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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인가, 아이가 아직 기저귀를 차던 시절, 평소와 같이 하원 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다가 선생님의 한마디에 그야말로 동공 지진을 경험했다. "어머님, 민아 '잠지'가 빨갛더라고요. 기저귀 발진인 것 같은데 집에서 한번 살펴봐주세요." 순간 당황한 나는 "네? 아… 네, 알겠습니다." 하고 서둘러 얼버무리고는 아이의 손을 잡고 멍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아니, 그런 단어를 써도 되나?' 나는 여태껏 그런 단어는 당연히 입 밖으로 내면 안 되는 '못된 말'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하는 건가 싶은 생각에, 나와 같이 어린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동생에게 메신저로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동생도 깜짝 놀라며 "진짜? 어린이집 선생님이 '잠지'라는 말을 해? 그런 말을 해도 되나?" 하며 나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저녁에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그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그게 뭐가 이상해? '잠지'를 '잠지'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 그러게, 그럼 뭐라고 하지? 거기? 밑? 엉덩이? 다 정확하지 않아 보였다. 궁금한 마음에 아이들이 잠든 밤에 검색창에 '잠지'를 입력해 보았다.

'잠지- 주로 어린이에 대해, 보지나 자지를 완곡하게 부르는 말이다. 얼핏 듣기엔 비속어 같아도 엄연히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단어이며 순우리말이다. (나무위키)'

'아, 그렇구나. 써도 되는 말이구나.'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면서도, 또 다른 의문에 휩싸여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결혼하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는데도 왜 성(性)과 관련된 이야기는 불편하고 부끄럽게 여기는 걸까?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분명 나한테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볼 텐데, 그땐 어떡하지?'

그날 이후로 아이들의 성교육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시작되었다. 올해 4살, 그리고 5살 된 내 딸들은 목욕을 할 때 가끔 벌거벗은 채로 바닥에 앉아 자신의 잠지를 요리조리 만져보기도 하고, 고개를 숙여 빤히 들여다보기도 한다. 궁금해서 그러겠거니 하고 "그렇게 손으로 자꾸 만지면 나쁜 세균들이 들어가 '아야' 한다!" 하고 태연한 척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걱정과 함께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그러던 중 반가운 책을 만났다.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심에스더, 최은경 지음, 오마이북(2019)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심에스더, 최은경 지음, 오마이북(2019)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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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는 아이들의 성교육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 그리고 그동안 성(性)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어쩐지 불편해서 피해 왔던 어른들에게 딱 필요한 책이다. 표지에 적혀 있는 '납작해진 성을 입체적으로! 어른도 아이도 함께 즐거운 Sex Education(섹스 에듀케이션)'라는 말처럼, 너무나 궁금했지만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알기 쉽고 편하게,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꺼내어 풀어냈다.

성교육 전문가로 활동 중인 심에스더와 '16년 차 오마이뉴스 기자'이자 두 딸의 엄마인 최은경이 함께 쓴 이 책은 '성알못(성을 알지 못하는)'인 최은경 기자가 질문하고, 심에스더가 대답하며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쓰여 있어 어렵지 않고 흥미롭다.

책에 나와 있는 질문들은 나 역시 한번쯤은 속으로 품어 왔던 질문들이고, 대답 또한 딱 필요한 내용들이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위에서 언급했던 '동공 지진'을 일으켰던 날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았다. 성교육은 아이들보다 당장 나에게 더 필요한 것이었다. 
 
아이들의 질문에 답을 할 때는 되도록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아요. 예를 들어 신체 부위를 설명한다면 '그거' '저거' 대신 '고추' '잠지' '음경' '대음순'처럼 일반적으로 쓰는 용어들을 평범한 뉘앙스로 전달하는 거죠. 아이들은 구체적인 내용보다 그때의 뉘앙스로 기억을 하고 영향을 받곤 해요. 우리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뭉뚱그려서 대충 말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들은 부끄럽고 민망한 느낌으로 성을 받아들일 거예요. 내용은 사라지고, 편견이 생기는 거죠. (26쪽)

나는 아이들과 자주 목욕을 같이 하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은 내 몸 이곳저곳을 만져보고, 자신의 몸과 비교해 보기도 하며 나에게 묻는다. "엄마, 엄마는 여기에 왜 털이 났어요?", "엄마, 엄마 찌찌에서는 우유가 나와요?"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이런 질문들을 할 때, 나는 부끄럽고 당황스러웠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이라고는 고작 "너도 크면 엄마처럼 털이 날 거야." 정도였으며, 서둘러 목욕을 끝내고 아이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곤 했다.

저자에 따르면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가장 좋은 때는 4~5세 정도라고 한다. 이 시기가 바로 자신의 신체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때라고. 지금 내 아이들이 딱 4살, 5살이니까 지금이 딱 적당한 때이다. 아이들이 '잠지'나 '찌찌', '음모'에 대해 부모와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슬슬 시작해야 한다. 일단 나부터 신체 곳곳에 붙여진 이름들에 익숙해지도록 많이 연습해 봐야겠다.

그 밖에도 책에는 동성애, 장애인들의 성, 섹스, 그리고 초등학생들과 청소년들의 연애를 바라보는 부모의 올바른 태도 등에 대한 친절한 답변들이 알차게 들어 있다. 고맙게도 책의 말미에는 더 읽어볼 만한 책들에 대한 정보도 들어 있다. 나에게는 이 책이 성(性)에 대한 지식의 마중물 역할을 해주었다. 그동안 봉인되어 있던 질문들이 내 안에서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더 늦기 전에 이 책을 읽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섹스는 몸, 젠더, 인격, 생명과 연결되어 있고 우리의 삶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도 여전히 말하기가 어려워요. 잘못된 정보 때문에 왜곡되거나 편견에 휩싸이기도 쉽죠. 어쩌다 한번 받는 성교육을 통해서는 제대로 된 가치관을 형성하기도 어려워요. 그래서 아이들이 자주 만나고 대화하는 주변 사람들의 역할이 참 중요해요. 개인과 사회가 인격적이고 즐거운 성적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 이유죠. 부끄럽지 않고 담담하게 일상의 언어로 성을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아이들에게, 나아가 서로에게 좋은 성교육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말이에요. (185쪽)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 용감하게 성교육, 완벽하지 않아도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심에스더, 최은경 (지은이), 오마이북(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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