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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경의선숲길에서 작은 책방을 1년 반 넘게 운영해 오며 책과 사람에 관해 경험한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 기자말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저자에게 선물받은 다음날 책이 도착했다.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저자에게 선물받은 다음날 책이 도착했다.
ⓒ 전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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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주인도 책 선물을 받는다. 올초부터 수요일 아침이면 열리는 '여성 작가가 쓴 SF소설 읽기 모임'의 멤버이자 정치학자 하승우 샘과 10주간 함께한 '사회과학강독회'에 참여한 기록노동자 희정이 직접 취재하고 기록해낸 결과물을 투척하고 사라졌다.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당신이 모르는,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오월의봄).

들려오는 출간 소식에 늦지 않게 준비하려고 도매상에 먼저 주문을 넣어두었는데 소식이 없더니... 책방도 저자보다 빠를 순 없는 건가.

희정을 알기 전, 나는 그의 책을 두 권 봤다. 여성노동자글쓰기회 이름을 달고 나온 공저 <기록되지 않은 노동>(삶창)과 희정의 이름이 또박또박 박힌 <노동자 쓰러지다>(오월의봄)이다.

전자는 '숨겨진 여성의 일 이야기'란 부제가 보여주듯, 늘 우리 곁에 있지만 노동이라고 인식되지 않거나 주목받지 못한 일을 하는 여성 노동에 라이트를 비춰주었고, 후자는 한 해 2천명이 일하다 죽는 사회, 불안정 노동이 고스란히 위험의 외주화로 연결되는 일터를 취재하고 기록하며 드러냈다.

이번 책의 무대도 일터다. 20, 30대 임금노동을 하는 청년세대 20여 명을 인터뷰했다. 대상은 퀴어, 성소수자들이다. 희정의 눈은 이상하게도 늘 가까이 있으나 마치 없는 것 같이 여겨지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던 그들의 모습과 소리를 보이게 하고 들리게 하는 재주를 가졌다. 사람도, 작업도 귀하다.

귀한 건 귀하게 대한다

이 글은 이 귀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귀한 선물을 받고 답례로 쓰는 글이다. 귀한 건 귀하게 대해야 하는 법이니까.

책방을 하고 있어 출판사에서 홍보차 책을 증정 받기도 하고, 관심 없는 분야여도 저자가 직접 책을 들고 찾아오기도 한다. 그런다고 답례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는 일은 드물다. 그야말로 읽을 게 천지인 곳에서 잠시라도 시선을 머물게 하는 힘이란 책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기 때문일 게다.

모임이 열리고 몇 달 동안 나는 그 희정과 이 희정이 같은 인물인지 몰랐다. 주위에 희정이란 이름을 쓰는 이들이 많기도 했고, 흔치 않은 주제를 기록노동이라는 더 흔치 않은 방식으로 써낸 결과물이었지만 기억력이 매우 나쁜 까닭이다.

인터뷰하느라, 녹취 푸느라, 밤새고 쪽잠 자다가 모임에 오지 못하거나 늦던 희정은 그럼에도 호시탐탐 모임에 찾아들었고, 모임을 열어준 책방과 길잡이 샘께 책을 선물해주었다.

함께한 사람들은 사서 보겠다며 다음 시간엔 저자 사인을 해달라 했다. 나도 그 대열에 끼고 싶었지만 저자가 직접 전해주는 책이란 언제나 탐이 나는 법, 애써 사양하지 않았다.

궁금했다. 이번엔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려나. 무슨 이야기로 내 가슴을 또 짓눌러 놓으려나. 희정은 취업 준비-사회 초년기에 맞춰 20, 30대 성소수자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이 겪은 일터의 모습을 8개의 키워드로 묶어냈다. 모욕면접, 꾸밈노동, 블라인드 테스트, 유리천장, 어린 여자, 정규직, 공정, N포 세대.

얼마전 2020트렌드를 예측한 책들을 읽어서인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알 것 같았다. 퀴어도 그닥 낯설지 않았다. 주변에서 이따금씩 나타났다 사라졌고, 무엇보다 타인의 애정사에 일도 관심이 없는 만큼 편견이 스며들 틈도 없었다. 한 장 두 장 세 장 네 장... 그것도 잠시, 책장을 넘기자 익숙치 않은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지정성별 #바이섹슈얼 #퀘스처너리 #논바이너리젠더퀴어 #안드로진 #에이섹슈얼 #팬섹슈얼...

