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 13:15최종 업데이트 20.02.11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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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뉴욕에서 체험프로그램으로 만든 K-food 막걸리와 고급탁주 이화주로 만든 국순당의 마스크팩. ⓒ 막걸리학교

 
뉴욕에서 막걸리가 먹힐까? 맨해튼 32가 H마트에서 서울탁주합동의 월매 막걸리와 보해양조의 순희 막걸리를 보았다. 살균한 페트병 제품이라 냉장 음료 코너에 있지 않고, 식재료들이 있는 선반에 있었다.

뉴욕 한식당에 주로 공급되는 생막걸리는 국순당 제품이었다. 국순당은 2009년 11월에 생막걸리를 최초로 미국에 수출하기 시작해 2019년 말까지 꼬박 10년 동안 1200만 병을 팔았다. 국순당이 개발한 발효제어기술로 생막걸리의 유통 기간을 3개월로 늘렸기에 가능해진 일이다.


아이돌의 케이팝(K-POP), 한국 화장품, 한국 드라마, 한국 영화의 선전으로 뉴요커들에게 한국 문화와 음식이 신선한 상상력을 제공하는 콘텐츠가 되고 있다. 한국 술도 그 속을 파고 들어가고 있다.

지금까지는 소주가 한국 술의 대명사로 여겨져서, 뉴욕 현지에서 한국 이름의 토끼 소주, 웨스트32 소주, 여보 소주가 생산되기에 이르렀다. 뉴욕에서 직접 만들어지는 막걸리도 있어, 막구 캔막걸리, 하나 막걸리, 농장을 경영하는 한국인이 만든다는 막걸리 등 세 종류가 있다.

그중에서 SNS 홍보를 활발하게 하고 있는 막구 제조자를 2019년 5월에 뉴욕에서 만났다. 만난 장소는 뉴욕 브루클린의 공단 지역을 재생시킨 인더스트리 시티의 사케 제조장인 브루클린 쿠라였다. 미국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사케 제조장인데,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5시까지는 술 제조를 하고, 금요일 오후 5시 이후와 주말에는 탭룸(taproom, 술을 맛볼 수 있는 바)을 열어 시음할 수 있는 곳이었다.

88년생이 만드는 캔막걸리
 

막구 캔막걸리를 제작해 판매하고 있는 캐롤박 ⓒ 박지영

 
막구 제조자는 캐롤박(Carol Pak). 한국 이름은 박지영이었고, 미국에서 1988년에 태어났다. 미국에서 태어난 젊은 여성이 어떻게 막걸리를 만들 생각을 했냐고 묻자, 하나막걸리를 만드는 여성은 자기보다 더 젊은 1993년생이라고 했다. 뉴욕에서 막걸리를 만드는 젊은 여성들의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놀라워서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캐롤박은 막구를 2018년에 만들었다. 영어권의 외국인들은 막걸리(Makgeolli)를 발음하기 어려워, 또박또박 알려줘도 막굴리(Makkulli)라고 부른다. 게다가 막걸리를 자주 접하는 것도 아니어서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는 발음하기 편하고 간결하게 막굴리를 막구(Makku)라고 줄여서 상표화했다.

그녀는 대학에서는 심리학과 비즈니스를 공부했다. 졸업 후 세계 술 매출 1위인 다국적기업 안호이저부시 인베브의 신상품 개발팀에서 1년 동안 일했다. 세계 각지에서 어떤 신상품 술이 나오는지, 또 어디에 신규 투자를 해야 하는지를 살피는 팀인데, 그녀는 중국에서 잠시 근무하며 아시아의 술에 관심을 두게 됐다.

자연스럽게 부모의 나라인 한국 술에도 관심이 갔는데, 그녀는 그 전까지 한 번도 막걸리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캐롤박이 주목한 것은 소비자의 시선이었다. 글로벌 시대에 다국적 기업들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소비자 개성보다는 생산 효율성에 더 무게 비중을 두게 된다. 대량 생산하고 장기 유통하려면 건강에 좋을 것이 없는 성분이 추가로 들어가거나, 좋은 성분이 약화되게 된다.

이러한 대기업의 몰개성에 반발해 자기 취향에 맞는 제품들을 찾는 소비자들도 등장하게 됐다. 이들은 대기업 제품을 싫어하는데, 특히 화장품이나 음식에서 그런 취향이 두드러졌다. 그래서 그녀는 소비자의 취향에 충실한 유니크한 알코올 음료, 막걸리를 만들고 싶어졌다.

캐롤박은 어렸을 때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한국어를 익혔다. 그녀는 한국어를 순탄하게 알아듣고, 한국어를 어눌하게 구사할 줄도 알지만, 영어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자유롭다.

그녀는 막걸리를 배우기 위해서 인터넷을 뒤졌고, 한의사인 어머니의 해석과 가르침으로 막걸리를 배웠다. 그리고 뉴욕에서 맛본 막걸리와 한국을 방문해 맛본 막걸리를 통해서 막걸리 맛을 재구성했다.

