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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준법감시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이 9일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0.1.9
 삼성그룹준법감시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이 9일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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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위원장 제안을 받고 완곡하게 거절했다. 첫 번째 이유는, 진정한 의지에 대한 의심이었다. 총수 형사재판에서 유리한 양형사유로 삼기 위한 면피용으로 삼지 않을까."

9일 오전 서울시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 마이크를 잡은 김지형 대표 변호사가 말했다.

이날 그는 삼성이 새로 출범할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된 경위와 앞으로 계획 등을 밝히겠다며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11층 회의실은 수십명의 취재진으로 채워져 발디딜 틈이 없었다. 이들의 관심사는 준법감시위 출범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뇌물사건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에 모여 있었다. 김 변호사도 그 부분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털어놨다.

김지형도 의심한 이재용의 진정성

지난해 12월 6일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3차 공판에서 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서울고등법원 형사1부)는 변호인단에 숙제를 하나 냈다. 삼성의 '비선실세'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 승마훈련 지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다면, 앞으로 정치권력자로부터 같은 요구를 받더라도 기업이 응하지 않으려면 삼성그룹 차원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해 달라는 얘기였다.

약 한 달 뒤,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고 김지형 변호사를 위원장으로 내정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김 변호사는 대법관 시절 진보성향 판결로 유명했고, 특히 노동 분야에 전문성이 깊은 법조인이다. 또 삼성전자 직업병 해결을 위해 피해자와 회사가 참여한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졌다. 김 변호사가 말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도 거듭 '최고경영진' 문제를 꺼냈다.
 
삼성그룹준법감시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이 9일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0.1.9
 삼성그룹준법감시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이 9일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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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최고경영진에게 진정한 의지가 있는지 많은 의심이 있다. 삼성은 여러 경로로 경영진의 진의를 표명했다. 저는 믿고 싶지만, 완전한 확증을 갖고 있지 않다."
"제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저만의 우려는 아닐 것 같다."


김 변호사는 '삼성의 진정한 의지'를 보여주는 방안으로 "완전한 자율성과 독립성을 가진 위원회 운영을 정말 확실하게 보장해줄 수 있는지, 그룹 총수의 확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이 부회장을 직접 만나 "약속과 다짐"을 받은 다음 위원장직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위원은 모두 7명이다. 법조계에서는 김 변호사와 함께 기업수사 경험이 풍부한 봉욱 변호사, 기업지배구조·공정거래 전문가인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교 교수와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민사회몫으로 한겨레 출신 권태선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대표와 경실련 사무총장이었던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이 참여한다. 삼성그룹에서는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이었던 이인용 삼성전자 고문이 들어갔다.

준법감시위는 설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물산, 삼성SDI, 삼성SDS, 삼성화재와 협약을 체결, 이사회 결의를 거친 뒤 2월 초쯤 정식 출범할 예정이다. 이날 삼성전자는 "준법감시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존중해 글로벌 수준의 준법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도록 이사회 의결 등 필요한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겠다"고 알렸다.

박용진·참여연대 "집행유예 위한 병풍 아닌가"
 
사진 왼쪽부터 준법감시위 외부 위원인 김지형 전 대법관,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 권태선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대표,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 봉욱 변호사,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1.9 [연합뉴스 자료사진]
 사진 왼쪽부터 준법감시위 외부 위원인 김지형 전 대법관,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 권태선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대표,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 봉욱 변호사,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1.9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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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 변호사 스스로 말했듯, 아직까지는 준법감시위가 '이재용의 방패막'에 그치지 않겠냐는 우려가 크다.

같은 날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 "법적 기구가 아니고 권한과 책임조차 명확하지 않은 준법감시위가 남몰래 행해지는 탈법과 불법을 무슨 근거로 막을 수 있겠냐"며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를 위한 병풍이나 장식품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또 대법관 시절 이건희 회장의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사건 주심으로 무죄를 선고했던 김지형 변호사가 준법감시위 수장을 맡는 것 역시 논리적, 정서적, 법리적, 정치적으로 무척 부적절하다고 했다.

그는 또 "재판부가 준법감시위를 핑계로 이재용 부회장을 감형해주거나 집행유예를 선고해선 결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대법원은 이 부회장이 약 87억 원의 뇌물을 (박근혜) 대통령 요구에 편승해 적극 건넸다고 봤고, 특검은 양형 기준에 따라 최소 10년 8개월이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감시기관을 만들어 범죄의 재발을 막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에 저질렀던 범죄가 용서되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역시 논평에서 "삼성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동안의 범죄 행각을 인정하고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라며 "이 부회장은 합당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했다. 또 "삼성은 불법행위가 문제될 때마다 쇄신안을 거듭 발표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며 "준법감시위를 설치한다면 실효성 있는 운영 및 조직의 윤리적 재탄생을 위해 전력투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금까지 삼성 내부에 준법감시시스템이 부재해 국정농단이 초래되지 않았다"며 "삼성이 진정 환골탈태할 생각이 있다면 기업지배구조 개혁에 집중해 이사회 쇄신에 전력을 다하기 바란다"고도 했다. 참여연대는 "치러야 할 과거의 죗값은 받고, 꼼수가 아닌 글로벌 기업문화에 맞는 정도경영을 할 때 비로소 삼성은 양지로 나와 정정당당한 길을 걸을 수 있다"며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엄정한 판결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0월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파기횐송심 첫 공판을 마치고 돌아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0월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파기횐송심 첫 공판을 마치고 돌아가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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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재용, #김지형,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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