주석이 따라붙지 않았다면 알 길 없는 명명들. 주석을 꼼꼼히 살폈다. 각주에는 책과 논문, 기사는 물론이고 드라마와 영화, 각종 자료집에 노래가사까지 입체적이고도 풍부한 참고자료들이 넘쳐났다. 인용한 이야기의 출처뿐 아니라 핵심 내용을 간추려 연결시켜주는 성실한 주석 덕에 읽고 나면 이어서 읽고 싶은 텍스트와 영상이 쌓였다.
 
"일터 생존법 '쇼잉showing'하고 '적응'하고 '경계'에 선다."
"어떤 말투,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뻔하다. '여자아이는 분홍, 남자아이는 파랑'으로 자라왔다. 남자아이는 탑에서 공주를 구하고 여자아이는 뾰족구두를 신고 왕자랑 춤추는 꿈을 꿔왔다. 그러나 왕자와 공주 문제를 떠나, 그런 꿈을 꿔봤자 무도회 초대장은 오지 않는다. 1대 99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듯, 99는 무도회에 갈 운명이 아니다. 일터로 가야 한다. 분홍 구두와 파란 운동화를 신고 출근해야 한다."

퀴어들의 입을 통해 나온 목소리는 이상하게 그들만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 2020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가 멀티 페르소나였는데, 스스로를 감춰야만 존재할 수 있는 퀴어들은 그 현상을 더 또렷하게 만들어줄 뿐, 때와 장소, 상대에 따라 다른 가면을 써야 하는 모두를 불러냈다. 읽을수록 우울이 몰려왔다.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인식하는 순간, 그들이어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 것일 뿐 불안정한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 모두가 사실은 퀴어임을 알게 된 순간, 결국 또 답답함만 얻게 되는 건가 싶을 무렵, 희정이 말했다.
 
"존재를 지우려는 시도에 대항하는 방법은 존재하는 것이다."

픽션이 논픽션 같고 논픽션은 픽션이었음 싶은 세계에서 내가 서 있는 곳이 드라마 속인지 리얼 세계인지 이따금 헷갈린다. 퀴어도 비퀴어도 "안정적인 고용, 체계적인 업무 분담, 정시 퇴근, 서로를 착취하지 않을 수 있는 조직 문화, 육아휴직 보장…."을 바란다. 이게 왜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걸까.

무거운 짐은 그 무게를 들 수 있는 사람이 든다
 
"그래서 수정에게 하는 질문은 자꾸만 미끄러졌다. 일터에서의 남녀 역할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무거운 것은 남자가 들어야지, 이런 것은 없나요?"라고 물으면 "장애인 활동가들도 있기 때문에, 무거운 짐은 그 무게를 들 수 있는 사람이 드는 걸로"라는 답이 왔다."

이거였다. 건강한 남과 여 사이에 무성으로 존재하던 장애인을 넣자 다른 답이 나왔다. 무거운 짐은 남성이 드는 게 아니라 그 무게를 들 수 있는 사람이 드는 것.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끌어들이면 다른 답을 찾게 되는 게 아닐까.

해결된 건 없지만 명쾌한 느낌이 들었다. 지불능력만이 능력으로 여겨지는 세계지만 존재를 지우려 하거나 숨기려 들지 않는 것만으로도, 뭔가를 바꿀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지는 것이다.
 
"내가 퀴어라는 걸 사람들이 모르잖아요. 그게 바로 차별이죠."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낸 적이 없어서 퀴어로서 차별받은 경험이 없다던 인터뷰이가 자기를 숨겨야 하는 바로 그 상황이 차별임을 자각한다. 나도 따라 자각한다. 이제 차별이 뭔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 당신이 모르는, 그러나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

희정 (지은이), 오월의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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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Table.Book.Store. 세상에서.가장.작은.책방. 경의선숲길 번화한 거리, 새하얀 카페 본주르에 테이블 하나 놓고 덜컥, 책방을 열었다. 책에 과도하게 가치를 부여하는 건 ‘그닥’이어서 무심히, 툭, 던지는 느낌으로 ‘옛따’책방이라 이름 붙였다. 책과 사람, 공간과 사건이 만들어내는 세계를 끼적대며 일상과 이상을 넘나들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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