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연천군 장남면의 인삼재배밭 풍경
▲ 고려인삼의 원산지인 연천군 장남면   연천군 장남면의 인삼재배밭 풍경
ⓒ 변영숙

관련사진보기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옛부터 설 다음으로 정월 대보름을 중요한 명절로 여겼다. 이날은 풍년을 기원하며 오곡밥과 나물반찬을 해 먹고, 밤, 땅콩 등을 깨먹는 부럼깨기, 더위팔기 등을 하였다. 또 쥐불놀이나 줄다리기를 하면서 잡귀와 액운을 쫒고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는데, 특히 농촌에서는 정월 대보름이면  어김없이 쥐불놀이나 줄다리기 행사들이 열린다. 올해도 이런 풍경을 기대하며 정월 대보름을 맞아 연천군 장남면을 찾았다. 

장남면에 들어서자 햇빛 차단막을 세운 인삼밭과 빈들녘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장남면은 약 2만여 평의 토지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우수한 품질의 6년근 개성인삼을 재배하는 인삼의 고장이다. 
 
 '세상의 모든 아침' 은 카페형 매장으로 장남면 고려 인삼과 인근에서 재배된 농산물을 판매한다.
▲ 장남면 로컬푸드 카페 "세상의 모든 아침" 풍경  "세상의 모든 아침" 은 카페형 매장으로 장남면 고려 인삼과 인근에서 재배된 농산물을 판매한다.
ⓒ 변영숙

관련사진보기

 
먼저 장남면의 한 로컬푸드카페를 찾았다. 카페겸 인삼 및 농산물 직판장인 이곳에 가면 마을 사람도 만나고 대보름 분위기도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그런데 매장 안에는 주인 혼자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손님이 하나도 없네요?" 
"네, 겨울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편인데 코로나(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더 사람이 없네요. 오늘은 아예 사람 그림자도 없어요." 

커피를 주문하고 매장 구경을 하고 있는데 마침 마을 분들이 들어왔다. 마을분들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오늘이 정월대보름인데 마을에 무슨 행사 없어요?" 
"다 취소됐어요. 원래는 모여서 음식도 나눠먹고 윷놀이도 하고 하는데… 올해는 아무것도 없어요."
"마을회관 한번 가봐요. 거기서는 노인분들이 음식도 해서 나눠먹고 무슨 놀이 할지도 몰라요." 

장남면 마을회관의 표정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장남면의 정월 대보름 행사가 모두 취소되었다.
▲ 연천군 장남면 마을회관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장남면의 정월 대보름 행사가 모두 취소되었다.
ⓒ 변영숙

관련사진보기

 
마을 회관을 찾았다. 내가 찾은 곳은 원당2리 마을회관이다. 회관 입구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예방수칙'이 적힌 커다란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내가 마을회관 입구에서 쭈뼛대고 있으니 안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나오더니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내 소개를 하고 오늘 보름이라 음식도 나눠 드시고 무슨 놀이도 하신다고 해서 찾아왔다고 하니 

"없어요. 다 취소됐어. 내일부터는 여기도 문 닫아."

하시며 들어오라고 하신다. 

마을 회관은 중앙에 마루와 그 양 옆으로 할머니방과 할아버지 방이 나뉘어 있고, 안쪽으로 주방이 있는 구조다. 마루 벽면에는 글씨가 큼지막한 달력과 시계가 걸려 있고, 티브이, 운동기구 등이 놓여 있다. 

할아버지 방에는 할아버지 네 다섯분이 고스톱을 치고 계셨고, 두 세분은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곳에도 마스크를 쓴 할아버지는 없었다. TV에서는 신종 코로나 감염에 따른 중국 사망자가 636명이 넘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내일부터 여기 문 닫으면 갈 데도 없고, 아주 큰일이야." 
"그러게, 그 뭐. 코 뭐라나. 코… 그 뭐시기인지 하는 것 때문에 다 문을 닫으라니 참."
"문 닫는다고 하니 뭐… 할 수 있나." 
"언제까지요?"
"모르지. 때 되면 얘기해 주겠지. 닫는다는 것도 오늘 알려줬어."

할아버지들은 신종 코로나 감염에 대한 걱정보다도 마을회관 문을 닫으면 갈 곳이 없어지는 것을 더 걱정하고 있었다. 그분들에게 신종 코로나는 마치 남의 나라 얘기 같았다. 감염 걱정으로 외출도 삼가하는 도시 풍경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이번에는 할머니 방으로 가서 총무 할머니라는 분에게 물었다.
  
 원당리 마을회관의 오곡밥
▲ 잡곡밥   원당리 마을회관의 오곡밥
ⓒ 변영숙

관련사진보기

 
"할머니, 오늘 보름인데 잡곡밥 드셨어요?"
"응. 다 먹고 치웠지." 
"벌써요? 저 밥 좀 얻어 먹으려고 왔는데 벌써 다 드셨어요?" 
"밥 여기 남은 거 있어. 차려줄게. 먹어." 

하시며 부지런히 주방으로 들어가 밥솥을 열고 주발에 담긴 밥을 꺼내셨다. 정말로 상을 차릴 태세다. 할머니의 후한 밥 인심에 위축됐던 마음도 확 풀려나갔다. 

마을 회관은 오전에 문을 열고 저녁 8시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식사는 할머니들이 돌아가면서 준비를 해서 회관에서 해결한다고 한다. 그분들에게 회관은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생활의 터전' 같은 곳인데 문을 닫는다니 걱정이 되는 게 당연했다. 

정월대보름 행사도 모두 취소되고 마을회관도 닫고. 신종 코로나는 시골 노인들의 일상까지도 바꿔 놓았음이 분명하다. 언제까지 이 상황이 지속될지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두가 차분하게 질병에 대응하면서 일상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태그:#정월대보름, #연천군 삼남면 대보름풍경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