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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생활했던 서울을 떠나 경상북도로 삶의 근거지를 옮긴 지 4년. 하지만, 이곳의 내밀한 풍경을 접할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올 하반기 6개월간 이어진 19번의 취재 여행을 통해 경북의 숨겨진 관광 명소와 특별한 삶을 이어온 사람들,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 등을 만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자 즐거움이었다. 그 기억을 2회 걸쳐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안동 농암종택 긍구당.
 안동 농암종택 긍구당.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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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과 종가의 도시 안동

안동은 지향해야 할 한국의 전통과 옛것의 아름다움을 지켜온 도시다. 고풍스런 안동엔 날아갈듯 한 기와가 멋스러운 오래된 전통가옥과 수백 년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특유의 가풍을 간직하고 있는 종가(宗家)가 여럿이다.

학봉종택과 농암종택에서의 숙박체험은 오래 간직할 귀한 추억이 됐다.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의 생가인 임청각과 내앞마을 의성 김씨 종택에서 떠올린 가슴 찡한 감흥도 오래 갈 것이 분명하다. 병산서원 만대루에서 내려다본 저물 무렵의 낙동강 풍경은 흡사 잘 그린 동양화를 방불했다.

안동 여행에서 도산서원과 하회마을을 빼놓으면 분명 섭섭할 터. 그곳을 찾게 될 미래의 방문자들은 두 곳 모두 꼭 가보시길. 안동에선 한지 만들기, 전통 탈 만들기, 국궁 쏘기, 목판 찍기 등의 다양한 체험도 가능하다.
 
경주 삼릉 인근 소나무 숲.
 경주 삼릉 인근 소나무 숲.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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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수록 깊게 정드는 경주

한국의 대표적 역사 유적이라 할 불국사와 첨성대, 대릉원과 동궁·월지, 여기에 젊은이들의 감각을 매혹시킨 '황리단길'까지. 경주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행복한 화음을 선보이는 여행지다.

어디를 걷건 심심할 틈이 없는 경주는 말 그대로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독특한 공간. 정겨움 가득한 낡은 간판을 단 문방구와 30~40년 전 고전적인 분위기까지 맛볼 수 있는 황리단길은 청년들만의 길이 아닌 '우리 모두의 길'로 자리매김했다.

2010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양동마을과 경주 최 부자 가문이 지향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정신을 오늘에 전하는 교촌마을은 '뚜벅이 관광객들'에게 최고의 인기다. 거리를 걸을수록 깊어지는 정을 느낄 수 있는 경주는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도시다.
 
봉화 백두대간수목원의 호랑이.
 봉화 백두대간수목원의 호랑이.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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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와 만나는 청정한 산골 봉화

바람에서 달콤한 향기를 맡고 싶은 사람이라면 봉화로의 여행을 추천한다. 경북 내륙 깊숙이 자리한 청정지역 봉화군은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이벤트 열차가 있고, 백두산 호랑이를 만날 수 있는 곳. 항일 독립운동의 흔적 또한 각처에 남아있어 오늘을 사는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분천역과 태백 철암역 사이를 오가는 '백두대간 협곡열차'는 아이와 부모 모두 웃음 짓게 만드는 매력적인 관광자원이다. 나 역시 시원스레 달리는 열차에 올라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오래지 않은 옛날엔 사방 1천 리를 장쾌하던 호령하던 신령스런 동물 백두산호랑이 2마리도 봉화의 자랑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을 찾는다면 호랑이의 위엄 어린 얼굴을 직접 보길 권한다. '천 년을 간다'는 소나무계의 명품 춘양목(春陽木)도 봉화가 자랑하는 특산물이다.
 
의성 금성산 고분군.
 의성 금성산 고분군.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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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왕국을 떠올리게 하는 의성

역사서 <삼국사기>와 <고려사> 등에 흔적을 남긴 고대 왕국 조문국(召文國). 의성군 일대에선 삼한시대 초기 강력한 제국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조문국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유적지에선 신라의 금관과는 구별되는 색다른 미적 감각의 금동관이 여러 점 나왔다.

조문국박물관을 찾는다면 출토된 각종 유물을 볼 수 있고, 낯설었던 역사의 실체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다. 인근에 자리한 금성산 고분군도 빼놓을 수 없는 의성의 관광 명소.

