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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앞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김흥태씨 가족들
 법정 앞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김흥태씨 가족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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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사촌 김남수 집에 다녀오더니 웬 낯선 사람과 함께 오는 겁니다.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말을 안 해요. 그냥 밥이나 차려오라는 말밖에 없었어요. 느낌은 안 좋았는데 뭐라고 더 물어보지도 못했지요. 옛날에는 남편 말에 꼼짝 못 하던 때니까."

1969년 10월 어느 날, 남편 김흥태가 김흥로라는 사람과 같이 왔다. 남편과 사촌 사이인 그는 한국전쟁 당시 행방불명되었다. 그저 죽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김흥로가 나타난 것이다. 김흥태의 아내 김정자는 불안하기만 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전쟁 때 사라진 사람이 갑자기, 그것도 한밤중에 남편과 같이 나타나니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저는 남편이 밥을 해주라고 해서 끼니때마다 밥을 해준 게 전부에요. 특별히 대화를 나눈 것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었어요. 얼굴 마주치면 눈인사나 했지요. 제발 빨리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뿐이었어요."  
     
1년 전인 1968년 11월, 삼척과 울진 일대 동해안이 발칵 뒤집혔다. 울진·삼척지구에 무장공비 120여 명이 북한에서 남파되어 그해 12월까지 동해안 지역은 전쟁지역을 방불케 했다. 남파되었던 무장공작원들 대부분 사살되거나 생포되었지만 마지막까지 잡히지 않은 공작원들이 남아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김흥로였다.  

"딱 3일 있다가 갔어요. 그냥 숨어 있었던 거죠. 3일 있는 동안 판결문에 적힌 것처럼 무슨 지령을 받거나 교육을 하거나 할 일도 없었어요. 잡히면 죽는 판에 무슨 그런 짓을 하겠어요. 3일 조용히 있다가 나갔으니 아마도 북한으로 탈출하려고 나간 모양이다 생각했죠. 그래서 우리 식구들은 다시는 안 오는 줄 알고 있었죠. 사실 좀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시 오겠나 싶었던 거죠."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날로 나간 김흥로를 잊고 살 즈음 그가 다시 나타났다. 1970년 4월 17일, 북으로 갔을 거라고 생각했던 김흥로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가족 모두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김흥로가 오고 나서 하루인가 이틀인가 뒤에 시어머니 생신날이었어요. 그래서 시댁 식구들이 다 우리 집으로 모였지요. 생일상이 차려지고 사람들이 저녁밥을 막 먹으려는 그때 윗방 문이 열리고 김흥로가 나타난 겁니다. 시댁 식구들이 얼마나 놀랐겠어요. 죽은 줄 알았던 김흥로가 나타나니 놀랐지요. 그날 이후로 시댁 식구들이 모두 김흥로가 우리 집에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김흥로가 다시 나타난 지 6일째 되던 새벽, 군인과 경찰이 김흥로가 은신하고 있던 김흥태의 집을 완전히 포위했다. 김흥로의 둘째 누나 아들인 이○○이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4월 3일 새벽이었어요. 밖이 소란스럽고 불도 환하게 밝혀졌더라고요. 김흥로 둘째 누님 아들인 이○○이 우리 집으로 들어와 가지고는 자수하라고 막 그러는 거예요. 이미 다 들통났다, 군인들이 쫙 깔렸다, 저항해봐야 다 죽는다, 이런 말을 하면서 자수하라는 말을 한 거죠. 이러다 다 죽는거 아닌가 싶어서 자수시키자고 남편 김흥태에게 이야기했더니 윗방으로 올라가더라고요. 나도 따라 들어가서 남편하고 같이 김흥로에게 자수를 권유했어요."

한참 동안 자수를 권유했다. 김흥로는 여러 가지로 괴로워했다. 자수한들 무사할까 하는 의심도 했다. 자수하는 길이 모두가 살길이라며 김흥태는 집요하게 설득했다. 그러다 밖의 사정이 어떠한가 상황을 살피기 위해 윗방에서 내려왔다. 문 밖으로 상황을 살피던 중 윗방에서 총성이 한발 울렸다. 김흥로가 소지하고 있던 권총으로 자살해버린 것이다. 총소리가 나자 곧바로 군인들과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김흥로는 사망했고 그곳에 있던 가족들은 모두 삼척경찰서로 연행되었다.  

"뭐라 할 게 있어요? 그때부터 다 죽은 목숨이지. 나는 김흥로가 죽자마자 김흥로가 가지고 있던 소지품을 우리 집 아궁이에다가 소각하려고 전부 밀어 넣어 버렸어요. 김흥로가 가지고 있던 짐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하면 괜히 죄가 더 커질 것 같아 뭔지도 모르고 김흥로 물건은 전부 소각해 버리려 한 거죠. 그런데 나중에 소각하려 했다는 것이 알려지고 나서 경찰 조사받을 때 무지하게 맞았지요."

경찰서에는 딸 2명과 같이 유치장에 감금되었다. 그곳에는 김흥진, 김남수, 남편, 시동생 등이 함께 잡혀 있었다.  

