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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많은 노동자들이 간접고용, 특수고용노동자 지위 등으로 인해 일을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노동자로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플랫폼 기업의 업무 지시 속에 배달, 가사 등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문제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일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산업안전보건법과 근로기준법 등 기본적인 노동법 적용과 더불어 노동자로써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지만, 현재 법 체계상으로는 노동자가 아닌 노동자들이 계속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로 플랫폼 노동자의 특수고용노동자 지위를 언급했지만, 사실 플랫폼 노동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을 하고 있지만 노동이 아닌 것들, 노동이 되지 못하는 것들의 문제가 한국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민간기업·공공부문에서 인턴 또는 실습의 형태로 일하는 사람들 역시 이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 중 한 가지 사례이다. 물론 '인턴'이라고 하는 개념이 법적인 것이 아니기에 인턴 일자리의 고용형태, 노동시간 등은 모두 상이하며 다양한 결의 논점들이 존재한다.

어떤 경우에는 4대보험, 최저임금 지급 등 최소한의 보장은 되어있지만, 어떤 경우는 대학교 '현장실습생' 신분을 이유로 임금이 지급되지 않거나, '인턴'이라는 이유로 주 40시간 근무를 하더라도 4대보험 가입조차 하지 않기도 한다. 특히 교육·경험·능력의 부족 등을 이유로 기본적인 보험 가입에서도 배제되고, 무임금·저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인턴'과 '실습생'을 채용하는 동기를 제공하기도 한다는 점에서도 문제적이다.

또, 전자의 경우라고 하더라도, 일터에서 느끼는 위축감, 고용불안, 경쟁 등의 문제도 존재하는데 이와 더불어 노동환경 차원에서 안전·건강이 보장되기도 어렵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가 부재한다는 점도 중요한 문제점이다.

물론 인턴 및 실습 형태의 일자리는 특정한 경우 직무를 미리 경험해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참여자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목적이 실현되려면 인턴·실습 프로그램이 충분히 교육적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관리·감독하에 운영되어야 하고, 임금뿐만 아니라 안전, 건강과 관련된 여러 가지 권리들이 보장되는 조건 속에서 전 과정이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2015년 1월 7일 진행된 <2014년 패션업계 청년착취대상> 시상식 모습
 2015년 1월 7일 진행된 <2014년 패션업계 청년착취대상> 시상식 모습
ⓒ 패션디자인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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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실제로 이런 형태로 일했던 당사자들의 경험은 어떨까? 인턴, 실습 형태의 일자리는 민간기업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에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청년 체험형 인턴' 제도부터, 정확히 '인턴'의 직함을 가지지는 않지만 선 체험 후 고용승계를 목적으로 하는 여러 가지 지자체·공공부문 일자리도 유사한 관점으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또, 교육제도 안에서도, 현장실습을 나가는 직업계고 고등학생, 졸업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현장실습을 나가야 하는 전문대 학생들, 인턴제가 취업의 보편적인 통로인 이·미용계열 노동자들이나 자격증 취득을 위해 병원 실습이 필수적이지만 해당 기간에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간호조무사들까지 다양하다.

첫 번째 인터뷰이로, 패션디자인과 졸업자 2명을 청량리역 인근에서 만났다. 인터뷰이들은 2010년대 초반 패션디자인과 재학 당시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현장실습 프로그램을 통해 패션회사에서 한두 달 간 2번씩 실습을 한 경험이 있다. 이후 A님은 졸업 후 현재까지 6~7년간 의류디자이너로 종사해왔으며 김다은님은 업계를 떠나 사진업에 종사하고 있다.

열정'페이'가 남긴 질문들

지난 2014년, 한국의 유명 디자이너가 '열정'을 강조하며 인턴들을 무임으로 채용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것이 대단히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패션업계에서 관행적으로 벌어져 온 문제였기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 속에서 사회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열정페이'라는 단어는 패션업계만의 문제를 넘어서 청년을 인턴으로 채용하면서 각종 스펙과 열정적인 근무태도 등을 강조하는 한국사회의 고용문화를 지적하는 언어로 등장했다.

이런 점에서 실습/인턴 형태의 노동이 가장 문제적인 지점은, 일 경험과 일을 통한 경력의 인증이 노동과정에서 임금 및 다양한 권리를 받지 못하는 상황과 교환되는 것처럼 이 문제를 인식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특히 예술계열의 경우에는 실무 교육이 여전히 도제관계를 통해 이루어지거나 혹은 그렇다고 상상하는 믿음 속에서 노동자에게 보장되어야 할 임금과 노동권 대신 '열정'이 강조되고 있다.

