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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 현지 섬유봉제공장 내부 모습. 캄보디아 섬유봉제의류산업은 여성 근로자가 90%를 차지한다.
 캄보디아 현지 섬유봉제공장 내부 모습. 캄보디아 섬유봉제의류산업은 여성 근로자가 90%를 차지한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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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캄보디아 수출품에 대한 일반특혜관세(EBA) 일부 철회를 공식 발표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 2월 12일(캄보디아 현지시각) 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가 캄보디아의 야당지도자 켐 소카 등 정치인들에 대한 탄압과 인권 침해 및 민주주의 퇴행 등을 문제 삼아 캄보디아의 대 EU 수출품목 가운데 20%에 해당되는 제품에 대해 특혜관세를 철회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번 결정으로 인해 전체 EU 수출의 20%에 해당되는 약 10억 유로에 대해 관세 부담을 지게 되는 등 20년 가까이 7%대 꾸준한 경제 성장률을 기록해온 이 나라 경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EU는 2018년 11월부터 캄보디아의 민주주의와 노동자 및 인권 탄압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며, 35년째 장기 집권을 해온 훈센 정부를 줄기차게 압박해왔다. 이번 결정으로 실제 관세혜택이 줄어들면, 캄보디아 산업의 약 70%를 차지하며 80만 명 이상이 종사하는 봉제업이 직간접적으로 타격을 받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그 파급효과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김준경 재캄보디아 섬유협회장은 "한국 봉제회사들 거의가 EU로 수출을 적게는 5% 많게는 90%까지 하고 있어, 각 회사별로 피해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우리 기업들은 EU의 철회 방침에 대비 수출노선을 확대하는 등 충격을 줄이기 위해 나름 준비해왔다. 하지만, 일부 품목은 EU 수출의존도가 40%에 달해 쉽지 않다. 특혜관세혜택을 적용 받게 된 이웃나라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기는 일부 회사들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 참고로 같은 날 유럽의회는 EU와 베트남이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과 투자보호협정(IPA)를 승인했다.)  
 
하지만, 반대로 이번 EU의 조치로 인한 파급효과가 당초 예상보다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또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도 적지 않다. 
 
580여 개 회원사를 거느린 캄보디아 섬유의류협회(GMAC) 황순정 부회장은 "전체 의류산업 가운데 품목별로 타격을 받을 수 있는 분야가 있다. 현지 중국공장이 생산하는 수영복이 그 예다. 다만, EU의 의류 수출 물량 중 1/3은 영국이 차지하고 있다. 영국이 EU를 조만간 탈퇴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EU의 특혜관세 일부 철회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큰 타격을 주기 어렵다"고 답했다. 황 부회장은 덧붙여 "좀 더 조사가 병행되어야겠지만, 캄보디아에 진출한 우리나라 업체에 미치는 영향은 5~10%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된다. 신발과 여행용품 등은 EU보다는 대 미국 수출 비중이 더 높다"고 밝혔다.
 
'피의 설탕'으로 악명높은 캄보디아 재벌 그룹의 설탕 수출 타격
 
 일부 캄보디아 재벌기업들의 토지수탈과 노동자 유린 및 인권탄압 사례에 대해 EU를 비롯한 서방세계가 캄보디아 정부에 여러차례 걸쳐 시정을 요구한 바 있다. 사진은 모 재벌의 토지수탈로 살던 집과 터전을 잃은 현지 여성들이 시내 시위에 나선 모습. (참고사진)
 일부 캄보디아 재벌기업들의 토지수탈과 노동자 유린 및 인권탄압 사례에 대해 EU를 비롯한 서방세계가 캄보디아 정부에 여러차례 걸쳐 시정을 요구한 바 있다. 사진은 모 재벌의 토지수탈로 살던 집과 터전을 잃은 현지 여성들이 시내 시위에 나선 모습. (참고사진)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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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EU의 조치로 가장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주요수출품목은 섬유신발봉제의류가 아닌, 설탕이다. 캄보디아 남동부 '꼬꽁주(州)의 황제'로까지 불리는 재벌 리용팟 회장(현 집권여당 상원의원)이 이끄는 설탕제조업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이 재벌이 운영하는 거대 사탕수수 농장들은 노동자 인권 탄압과 강압적인 토지수탈로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야당 여성 지도자 무 소쿠아 의원(전 CNRP, 캄보디아 구국당)은 재벌 회장 리용팟이 소유한 농장에서 생산된 설탕을 '피의 설탕'이라고 빗대어 표현하며, EU를 비롯해 이 회사에서 생산된 설탕을 납품 받아 온 미국 코카콜라 회사측에도 공개서한을 보내 이 나라 설탕 수입을 금해줄 것으로 강력히 요청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당신이 마신 콜라, 이걸로 만든다는 거 아나?)
 
인권단체 리카도(Licahdo) 역시 지난 2017년 이 회사를 겨냥해 "캄보디아 사탕수수 산업의 발전은 강제적인 토지수탈과 거주 농민들을 상대로 한 무자비한 폭력, 인권 착취와 유린, 자연환경 파괴 등이 동반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EU도 관세혜택 철회 대상 품목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바로 이런 점을 고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EU는 영세 농민들이 직접 생산하는 슈가팜(Sugar Palm)과 쌀은 관세혜택 철회 품목에서 제외시켰다.  
 
