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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할 적폐가 있지만 국민의 약 70%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적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험해보니 국가 적폐보다 마을(아파트) 적폐의 청산이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4년간 아파트 회장을 하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경험과 성취한 작은 성공의 이야기들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편집자말]
첫 번째 회장 임기 2년 동안(2015.10~2017.9)이 고통과 저항의 시간이었다면, 두 번째 회장 임기 동안(2017.10~2019.9)은 개혁과 형성의 기간이었다. 내가 섭외하고 추천한 사람들 위주로 입주자대표회의와 임원진이 꾸려진 후 처음으로 한 일은 임원 5명과 우리 아파트의 현황을 파악하고 2년 동안의 개혁과제가 무엇인지 토론하고 공유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두 번째 회장 임기 2년 동안의 성패를 가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회장이 아무리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더라도 회장 혼자서 모든 걸 다 할 수도 없거니와 그렇게 하는 건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동대표들의 자발적 동의와 참여를 통해서 새로운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 각자가 동대표에 출마하면서 하고 싶었던 일들이 무엇인지 듣고 개혁과제에 녹여 내는 작업도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아파트 19기 입주자대표회의 개혁과제>라는 제목의 7장짜리 자료를 심혈을 기울여 작성했다.
 <○○아파트 19기 입주자대표회의 개혁과제>라는 제목의 7장짜리 자료를 심혈을 기울여 작성했다.
ⓒ 남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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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회의 통해 개혁 과제를 확정 짓다

이런 생각으로 2017년 11월 3일(금) 임원 회의를 개최했다. 그 회의에서 나눌 내용을 담은 <○○아파트 19기 입주자대표회의 개혁과제>라는 제목의 7장짜리 자료를 심혈을 기울여 작성했다. 마치 세미나에서 발표자료를 만드는 것처럼. 임원 회의에서 발제한 자료의 소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 아파트에 대한 총론적 이해", "19기 입주자대표회의의 방향과 운영 방안",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문제점", "용역업체들의 서비스 현황 및 점검", "앞으로 2년 동안의 개혁과제" 등등. 이런 내용으로 내가 발제하고 하나하나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약 3시간 동안의 발제와 토론을 통해서 우리는 현황을 공유하고 각자가 2년 동안 아파트에서 하고 싶은 과제들을 나누면서 개혁과제들의 순서들을 정했다.

제일 처음 추진한 일은 경비회사와 위탁관리회사 교체였다. 두 회사는 모두 적폐의 몸통이 데리고 온 회사였다. 입찰이라는 과정을 거쳤지만 동대표들이 주관적 점수를 부여해서 업체 선정을 하는 적격심사방식을 고집했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업체가 선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렇게 선정된 업체라도 입주민들에게 관리와 경비 서비스를 잘했다면 교체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당한 요청을 무시하는 경비업체

당시 우리 아파트의 경비 서비스 문제는 심각했다. 2017년 9월에 치러진 동대표 선거에서 관리소장이 선거를 방해할 목적으로 만든 허위 내용의 공고문을 게시하지 말라고 적폐세력의 심복처럼 일하는 경비반장에게 지시했는데도 공고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관리소장은 그 경비반장에 대한 징계 및 교체를 정식으로 경비업체에 요청했지만 경비업체는 어떤 답변도 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었다. 경비 서비스의 질이 매우 안 좋기로도 소문나 있었고 입주민들과 말다툼하기 일쑤였던 경비원, 2015년 연말 몸통의 지시를 받고 남기업 회장 해임 동의서를 받으러 다니던 그 경비원 문제도 경비회사는 처리하지 않았다. 저들의 힘이 다 빠졌을 2017년 8월 말에 공문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교체요청을 했는데도 말이다.

당시까지 우리 아파트의 유급직원들은 특정인에게만 잘 보이면 계속 근무할 수 있는 구조였다.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일관된 특징은 '몸통'과 가까울수록 관리·경비·청소 서비스의 질이 나쁘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적폐세력과 몸통이 저지른 관리 시스템 사유화의 결과였다.