2010년 대 초반 유행했던 '열정페이'라는 언어가 이런 방식의 노동착취를 날카롭게 비판했다면, 여전히 횡행하고 있는 수많은 인턴·실습 문제는 임금만의 문제를 넘어 노동자의 권리와 일터의 평등이라는 차원에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패션 성수기 기간의 노동시간 문제

열정페이가 문제가 되었을 당시 야근, 장시간 노동이 관행적인 패션산업의 노동 문화 역시 문제시 되었다. 패션업계 내 노동착취 문제가 사회화 된지 4~5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패션업계의 일반적인 노동조건이 어떠한지를 물었다.

A: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퇴근이 없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말인 것 같아요. 의류디자이너들의 업무의 과중한 부담이 사실 가장 문제죠. 기업 차원에서 노동시간을 줄이자고 사무실 불끄기를 시행하면, 디자이너들이 퇴근시간 기다렸다가 스탠드 키고 손전등 키고 일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말입니다."

일상적으로 야근이 빈번하기 때문에 평균적인 노동시간이 길다는 문제는 워낙 고질적인 문제로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다. 이러한 장시간 노동 자체도 문제지만, 무조건 옷이 준비되어 진열대로 나가야 하는 마감 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 옷을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큰 압박으로 작용한다. 이에 더해 특정 기간에 집중되는 노동시간 역시 패션산업 노동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문제의 양상과 정도가 기업의 형태에 따라 다른데, 보통 브랜드 업체라고 하는 대기업의 경우는 SS(봄, 여름)/FW(가을, 겨울) 시즌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강하다. 따라서 다음 시즌에 나갈 옷을 디자인하고 샘플 제작 등을 준비하는 '성수기' 기간에는 업무량도 증가하고, 노동시간도 더욱 길어진다.
 
A: "옷을 디자인하고, 그 디자인에 대해서 '품평'하는 절차가 있어요. 예전에 일했던 기업에서는 이 품평 기간에 해당하는 3개월 동안 한번도 10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없었어요. 주말에 나오는 것도 당연했고요."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생산 리드 타임(생산 발주부터 제품의 완성까지 총 제작 기간)이 굉장히 짧아진데다 시즌 중간 중간에 기획 상품으로 나가야 하는 옷들이 있다. 예전에는 정확히 시즌제로만 패션산업의 생산이 운영되었다면, 이미 저렴한 옷을 구매해 한 철을 입는 패스트패션이 일상화 된지 오래 됐기 때문에 여러 가지 스타일의 옷이 바로바로 제작되어 나가야 하는 생산-소비의 트렌드 변화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옷의 수명 자체가 짧아졌기 때문에 전체 생산 기간도 줄어든다. 브랜드가 아닌, 시장에 나오는 옷을 디자인하는 업체의 경우에는 이런 생산 리드 타임이 더 짧기 때문에 그만큼 업무 강도와 속도가 빨라진다.

그렇다면 변화한 생산, 소비의 조건 속에서 노동의 측면은 어떨까? 이러한 시장의 변화는 실제로 그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업무량의 증가이지만, 노동환경이 변화에 맞춰 개선되지 않기에 개인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청구조 속 의류디자이너의 안전, 건강문제

패션업계는 해당 시점에 소비되는 옷들을 적게는 6개월에서 많게는 1년 전부터 준비한다. 생산 기간만 3~6개월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또 봄, 여름(SS)/가을, 겨울(FW) 시즌이 한 묶음으로 진행되는데 한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샘플작업, 품평, 생산, 리뷰의 과정을 거친다. 여기서 의류디자이너들은 해당 기업의 성격에 따라 담당하는 역할이 상이하다.

예를 들어 하청업체의 경우, 브랜드가 디자인을 주면 다른 업체들과의 경쟁 속에서 샘플을 제시해 더 계약을 따내야 한다. 따라서 하청업체 디자이너는 디자인보다는 생산, 영업의 역할이 주되고, 브랜드업체의 디자인이 실제로 생산될 수 있도록 자재 수급부터, 생산라인, 공장과의 소통 등을 담당한다. 또 브랜드의 디자인을 최대한 많이 가져와야 하기에 한 업체, 한 디자이너가 담당하는 옷 생산의 규모도 커진다. 이것이 각각의 옷 생산과 마감을 조율하고 소통하는 역할을 맡은 프로모션 디자이너가 시간에 쫓기게 되는 기제다.