"이 억울함을 어디 가서 풀겠어요"
 
김흥태씨 가족은 재심 재판을 통해 진실이 규명되어 가족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라고 있다.
 김흥태씨 가족은 재심 재판을 통해 진실이 규명되어 가족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라고 있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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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서는 대략 10일 정도 조사받았어요. 잠도 제대로 못 잤지요. 수사관 여러 명이 돌아가면서 조사하는데, 김흥로한테 무슨 교육을 받았냐는 거예요. 나야 남편이 김흥로에게 밥 차려주라고 해서 밥만 해줬다고 말해도 경찰들은 김흥로에게 지령도 받고 교육도 받고 다른 것도 도와준 것 아니냐며 몽둥이로 등짝이고, 머리고, 팔다리고 사정없이 때렸어요. 너무 맞으니까 날아오는 몽둥이를 막다가 양쪽 손목에 금이 갈 정도로 맞았어요."

김흥태의 아내는 지금도 한글을 알지 못한다. 그런 그녀의 진술서를 경찰이 멋대로 작성했다. 수사내용을 수사관들이 적고 글도 모르는 그녀에게 무인(손도장)을 찍으라고 강요했다. 거부하면 또다시 몽둥이가 날아들었다. 그녀는 폭력 앞에서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진술서에 무인을 했다.

"나는 지금도 글을 몰라요. 그런데도 수사관들이 자기들 멋대로 적고, 나는 무인 찍은 기억도 없는데 수사기록이 멋대로 되어 있어요. 검찰이나 법원에 가도 늘 나를 때리던 수사관들이 있어서 올바르게 말도 못 했어요. 나는 밥해 준 죄밖에 없어요. 남편이 후레쉬 건전지 사오라고 시켜서 제가 딸 아이한테 시장 가서 건전지 사오라고 시킨 일이 있는데 그것이 죄라면서 3년 반 징역을 살았어요.

딸아이도 제가 건전지 사오라고 시킨 죄로 4년을 감옥에서 살아야 했어요. 이게 미친 법 아닙니까? 남편이 건전지 사오라 해서 사온 것이 3년, 4년 감옥에 갈 일이냐구요. 경찰이 고문해서 만든 걸 판사나 검사들은 확인도 안하고 생사람을 감옥에 갖다 넣었으니 억울하지 않겠냐고요."  


그녀를 비롯해 김흥태 집안 사람들은 김흥로 사건으로 인해 꿈과 희망이 무너져 버린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특히 큰 딸에 대한 미안함이 제일 크다고 한다. 건전지 심부름을 한 이유로 영문도 모르는 죄인이 되었다며 괴로워했다.

"우리 집안은 빨갱이 집안이 아니에요. 남편은 6·25전쟁 때 북한 인민군들과 싸워서 국가로부터 무공훈장도 받은 애국자 집안이에요. 한 번도 대한민국을 배신한 적이 없는 삶을 살았어요. 단지 친척이 북한에서 내려와 자수를 권유하며 잠시 머물게 한 것이 큰 죄가 되어 이런 고통을 겪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 억울함을 어디 가서 풀겠어요."

재심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모습. 이 재판에 임하기 위해 50년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모습. 이 재판에 임하기 위해 50년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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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태 가족의 억울함은 결국 인권단체 '지금여기에'에 전해졌고, 원곡법률사무소의 도움을 받아 그들의 명예 회복과 진실규명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지난 4일, 기다리던 재판이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에서 열렸다. 강릉지원 법정 앞에 앉아 있던 부인 김정자씨는 떨기만 했다. 그리고 불안한 손길은 갈 곳을 잃고 비벼대기만 했다. 법정에 서야 한다는 불안감에 유일한 생존 피고인인 누님이 시간을 잘못 알고 늦게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다행히 앞서 다른 사건을 먼저 심리하면서 기다리겠다고 하였고, 다른 사건을 먼저 심리하는 동안 누님이 도착했다. 드디어 모든 가족들이 217호실로 입실하였다.

판사는 검사에게 공소사실의 요지를 설명하도록 했다. 검사는 '남파간첩 김흥로가 형제 김흥태, 김흥진과 공모하여 간첩행위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변호사는 검사의 이러한 공소사실에 대해 단호하게 반박했다.

'먼저 김흥로가 간첩이고, 간첩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증명된 바 없다, 또 김흥로와 나눈 대화는 국가기밀이 아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기밀이라고 할 수도 없다, 또 큰 딸 김씨의 경우 어머니가 집에 없을 때 한 차례 식사를 차려주고 심부름을 했던 것인데 그게 무슨 간첩행위냐'며 반박했다.

이에 판사는 검사에게 증거목록을 제출토록 하였으나 검사는 '증거목록을 준비하지 못했다'며 제시하지 못했다.
     
이렇게 시작된 재심의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오직 법정 싸움을 통해 판사만이 그 결과를 알 뿐이다. 그러나 적어도 과거 이 사건에서 불법 수사가 있었고, 조작된 범죄사실이 명백하게 있었다는 것이 분명했음은 알 수 있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는 사법부와 검찰이 되기를 기대한다.

태그:#지금여기에, #수상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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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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