'몸통'과 가까운 경비원의 횡포

그러던 어느 날 2017년 12월 초 우리 아파트 경비원이 자살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억울하다고 유서까지 쓰고 자살한 경비원의 자살 이유는 몸통과 가까운 문제 많은 경비원과의 갈등이었다. 이 일로 아파트는 충격에 휩싸였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일어나기 여러 달 전에 우리 아파트의 요청대로 경비회사가 처리했으면 발생하지 않을 일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접한 동대표들은 경비업체와의 계약 해지를 의결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해당 경비업체가 부당하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게 아닌가. 소송은 당연히 기각되었다. 계약해지 사유가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업체를 선정하고 경비 서비스 질이 좋지 않은, 그러면서도 특정인에게만 충성하는 경비원들을 자연스럽게 교체했다. 신기하게도 기존에 근무했던 경비원들을 모두 면접한 새로운 경비업체가 문제 있다고 판단한 경비원과 우리가 문제 있다고 판단한 경비원이 일치했다. 그중에는 몸통의 매형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 아파트의 경비원(기사 내용과는 무관한 자료사진입니다)
 한 아파트의 경비원(기사 내용과는 무관한 자료사진입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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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문제에 빠지다

그런 와중에 골치 아픈 문제 하나가 터져버렸다. 계약이 해지된 경비업체의 계약 기간이 1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1년에서 4일 모자란 361일이었기 때문에 경비원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성실하게 근무하던 경비원들은 새로 선정된 경비업체에 소속되어 계속 근무하게 되지만, 형식상 '퇴사 후 입사'였고 1년을 근무하지 않았기 때문에 퇴직금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들은 퇴직금을 지급해달라고 나에게 호소했다. 심지어 퇴직금 떼어먹으려고 1년이 안 된 경비원을 자르는 나쁜 아파트와 '남기업의 개혁'이 뭐가 다르냐고 항의하는 경비원도 있었다. 퇴직금은 경비회사가 아니라 아파트가 관리하고 있었고, 퇴직금 지급 사유가 발생하고 지급 요건이 충족되면 아파트가 지급하는 구조였다. 그러니 지급하지 않으면 그만큼 아파트의 수입이 늘어난다. 참으로 황당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해법을 찾다

나를 비롯한 동대표들은 퇴직금을 어떻게든 지급하고 싶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수원시에 질의했다. 수원시는 사정은 딱하지만 현행법상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만약 입주자대표회의가 선의로 퇴직금을 지급했는데, 입주민이 수원시에 민원을 넣으면 불법이라고 답변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업무상 배임 혐의로 형사 고소하면 기소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아, 왜 날짜를 확인하지 못했을까, 후회막급이었다. 혹시나 해서 상급 기관인 고용노동부에 질의 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의 답변은 수원시와 달랐다. 경비원의 근무기간이 1년이 안 되면 아파트가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는 없지만, 사회적 배려차원에서 입주자대표회의가 의결 후 지급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경비원들에게 알렸더니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미안해했다. 나는 관리소장에게 문서로 고용노동부에 질의하고 문서로 답변을 받도록 했고, 긴급 임시회의를 열어서 고용노동부 답변을 근거로 퇴직금 지급을 의결했다. 사망한 경비원을 포함해서.

물론 아파트에 큰 물의를 일으킨 직원은 지급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이런 일 자체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중에 왜 자신에겐 퇴직금을 주지 않느냐고 따졌다. 사람이 저렇게 뻔뻔할 수 있다니, 나는 하도 기가 막혀서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새로운 경비업체가 선정되면서 경비 서비스의 질은 개선되고 경비원들은 자기 업무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태그:#입주자대표회의, #동대표, #아파트 비리, #아파트 민주주의, #마을적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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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전 국민 주거권과 토지공개념 실현, 토지보유세를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인 토지배당제를 위한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땅에서 온 기본소득, 토지배당》(2023, 공저), 《아파트 민주주의》(2020),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2018, 공저)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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