그래서 보다 문제적인 부분은 이 하청구조에 있다. 브랜드와의 계약 체결을 위해선 경쟁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각종 리베이트·접대도 횡행할 뿐 아니라, 브랜드와의 우호적 관계 유지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하청업체 디자이너들의 감정적 부하와 정신적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특히 생산 절차 중, 브랜드 원청은 설계한 디자인대로 옷이 잘 생산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문 외주업체를 통해 '검품'과정과 생산 직전의 최종 점검인 '납기'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납기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 옷의 단가가 깎이거나 하는 등의 방식으로 하청업체에 손실이 발생할 수 있고 그런 경우에 하청업체가 그 일을 담당한 소속 디자이너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김다은: "실제로 인턴 과정에서 만났던 상사에게 들은 얘기로, 패딩의 제작 과정에서 원단 문제가 발생하자 그 제작을 담당했던 디자이너가 직접 전국의 백화점, 아울렛, 쇼핑센터에 전화를 돌려서 프로모션을 돌리고 하여 해당 제품을 다 팔고 퇴사를 했다는 사건이 있어요.

사실 옷을 만드는 데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어요. 옷을 기계로 찍어낸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자재, 치수와 관련해서 굉장히 다양한 변수들이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걸 일한 사람에게 책임지라고 하는 것이, 물론 모든 기업에서 그렇지는 않더라도, 황당한 일이죠. 당장 금전적 책임을 지라고 하지 않더라도 일하는 입장에서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죠."


일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업무 부담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물었다. 질문의 과정에서 의류디자이너들의 안전, 건강 문제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A: "프로모션(브랜드 본사의 하청업체) 디자이너 같은 경우는 브랜드 본사 직원들부터, 50-60대 공장 사장님들, 상사 직원 등 사람을 많이 상대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감정적 소진이 상당해요. 또 하루에 이동 업무가 95% 이상이라고 보면 되는데, 계속 옷이 생산되는 공장을 돌고 외근 업무를 하는 거죠. 그래서 기본적으로 장시간 운전으로 인해 척추나 허리가 안 좋기도 하지만, 운전을 하면서도 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걸려오는 전화를 계속 받아야 하고, 작업지시서를 봐야 해요. 그럴 때 정말 불안전하다는 불안감이 들죠.

또 의류를 만들다 보면 생산 과정에서 의류먼지, 분진 같은 것이 많이 날려요. 노출시간은 직접 일하는 공장 노동자들보다는 짧겠지만 하루에도 몇 번 씩 공장들을 방문해서 미팅을 하는 만큼 호흡기질환에 취약한 환경이에요. 옷의 염색과정에서 쓰이는 화학물질들에 대한 노출도 우려되고요."


엄격한 시즌제로 움직이는 패션산업의 기본적인 생산메커니즘에 더불어, 원하청 구조 속에서 하청업체 디자이너들은 '납기'에 대한 압박과 시간에 쫓기게 된다. 패션업계의 장시간 노동이 어떤 지점에서 발생하는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패션회사는 왜 인턴과 대학생 현장실습이 필요할까?

먼저 두 사람은 어떤 조건으로 현장실습을 하게 되었는지 당시의 경험을 물었다.

김다은: "첫 번째 실습 기업은 청바지를 만드는 회사였는데, 새벽 2-3시에도 자주 퇴근할 만큼 야근이 많았어요. 출근은 8시였고요. 1달 반 정도를 일했는데, 끝나고 사장이 문화상품권 20만원을 주더라고요. 두 번째 회사는 아동복 회사였고, '월급을 안줘도 된다고 들었지만 80% 정도는 주겠다' 하여 최저임금의 80% 정도를 받고 일했어요.

실습을 가기 전에는 해당 회사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어요. MD직군 일을 해보고 싶어 관련 기업에 대해 교수님께 문의했는데, 실상은 청바지를 만드는 기업이라는 정보 외에는 어떤 직무를 하는지도 전혀 알지 못하고 출근하게 되었죠."

 
A: "학교에 헤드헌터가 교수로 온 적이 있어요. 그때 ㄱ대기업에 인턴으로 보내주겠다고 엄청나게 애들을 설득해 보낸 적이 있어요. 막상 갔더니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들이 ㄱ대기업 브랜드 매장에서 매장사원, 매장 알바처럼 일을 하게 된 거예요. 처음에는 임금 자체가 없었는데, 학생들이 문제제기를 하자 학교에서 장학금 형식으로 소액을 지급했어요. 그것도 돈이 학교를 거쳐 학생에게 들어오는 구조였고요. 그 과정에서 임금이 어떻게 책정되고 들어오는 것인지 실습을 나간 당사자들도 알 수가 없었어요."


