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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양떼목장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양들. ⓒ 경북매일 자료사진
 
하얗게 곱슬거리는 부드러운 털, 어떠한 욕망도 읽히지 않는 맑은 눈망울, 거기에 통통하고 동글동글한 몸피까지. 양을 본 사람들은 남녀와 노소를 불문하고 "착하고 귀엽게 느껴져 쉽게 다가설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가축 가운데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도 양이 아닐까? 그래서다.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칠곡 양떼목장엔 계절을 불문하고 주말이면 '꼬마 관광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찬바람도 즐거운 양들과의 하루

목장에서 '양 먹이 주기 체험'을 진행하는 아주머니는 "처음엔 겁을 먹고 아빠나 엄마 뒤에 숨어있던 아이들도 건초를 날름날름 받아먹는 어린 양들을 가까이서 보면 금방 친해져요"라며 웃었다.

하루에 꼭 한두 명쯤은 "양을 데려가 우리 집에서 키우겠다"며 부모에게 떼를 쓰며 울어대는 애가 있다고 한다. 정겹고 재밌는 풍경일 듯했다.

이 목장에선 면양과 함께 젖을 짜는 양, 타조, 색깔이 고운 여러 마리의 닭도 함께 키운다. 트랙터가 끄는 관람차에 올라 목장을 한 바퀴 도는 체험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최고다. 책과 TV 화면에서나 보던 동물들을 직접 만날 수 있기 때문. 볕 좋은 토요일이면 양젖을 짜는 체험장 역시 아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게 목장 측의 설명이다.

살아있는 동물과의 교감은 아동들에게 풍부한 감성과 생명에 대한 애정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는 이미 오래 전 아동학자들이 검증한 사실.
 
직접 해본 '양 먹이 주기 체험'. ⓒ 홍성식
 
칠곡 양떼목장은 비단 아이들만이 아닌 성인들에게도 흥미로운 공간이다. 나 역시 양에게 먹이를 주며 잠시잠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자신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들에게 무언가를 베푼다는 건 어른들에게도 뿌듯한 감정을 선물하는 법이니까.

이곳을 찾아온 젊은 연인들은 목장에 마련된 조그만 상점에서 구워 먹는 치즈를 구입하기도 한다. 바로 옆 따뜻한 휴게실로 들어가 난로를 앞에 두고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매캐한 연기 가득한 도시의 술집에서 삼겹살과 함께 구워 먹는 치즈와는 분명 다른 맛이리라.

양떼목장 상점에선 직접 만든 치즈와 멸균된 양젖도 맛볼 수 있다. 직접 먹어보니 우유로 만든 치즈보다 담백한 맛이 혀끝을 감돌았다. 양젖 또한 평소엔 마셔보기 어려운 것이라 연거푸 두 병을 들이켰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관광·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한 이 목장은 "동물이 행복한 농장, 동물의 행동이 자유로운 농장, 사람과 동물이 함께 하는 농장"을 지향한다고 한다.

시인의 흔적을 찾아 구상문학관으로
 
시인 구상문학관 전경. ⓒ 경북매일 자료사진
   
신의 품에 기대 자신을 성찰했던 구상 시인. ⓒ 홍성식
  
다수의 문학평론가들은 말한다. "그는 신(神)의 품에 기대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한 점잖은 작가"였다고. 칠곡은 시인 구상(1919~2004)의 본적지다. 지척인 대구에선 그 지방 신문의 편집국장과 주필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니 칠곡군 왜관읍에 '구상길'이 있고, 거기에 구상문학관이 들어선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해 작품 활동을 했고, 서울대와 효성여대 등 여러 곳의 대학에서 제자들을 길러낸 구상 시인은 독재정권의 사상적 탄압에 의연히 맞선 지사(志士)이자, 넉넉한 품과 혜안을 지닌 교육자였다. 칠곡군이 내세워 자랑해도 좋을 문인이다.

구상문학관은 작지만 알차게 꾸며졌다. 시인이 생전에 사용하던 필기구와 안경, 모자가 단정하게 놓였고, 친필 원고와 함께 구상 시인을 추모하는 후배 작가들의 작품도 여럿 전시돼 있다.

문학관의 동선은 시인의 탄생에서부터 소멸까지를 연대순으로 돌아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한 시절 단아한 선비로 살아온 예술가의 85년 세월이 자연스레 느껴진다. 구상 시인이 기증한 3만 권에 가까운 책은 2층에 보관됐다.

문학관 입구엔 <그리스도 폴의 강>을 새긴 시비(詩碑)가 방문자들을 기다리고, 지척엔 화가 이중섭이 자주 드나들었다는 시인의 집필실 관수재(觀水齋)가 복원돼 있다.
 
관호산성 둘레길의 갈대밭. ⓒ 홍성식
  
관호산성 둘레길에서 겨울 산책을

누구도 세월의 흐름을 이길 수 없다. 해질 무렵 불어오는 찬바람이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음을 느끼게 한다. 이런 시기엔 평소 하던 운동도 이유를 만들어 피하고 싶어지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춥다고 매일 방에만 틀어박힐 수는 없는 노릇.

'걷기'는 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운동 중 하나다. 방한 점퍼와 머플러가 준비된 사람이라면 칠곡 '관호산성 둘레길'을 걸어보라고 권한다. 이곳에서의 산책은 건강이란 선물과 함께 초겨울 낭만까지 맛보게 해준다.

낙동강을 따라 이어진 둘레길은 서로의 몸을 맞대고 서걱이는 마른 갈대의 노래들로 가득하다.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중 '겨울' 도입부가 절로 떠오른다.

칠곡군 역시 이 길을 "최고의 도보여행 코스"라고 말한다. 호국의 다리를 지나 칠곡보까지는 25분, 칠곡보 입구에서 관호산성과 무림배수장으로 가는 구간은 1시간 남짓이 소요된다. 건강과 낭만을 얻기 위해 그 정도 시간쯤 할애 못할 이유가 없다.
 
칠곡 호국평화기념관 전경. ⓒ 경북매일 자료사진
   
철모로 형상화된 전쟁의 비극. ⓒ 경북매일 자료사진
 
칠곡 여행의 마지막은 호국평화기념관으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인간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 또한 1950년부터 3년간 같은 민족끼리 서로의 가슴에 총을 겨눈 비극의 역사를 경험했다. 많은 청년이 전장에서 죽었고, 남과 북의 죄 없는 양민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칠곡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침입을 막던 '최후의 저지선' 역할을 수행했다. 50일 넘게 이어지던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선 헤아리기 힘든 많은 수의 군인들이 포탄 아래 쓰러졌다.

칠곡군 석적읍에 세워진 호국평화기념관은 70여 년 전 어머니와 형제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었던 영혼들을 위로하고자 만들어졌다. 이와 더불어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될 전쟁의 처참함과 비극성까지를 후세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기념관 내부에 마련된 '호국전시관'에선 한국전쟁의 시작에서부터 낙동강 전투, 인천상륙작전, 정전 협정까지의 과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 초반 풍경을 실감나게 재현한 세트장도 눈길을 끈다.

호국평화기념관 뒤편엔 55m 높이에서 대형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그 아래 서면 한국전쟁 때 희생된 젊은 군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가 두려움을 떨치고 죽음 앞으로 뛰어든 이유가 궁금하다고? 전쟁이 사라진 평화의 시대를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태그:#칠곡, #양떼목장, #시인 구상, #관호산성 둘레길, #호국평화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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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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