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9년 2월,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대학가에 새학기를 앞두고 월세방 세입자를 구하는 광고물이 즐비하다.
 2019년 2월,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대학가에 새학기를 앞두고 월세방 세입자를 구하는 광고물이 즐비하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선배. 자취방 구하는 것 도와주실 수 있어요?"

대학 동아리를 함께 하던 후배가 물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통학하던 후배였다. 통학을 시작한 지 몇 개월 만에 그는 2시간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함께 자취방을 구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아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는 바로 뜻밖의 말을 덧붙였다.

"저... 근데, 보증금을 100만 원밖에 낼 수 없어요. 월세도 25만 원까지만 낼 수 있고요."

땅값이 높은 대학가에서 보증금 100만 원, 월세 25만 원짜리 방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주 형편없는 자취방에서 지내더라도 적어도 40만 원 월세를 부담할 수 있어야 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런 방을 구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선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는 헤실헤실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꼭 부탁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웃음에 두 손 두 발을 들었고, 그날부터 우리는 자취방 찾기 대장정을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무사히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 18만 원짜리 자취방에 들어갔다. 심지어 부동산을 통해 방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개수수료도 없었다. 길을 가다가 대충 휘갈겨 쓴 "보증금 50, 월세 18 방 있습니다"라는 전단을 우연히 발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와 그는 이 특별한 행운에 몹시 기뻐했다. 높은 언덕 꼭대기에 자리한 모기 많고, 화장실과 방 크기 차이가 거의 없는 집이었지만, 그 가격에 자취방을 구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었으니까.

청년주택 당첨이 '특별한 행운'이 되는 현실
 
2019년 1차 역세권 청년주택 입주자모집 최종 청약경쟁률
 2019년 1차 역세권 청년주택 입주자모집 최종 청약경쟁률
ⓒ SH서울주택도시공사

관련사진보기

 
얼마 전 청년주택이 논란이 되었다. 역세권 청년주택의 입주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뜬 것이 시작이었다. 곧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한 최소한의 방 평수에 대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5평 남짓의 청년주택에서는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는 쪽과 그마저도 없는 상황에서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엇갈렸다. 그 사이 역세권 청년주택 입주자모집 경쟁률은 344.8:1로 마감되었다.

345명 중에 선택된 그 한 사람은 나와 나의 후배가 그랬던 것처럼 청년주택 당첨을 '특별한 행운'이라고 기뻐했을까. 344.8:1이라는 경쟁률과 5평의 청년주택이 특별한 행운의 증표가 된 사회 속에서 행운이라는 말과 불행이라는 말의 간격은 어느 정도일까

5평 방 한 칸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에 쉽게 고개를 저으며 "5평짜리 집에 사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말은 5평짜리 방 한 칸 얻는 것조차 불가능한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5평의 방 한 칸에서 사는 것이 특별한 행운이라고 말하기엔 석연찮다. 인간은 자신이 사는 공간을 가꾸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집에서 살 권리가 있어야 한다.

5평이라는 공간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넓은 평수라 말할 수 있지만, 절대적으로는 좁은 공간이다. 특별한 행운은 이제 특별한 불행이라는 말로 바뀌어 고개를 든다. "5평이라도 있는 게 어디야"라는 말은 "5평이라는 공간은 너무 좁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동전의 양면처럼 두 가지의 상반된 주장은 같은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통계적으로는 1인당 1.5채의 집을 가지고 있다는데 정작 현실은 내 몸 누일 작은 방 하나 갖지 못한다는 사실. 상위 1%가 7채의 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최소한의 것들 중 조금 더 나은 것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배부른 소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

근본적인 대책은 어디 있을까
 
2020 문재인 대통령 신년사
 2020 문재인 대통령 신년사
ⓒ 청와대

관련사진보기

 
1월 7일,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부동산 문제를 다시 언급했다.

"부동산 시장의 안정, 실수요자 보호, 투기 억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합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입니다. 주택 공급의 확대도 차질 없이 병행하여 신혼 부부와 1인 가구 등 서민 주거의 보호에도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매번 언급되는 부동산 문제의 해법은 무엇일까. 이러한 신년사에 대해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서울 집값은 재건축·재개발을 꽉 막아놓고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지 못하게 하니 저절로 오를 수밖에 없다"며 "정부와 서울시의 정책 기조가 바뀌어야 재건축 등 공급이 확대돼서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신년사도, 황교안 대표의 주장도 크게 신통방통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 주택 공급량이 적어서 내 집이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집은 어느 순간 생활을 위해 필요한 곳이 아니라 사서 되팔아 차익을 남기는 수단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투기를 막고 주택 공급이 늘어나 5평짜리 청년주택이 늘어난다면 분명 당첨의 행운을 누리는 사람들은 많아질 것이다. 무시무시한 344.8:1이라는 경쟁률도 비교적 낮아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한 행운을 만들 수는 있어도 탄탄하고 흔들리지 않는 평범한 행복은 만들 수 없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권리'
 
경기 기본소득당 창당대회에서 참가자들에게 받은 문구들
 경기 기본소득당 창당대회에서 참가자들에게 받은 문구들
ⓒ 경기 기본소득당

관련사진보기

 
불행을 경쟁하는 사회에서 우리의 권리는 어디까지 용인될까.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불행한 것과 덜 불행한 것인 세상에서 선택지 바깥에 있는 행복을 요구하는 이들은 '세상 물정 모른다'라는 대답에 직면한다. 그렇지만 나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항변을 하고 싶다. 분명 인간은 더 나은 삶에 대해 끊임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이들이 주목하는 진실이 있다. 이미 주택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내는 세금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입을 얻지만, 보유세 실효세율(각종 공제를 제외한 실제 납부 세율)은 2015년 기준 0.16%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주택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면세구간과 특혜를 주는 관행을 시정해야 한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사회에 내야 하고, 이는 선행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되어야 한다. 차라리 용도 구분 없이 모든 토지 소유를 대상으로 면세 없이 과세하는 것은 어떨까.

OECD 국가 평균보다 낮은 수치의 토지보유세를 매기는 미국에서도 평균 실효세율이 1~4%에 달한다. 실효세율이 상승하면서 생긴 재원을 모두에게 기본소득으로 나눠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부동산 투기를 막는 것과 함께 너무 높은 월세를 낮출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도 함께 필요하다. 

불행한 것과 덜 불행한 것의 선택 대신 우리가 가져야 하는 권리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하자. 우리는 5평 이상의 집에서 살 권리가 있다. 특별한 행운 대신 평범한 행복을 누리고, 재산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기여하는 사회를 그릴 권리가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신민주씨는 기본소득당 서울시당 상임위원장입니다. 기본소득당은 평균나이 27세의 당원들이 만든 정당입니다.


태그:#청년주택, #기본소득, #문재인, #부동산, #주택정책
댓글1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대 여성 정치에 관한 책 <판을 까는 여자들>과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를 썼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