인턴 및 실습생의 노동조건이 문제화 되면, 기업에서는 꼭 하는 말이 있다. 인턴, 실습생이란 존재가 사실 꼭 필요한 인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숙련된 인력이 아니기에 기업 차원에서도 득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다. 이들의 노동이 한 사람 분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온전하지 못한 노동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하는 과정에서는 어떻게 대우를 받았는지, '학생'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일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일은 없었는지 물었다. 그러나 오히려 교육의 대상으로써 학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명의 신입 직원처럼 대우 받고 똑같이 일을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다은: "임금은 실습을 연결시켜준 교수의 재량에 따라서 무급인 경우도 있었고 일정 금액을 지급받기도 했지만, 모두 최저임금을 밑도는 저임금이었어요. 그런데 현장실습을 하러 가면 아무도 우리를 학생, 실습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그 회사에 들어온 똑같은 사원, 막내라고만 생각하는 거죠. 아침부터 밤, 때로는 새벽까지 그 회사 직원들처럼 똑같이 일을 했어요."
 

또한 임금뿐만 아니라 실제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인턴·실습생이 마주하게 되는 문제들은 다양하다. 사업장 내 위계에서는 가장 낮으면서, 최소한 노동자로써 가져야할 각종 권리들도 보장되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인턴·실습생'이라는 신분을 통해 이 권리의 부재가 자연스럽게 은폐된다는 점, 이런 모든 것들이 인턴·실습 과정에 있어 열악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구조적인 배경이다.

실습생으로 일했던 당시, 일터에서의 차별이나 배제감 등 불평등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A: 대기업과 영세기업의 차이가 있을 거예요. 사실 실습생이라서 특별히 더 차별을 받는다기 보다 이미 업계 전반에서 인턴이나 신입사원에게 떠넘겨지는 궃은 일과 역할들이 존재해요. 패션회사에는 '막내역할'이라고 하는 공공연한 직함이 있어요. 인턴이 있는 경우에는 인턴이 막내역할을 하는 것이고, 인턴이 없다면 가장 늦게 들어온 사원이 이 역할을 하게 되는 거예요.

패션회사가 요새는 거의 없는 도제 시스템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경력이 없는 사람에게 처우가 굉장히 안 좋아요. 사실 일을 하다보면 큰 규모의 자재들, 무거운 원단들을 들어야 하는데 이것을 보통 막내들이 담당하죠. 이런 식으로 일에 필요한 가장 안 좋고 힘든 일들이 떠넘겨지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로 막내가 야근을 비롯해 굉장히 많은 일들을 하게 되는 구조죠. 실습생 역시 이런 '막내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거고요. 

한편 큰 회사 같은 경우에는 인턴과 직원이 처우가 정말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서 차별과 배제가 있어요. 동기 중 대기업에 인턴으로 들어간 친구는 거기서 함께 들어간 다른 인턴들과 경쟁을 해야 했어요. '공채로 뽑힌 직원들은 좋은 대학 출신이지만 너희는 전문대에서 왔고 그러니 경쟁을 통해서 1명을 뽑을 수도 있고 안 뽑을 수도 있어'라는 식이였죠."
 
 
2015년 8월, 패션노조와 청년유니온의 패션업계 열정페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2015년 8월, 패션노조와 청년유니온의 패션업계 열정페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 패션디자인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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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통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패션회사는 왜 열정페이라는 말을 만들어냈을 정도로 인턴을 많이 채용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이었다. 일차적으로는 앞서 보았던 열악한 노동조건이 문제다. 패션 회사의 장시간 노동, 그 중에서도 패션 '성수기' 기간에 급증하는 초과근무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또 패션산업의 생산, 소비 트렌드 변화와 원-하청 구조로 이루어진 산업구조 속에서 프로모션(하청) 회사 디자이너들에게 지워지는 업무 부담이 극심해지고, 이에 대한 스트레스 및 적절한 보상 부재로 인해 인력의 들고남이 빈번해지는 것이다. 업계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근속연수가 짧다는 것이 이렇게 인력의 들고남이 빈번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인력의 만성적인 부족 문제가 핵심인데, 이런 측면에서 패션디자인과 등 관련 학과의 재학생들이 인력 공급의 한 가지 축이라는 점이 아마도 기업이 끝없이 인턴을 필요로 하는 이유다. 특히 중소기업, 소규모 패션기업의 경우에는 별도의 인턴 공채가 효율이 없기 때문에 대학생 현장실습이 인력 공급의 중요한 수단인 것이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패션업계의 노동문화와 노동조건이 불안정한 일자리를 필요로 하고 만들어내는 악순환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 이런 불안정 노동이 인턴. 실습제를 만나면 쉽게 평가·경쟁·차별이라는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인턴·실습이 비교적 짧은 기간 이루어지더라도 이들의 노동환경이 주목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어떤 방식으로 인턴, 실습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활동가 김지안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또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1월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태그:#인턴노동, #대학교현장실습생, #일터, #다양한노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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