반면, EU가 섬유봉제수출품의 관세 철회를 전체 수출 품목 가운데 20%에 해당되는 품목에 대해서만 적용키로 결정한 것은 현지 섬유봉제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90%에 달해, 사회적 약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EU 나름의 고민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이번 EU의 관세혜택 일부 철회 결정이 따지고 보면, 여러 복잡한 외교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한 계산법에서 나왔다는 분석도 잇따른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 캄보디아 전문가는 "EU가 캄보디아의 후진적 정치시스템, 퇴행적 민주주의를 지적하며, 전 수출품목에 대해 관세혜택을 철회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정작 일부 품목에 대한 철회로 방향을 잡은 건 중국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U 입장에선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해온 시진핑 체제의 중국이 더 이상 캄보디아를 자신들의 속국으로 만들려는 의도를 그냥 방관만은 할 수 없다는 숨은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란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도 나온다.
 
EU의 공식 결정을 앞두고 최근 만난 현지 언론인 찬 소완나락씨(가명)는 "EU가 캄보디아의 민주주의를 문제 삼아 경제 제재를 강화할 경우, 캄보디아는 중국과 더욱 친해지려고 들 것이다. 그만큼 정치지리학적인 측면에서 EU의 대 캄보디아에 대한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줄 수 밖에 없다. EU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노련한 정치 9단으로 알려진 훈센 총리는 EU의 숨은 속내를 간파한 듯 이번 특혜관세 철회 결정을 앞두고, 오히려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왔다. 훈센 총리는 자국해외근로자들을 초청한 자리를 비롯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연설을 통해 "만약 EU가 일반특혜관세(EBA) 완전 철회를 강행할 경우, 캄보디아는 더 이상 EU와 인권이나 민주주의 탄압 등에 대해 논의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캄보디아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며 날선 비판을 서슴지 않아 왔다. 심지어 중국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나라와의 경제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발언으로 EU와 미국 등 서방세계의 심기를 은근히 자극하기까지 했다. 
 
EU의 이번 결정 발표를 앞두고 훈센총리는 그동안 이를 대비해 나름 준비를 해왔다. 수출지역과 수출품목을 다변화하려는 정책적 노력과 함께,  2019년 초부터 유러시아경제연합(EAEU)과의 FTA 자유무역협상체결을 추진 중이다. 훈센 총리 제안으로 2019년 11월 부산에서 최초로 열린 한-메콩강 정상회의에서도 한국-캄보디아 양국 무역통상 장관이 만나 양국간 자유무역협정을 위한 타당성 조사에 나서기로 기본 합의했다. 중국과도 FTA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훈센 정부는 EU에 대한 지나친 경제 의존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나름 대책을 마련해왔다.  
 
이번 EU와의 게임은 훈센 총리의 승리
 
35년째 장기집권중인 캄보디아 최고 권력자 훈센 총리 훈센 총리는 EU의 캄보디아 민주주의 개선 요구를 주권침해라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 35년째 장기집권중인 캄보디아 최고 권력자 훈센 총리 훈센 총리는 EU의 캄보디아 민주주의 개선 요구를 주권침해라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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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EU의 대 캄보디아 특혜관세 철회 결정에 대해 캄보디아 정부의 공식입장은 아직 발표된 바 없다. 하지만, 이번 EU의 결정이 캄보디아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섬유봉제신발산업 전반과 이 나라 실물경제에는 당초 예상보다는 큰 피해를 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도 일부 감지된다.
 
EU의 결정이 발표된 다음날인 13일 오전(현지시각) 긴급히 열린 캄보디아 정부고위관계자 및 섬유의류 관련 단체 임원 참석 비공개회의석상에서도 회의 주제는 EU의 결정에 향후 긴급대책 마련보다는 중국계 공장들의 조업중단이 EU의 결정 때문이 아니고, 최근 발생한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원자재 공급 부족에 따른 일시 조업중단이라는 점을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한 참석자는 귀띔해주었다.    
 
필 호건 EU 무역담당 집행위원은 "인권존중은 우리에게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EU의 이번 결정에 대해 일단 칼을 들었기에 명분과 체면을 살리기 위해 무라도 자르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에 내린 조치라며 평가절하했다. (실제로 훈센 총리가 EU를 향해 강경발언만 쏟아내지 않았더라면, 적당히 넘어설 수도 있었다는 의견도 일부 존재한다.)
 
반대로, 훈센 총리 입장에서는 오히려 얻은 게 많다는 일부 의견이 더 큰 설득력을 얻는다. 실제로 EU의 간섭에 대해 강경하게 대처함으로써, 주권을 가진 한 나라의 지도자라는 이미지와 경제자립의 기치 아래 국가적 자존심을 세울 수 있었고 오랜 장기집권에 피로감이 쌓인 야당 성향의 국민들마저 설득, 이들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었다.

아울러 중국의 경제지원을 추가로 약속 받는 등 중국과도 한층 더 가까워지는 전기를 마련했다. 물론 '독이 든 성배를 마신 것 아니냐'는 일부의 냉소섞인 비아냥도 있지만 말이다. 따라서 이번 EU의 결정으로 인해, 당장의 경제적 손실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훈센 정부 입장에서는 실보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득이 더 많은 게임을 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참고로, EU는 세계 최빈국 48개국을 대상으로 무기 이외 전 수출품목을 무관세로 EU 회원국들에게 수출할 수 있도록 한 일반특혜관세(EBA, Everything But Arms)를 시행 중이다. 이번 철회 결정 조치는 유럽의회와 EU정상회의 반대가 없다면, 6개월 후인 오는 8월 12일부터 발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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