그녀는 뉴욕 맨해튼에서 250마일(400km) 떨어진 한 양조장에 의뢰해 캔막걸리를 만들었다. 1회에 1만 캔 분량씩 모두 4차례 빚었는데, 두 번은 만족스럽지 않아서 버리고, 두 번은 성공적이어서 2만 캔을 상품화했다. 양조장을 빌려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려서, 아버지와 친구와 함께 이틀 동안 꼬박 병입 작업을 해야 했다.

미국에서 굳이 막걸리를 파는 이유
 

캐롤박이 실험·양조하고 있는 막걸리 ⓒ 박지영

 
나는 한인타운이 있는 뉴욕 퀸스의 함지박 식당에서 막구 캔막걸리를 맛보았다. 캔막걸리 한 병이 음식점에서는 8달러, 소매점에서는 2달러 63센트에 팔렸다. 맛이 엷고 싱거웠는데, 쌀알이 몇 점 담겨 있었다. 뉴욕에서 만들어진 막걸리라니, 신통하고 놀라워서 그 싱거운 맛이 결코 싱겁지 않게 여겨졌다.

나는 막구가 어떻게 유통되는지 궁금했다. 젊은 혈기로 기획할 수는 있겠지만, 어떤 시장을 겨냥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녀는 음식점을 직접 방문해 홍보하고 납품한다고 했다. 한국인이 주로 가는 한식당이 아니라, 뉴요커들이 주로 찾아가는 한식당을 1차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대학교에 다닐 때 음식점 홍보 쿠폰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팔았던 적이 있어서, 음식점을 직접 방문해 판촉 활동하는 게 낯설지도, 두렵지도 않다고 했다.

캐록박에게 막걸리를 어떻게 빚는지 묻자, 간결하게 설명해준다. 고두밥을 찌고 식히고, 누룩과 효모를 넣고 물을 섞어 발효시킨 뒤에 설탕을 넣고 이산화탄소를 넣어 캔에 담고 살균을 한다. 연구·개발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지금은 술 빚는 데 2주일이면 된다고 했다.

그녀는 직접 양조장을 만들어 막걸리를 빚을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그녀는 미국에서 막구 캔막걸리를 만들어 시장성을 타진해보고, 한국 양조장에서 직접 주문 생산해 미국 시장에 막구를 팔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와 만나기 일주일 전에 한국을 다녀왔고, 한 양조장과 협의하고 있지만 아직은 비밀이라고 했다.

비밀이라고 하니 캐물을 수는 없지만, 어느 양조장인지 맞혀봐도 되겠냐고 나는 되물었다. 한국에서 캔막걸리를 만들고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캔막걸리를 최초로 만들었던 가평 우리술이 있고, 알코올 3%의 자몽 아이싱을 만드는 국순당이 있고, 장근석이 홍보하며 일본 수출을 이끌었던 서울탁주의 월매 캔막걸리가 있고, 그리고 전라북도 변산반도에서 다양한 술들을 만드는 동진주조의 캔막걸리가 있다.

그렇게 꼽고나서 "그리고 또 어디가 있던가?" 하면서 캐롤박의 눈빛을 보니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캐롤박의 의향을 들어줄 수 있는 가장 유연한 양조장은 아마도 가평 잣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이 아닐까요? 가평 우리술은 가장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을 열고 있고, 가장 다양한 술을 만들어내는 막걸리 양조장이기 때문에 가능할 법도 한데요."

이렇게 말하자, 캐록박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아직 상품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분간 비밀로 해두었으면 한다고 했다.

캐롤박은 막걸리가 미국 시장에 먹히리라는 예측의 근거를 이렇게 꼽았다.

"사케보다는 도수가 낮아서 마시기가 쉽습니다. 막걸리는 맥주처럼 가볍게 마실 수 있고, 알코올이라는 느낌이 안 나잖아요.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막걸리를 좋아해요. 또 새로운 술을 마시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기도 좋죠."

그가 팔고 싶은 건 단순히 막걸리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주문 제작돼 뉴욕에서 팔리고 있는 막구 캔막걸리 3종 세트. ⓒ 막걸리학교

 
그녀는 자신이 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막걸리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문화로서 막걸리를 미국 전역에 팔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문화를 미국에 소개하고 싶기에 미국에서 막걸리를 만드는 것보다는 한국에서 만들어 미국에다가 파는 게 더 어울린다고 했다.

글로벌 회사에서 배운 발상일까? 꼭 장인만이 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좋은 문화 기획자, 능력 있는 유통 전문가도 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보여주고 있었다. 그랬기에 나는 그녀에게 "막걸리의 맛을 압니까? 막걸리를 얼마나 빚어봤습니까?" 따위의 물음은 하지 않았다. 그가 팔고 싶어 하는 것은 막걸리로 포장된 한국 문화 콘텐츠였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와 가평 우리술 양조장 박성기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대표는 막구 제품의 주문을 받았는데 가을쯤 돼야 출시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깜빡 잊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깊어져서야 다시 박 대표에게 전화를 했다. 미국에서 막구를 마셨다는 소식을 SNS로 접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캐롤박이 막구 캔막걸리를 만들어 두어 차례 미국으로 선적해갔다고 했다. 나는 막구 캔막걸리를 맛보려고 가평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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