조용하고 호젓한 곳에서 내년 여름휴가를 보내고 싶은 독자라면 의성 빙계계곡을 추천한다. 날씨가 추워지면 뜨거운 바람이 나온다는 빙혈(氷穴)과 풍혈(風穴)도 있으니 겨울 여행지로도 좋다. 유·불·선 모두에 능통한 최치원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고운사도 매력적인 사찰이다.
 
문경의 도예가 김선식 씨.
 문경의 도예가 김선식 씨.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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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 장인이 안내한 문경

문경은 '도자기의 고장'이다. 조선시대 초부터 품질 좋은 백자와 분청사기가 만들어지는 곳으로 이름이 높았다. 거기서 만난 무형문화재 김선식 도예가는 겸양과 자존을 더불어 지닌 예술가였다. 1년 내내 관음요(觀音窯)에서 도자기 제작에 땀 흘리는 김선식은 자신의 돈을 털어 '한국 다완 박물관'을 세우기도 했다. 박물관에선 작품급 도자기 수백 점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독립운동가 박열의 고향인 문경엔 그의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의 묘지도 있다.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인간과 조국을 누구보다 사랑한 둘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 '박열 의사 기념관'이다.

옛날엔 입신양명의 꿈을 안고 과거를 보기 위해 선비들이 넘었다던 문경새재. 이제는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등이 생겨 많은 TV 드라마와 영화가 촬영되는 지역 최고의 관광자원이 됐다.
 
영천 한의마을 입구.
 영천 한의마을 입구.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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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 내음에 건강까지 좋아질 것 같은 영천

영천은 60여 년 전부터 한약 재료가 모이는 지역이자, 한약 유통의 중심지로 알려졌다. 거래되는 약재만도 500종이 넘는다. 이런 사실을 여행자들에게 어필하고자 조성한 '동의참누리원 영천한의마을'은 그윽한 한약 향기로 가득하다. 들어서는 순간 건강이 좋아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약재로 만든 음식이 준비된 약선음식관, 한방차를 마련한 찻집, 한옥체험관, 전문의가 운영하는 한의원도 내부에 있으니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좋아할만한 모든 것을 갖춘 셈이다.

'영천전투 메모리얼파크'에선 6·25전쟁 당시 쓰러져 간 젊은 호국영령들을 추모할 수 있다. 영천전투는 한국전쟁의 전세를 극적으로 뒤집은 전투로 기록돼 있다. 별빛 가득한 하늘이 그리웠다면 보현산천문대에서 그 그리움을 해소해보면 어떨까?
 
예천 진호국제양궁장을 찾은 사람들.
 예천 진호국제양궁장을 찾은 사람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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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궁과 곤충을 키워드로 본 예천

1979년 예천여고 2학년생 김진호는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5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많은 국민들이 어린 소녀의 선전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고, 함께 기뻐했다. 예천은 김진호의 고향이다. 그녀의 이름을 앞세운 '진호국제양궁장'이 예천에 들어선 건 당연한 수순.

지금도 각종 양궁대회가 열리고 훈련장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곳은 해마다 1만여 명의 양궁선수와 선수 가족들이 찾는 한국 양궁의 성지다. 방문하게 된다면 국가대표급 코치의 지도 아래 활쏘기 체험을 해보시길.

양궁과 함께 예천을 대표하는 또 다른 하나의 키워드는 곤충이다. 탁 트인 넓은 공간에 효율을 높여 설계된 '곤충생태원'은 살아있는 곤충을 직접 만나고, 곤충을 이용한 산업적 가능성까지 전망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
 
경산 반곡지.
 경산 반곡지.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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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돌아보는 사색의 시간 선물한 경산

해골에 담긴 썩은 물을 마시고 세상사 이치를 단숨에 깨달은 원효, 신라를 대표하는 문장가 중 한 명인 설총, 비밀스런 고대의 역사를 흥미롭게 써내려간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 경산 '삼성현 역사문화공원'에선 이 세 선현의 행적과 사상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이 캄캄한 동굴 속에서 헤매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두워진 사람이라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을 여기서 가지면 좋지 않을까. 원효의 가르침처럼 "세상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니.

유년시절 읽었던 동화의 배경처럼 아름다운 반곡지도 꼭 들러 봐야 할 경산의 명소다. 투명하게 자신을 비추는 거울 같은 수면을 보며 잊고 살았던 '나라는 존재'를 확인해보시길. 고요하고 평화로운 사찰을 찾는 여행자라면 환성사와 선본사를 권해주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태그:#학봉종택, #황리단길, #봉화 백두산호랑이, #경북의 명소, #경북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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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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