자였을까?
 
물론 아이에게 있어 부모는 중요한 존재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아이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때 '극단적 애착이론'이 풍미하며 마치 부모, 특히 어머니가 아이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 이론은, 1세 때부터 양어머니 학대로 잘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던 형제가 정상으로 회복된 체코 연구 사례 등 여러 연구 이론으로 이미 비판과 도전을 받았다. 아이는 성장 과정에서 사회화되며 수도 없이 변하는 존재로서 부모보다 또래에게 더 많이 영향받으며, 어릴 때 문제가 성인이 되어 반드시 발현되는 것은 아니며, 부모에게 받은 심리적 영향이 두고두고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라는 연구도 엄연하다.(<아이들은 어떻게 권력을 잡았나> 참고)
 
<조커>의 어머니 페니는 불행한 여성이다. 거부인 웨인가의 가정부로 살았던 영화 설정처럼, 사회 저계급 계층의 여성에게 삶은 그리 녹록지 않다. 어쩌다 정신질환이 생겼을 것이지만(이 또한 영화는 과정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가난한 여성이 검진으로 조기에 질환을 발견해 치료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병은 깊어졌을 것이고 병든 채로 아이를 길렀을 것이다. 페니가 정신질환에 걸린 것이 그녀의 탓이 아니듯이, 아서의 조현 증세도 어머니의 광기로 단순히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 페니는 단지 아픈 사람이었을 뿐이다. 아픈 사람을 돌보지 않고 정신 이상으로 아이를 학대할 동안 손 놓고 있던 사회의 무능을 영화는 비껴가고 있다.
 
조커는 영웅이 될 수 없다
 
 영화 <조커> 스틸컷

영화 <조커>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아서의 광기를 들여다보자. 그는 성장하는 사회화 과정에서 타인에게 제대로 사람대접을 받아본 일이 없을 것이다. 때문에 그의 정신질환의 상당한 원인이 버려지고 학대받은 어릴 적 아이의 발현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그는 7가지 약물을 제공받을 뿐,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미쳐 돌아간다고 느낀다. 더 이상 미친 세상에 짓밟히지 않겠다고 결심하자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고, 어느새 약자들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서가 영웅이 되기 위해선(그의 영웅성에 동의하지 않지만), 적어도 약자의 비애를 볼모 삼아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자신의 출생과 양육에 대한 보복으로 아서가 어머니를 해치는 비정한 설정은, 무능하고 부재했던 사회적 책임엔 면죄부를 주고, 오직 학대한 어머니만을 단죄하고 있지 않은가.

'조커'로 변한 아서가 이웃집 싱글맘을 찾아가 위협하는 장면과 수용된 병원에 진료하러 온 여의사를 해치는 장면 또한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조커가 비록 반쪽짜리일지라도 영웅으로서의 정당성을 획득하려면, 적어도 해치는 자가 약자에게 조롱과 혐오를 일삼는 '갑'이어야 하지 않은가. '갑'이라는 위치성 또한 문제적이다. '슈퍼 갑'이 아니고서야, 갑이 을이 되고 을이 갑이 되는 부단한 전도가 빈번한 초자본주의 사회에서, 제거되어야 할 갑을 명확히 구별해 도려낸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다고 해서 조커가 딱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의 말대로 잃을 것이 없기에, 이 짜릿한 폭력의 질주를 멈출 이유가 없는지도 모른다. 조커를 의도치 않게 영웅이 되게 한 추동은, 착하게 살 때는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더니, 나쁜 짓을 저지르고 나서야 영웅화하는 아이러니에 있다. 그의 오도된 영웅성에 경도된 군중은 그의 가면을 쓰고 폭동 대열에 가세한다. 극단적 박탈감을 느끼던 군중들이 약자의 악마성에 환호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폭동은 혁명이 될 수 없다. 혁명을 이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대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처단을 목적한 혁명은 필연적으로 정의를 상실하지 않는가.
 
그렇더라도 이 광기의 군중에 쫄 사람은 좀 쫄아도 좋을 듯하다. 가령 직위의 본령을 내버리고 이전투구에 정신 빠져 있는 정치인들이나, 전체 부의 50%를 한 손에 거머쥐고서도 약자들의 밥줄을 쥐락펴락하는 1% 수퍼리치들 말이다. 고단한 몸을 누일 집 한 칸(방이 아니라), 제대로 된 식사, 아플 때 찾을 수 있는 의료조차 부재한 사회라면,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이 약자를 벼랑으로 몰아대는 사회라면, 어느 곳에서도 '조커'의 등장을 막을 길이 없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게시
조커 호아킨 피닉스 정신질환 조현병을 만든 어머니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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