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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올해 창간 20주년을 맞아 '나의 스무살' 기사 공모를 진행합니다. 청춘이라지만 마냥 빛날 수는 없었던, 희망과 좌절이 뒤섞인 여러분의 스무살 이야기를 기다립니다.[편집자말]

나는 요즘 '투잡'을 뛰고 있다. 본업은 방송작가. 그러나 글 쓰는 일만으로는 생계가 유지되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겸하고 있다. 내가 선택한 일은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이다. 나는 이곳에서 주 3일 정도 일한다.

"오늘 새벽까지 놀았더니 너무 졸려요."

지난 주말 오전 7시,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출근했더니 탈의실 테이블에 엎드려 있던 한 아르바이트생이 부스스 일어나며 한 말이다. '피곤해서 어떡하냐'고 걱정하자 그녀가 배시시 예쁘게 웃으며 답한다.

"저 지난주에 생일 지나 드디어 성인 됐거든요. 2주 동안 달리고 있어요."

아, 스무 살. 듣기만 해도 설레는 나이다. 나도 모르게 "어머, 좋겠다"라는 말이 나와 버렸다. 나는 그녀의 스무 살 세리머니가 부러웠다. 그리고 덕분에 나의 스무 살이 소환됐다.

모든 게 신세계였던 나의 스무 살
  
 햄버거 패스트푸드 치킨버거 감자튀김 치즈버거
 스무 살 내가 첫 아르바이트를 한 곳은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다. 그리고 나는 딱 30년 만에 그 자리에 다시 서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스무 살에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곳이 오십의 나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준 셈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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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의 나는 방송작가를 꿈꾸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대학에 가면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미팅과 아르바이트였다. 막 입학하고 나서는 미팅 쫓아다니느라 바빴고, 그게 시들해질 무렵 친한 고교 동창을 만났다가 아르바이트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민을 가기 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자기 일에 대해 신나서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솔깃했다. 내 표정을 봤는지 친구는 같이 해보자고 권유했다. 나는 바로 지원했고, 바로 합격했다. 그렇게 나의 첫 아르바이트 겸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때 내가 첫 아르바이트를 한 곳이 지금 일하고 있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다. 딱 30년 만에 그 자리에 다시 선 것이다. 딱히 이곳을 염두에 두고 지원한 것은 아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고 결정하면서 여러 군데 이력서를 냈는데 겨우 합격한 곳이 지금의 지점이었다. 스무 살에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곳이 오십의 나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준 셈이다.

스무 살 땐 모든 게 새로운 신세계였다. 출퇴근 도장을 찍는 것도, ○○씨로 불리는 것도 나에겐 '진짜 어른' 인증을 받는 것 같았다. 일한 만큼 보수를 받는 경험도 꽤 짜릿했다. 게다가 동료들이 다 또래 친구들이었으니 얼마나 재미있었겠는가. 좋아하는 오빠까지 생기는 바람에 나의 일상은 점점 아르바이트 위주로 돌아갔다.

학교 다니랴 아르바이트하랴,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랴 동아리 활동하랴, 나의 일주일은 24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그래도 피곤한 줄 몰랐다. 첫 사회생활, 첫 월급, 첫 회식 등 스무 살의 아르바이트는 나에게 행복한 '처음'을 많이 선물해주었다. 어쩌면 그때의 첫 사회 경험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기에 그 이후 이어진 정글 같은 진짜 사회생활을 잘 견뎠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의 자리에 다시 섰다. 그리고 스무 살 동료로부터 성년이 되었다는 말을 들은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나는 무엇이 변했을까.'

그때 나는 꿈이 창창했다. 비록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었지만, 그건 먼 훗날의 일이니 급할 게 없었다. 꼭 방송작가가 아니어도 뭔가가 될 거라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도 있었다. 아르바이트 원서만 내도 바로 합격했기에 일할 때도 자신 있었고, 실수해도 위축되지 않았다. 내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땐 세상이 스무 살 젊음에 대해 관대했다.

3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이곳은 많이 변했다. 그동안 자동화된 부분들도 많고, 일하는 시스템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나 자신'이다.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더뎌진 이해력과 마음과 따로 노는 몸 때문에 분명 설명을 들었는데도 자꾸 까먹고 헷갈렸다. 기본적인 카운터 업무를 익히는 데만 한 달이 넘게 걸렸을 정도다.

자꾸 과부하가 걸리고 실수도 잦았다. 손님이 몰리는 바쁜 시간에 내 실수로 주문이 밀릴 때에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루하루 나의 멍청력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스무 살 땐 놀이터 같기만 하던 그곳이 지금은 내 생계의 수단이 되었다. 또래도 없고 친구도 없다. 작은 일에도 함께 깔깔 웃고 장난치던 유쾌함과 발랄함 대신 "에구구" "아이고 주여" 하는 신음만 남발한다. 일하고 온 날은 오후 8시부터 꾸벅꾸벅 졸기 일쑤다.

내게 주어진 기회가 당연하게 여겨졌기에 그때는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맙고 작은 기회조차 소중하다.

그때는 연애든 친구든 뭐든 세상의 가능성이 나를 위해 열려 있는 것 같았다. 뭐든 꿈꿀 수 있었고 미래는 희망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닫혀가는 문 같다. 타기 위해 죽어라 뛰고 있는데 야속하게 닫히는 문처럼 말이다.

눈부셨던 희망은 차가운 현실로 바뀌었다. 가끔은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공연히 서러워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누군가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갈래?"라고 묻는다면 단칼에 말할 수 있다. "아니오!"라고. 30년이란 시간이 녹록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굽이굽이 지나온 고개들이 만든 내 삶과 내 모습이 소중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정말 열심히 사셨군요, 고마워요"
 
 나를 비롯해 지금도 두 발로 버티고 있는 힘껏 살아내는 수많은 중년에게 "정말 열심히 사셨군요. 고마워요"라는 응원을 해주고 싶다.
 나를 비롯해 지금도 두 발로 버티고 있는 힘껏 살아내는 수많은 중년에게 "정말 열심히 사셨군요. 고마워요"라는 응원을 해주고 싶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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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의 나는 막연히 방송작가를 꿈꾸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이었고, 오십의 나는 스무 살 때의 꿈인 방송작가가 돼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것도 그때와 같은 곳에서. 인생은 참 재미있지 않은가.

만약 스무 살의 나에게 "너의 30년 뒤의 모습이 바로 나야"라고 말해준다면, 스무 살의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리고 뭐라고 말할까. 문득 궁금해진다.

스무 살의 나는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까. '고작 이 모습이냐'고 부끄러워하며 실망할까. 그러나 나는 지난 30년 동안 스무 살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 열심히 살아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는 배신을 당하기도 했지만, 주어진 현실 속에서 치열하고 성실하게 살아남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은 모르더라도 스무 살의 나는, 그렇게 살아온 나를 알아줄 거라는 믿음이 간다.

"정말 열심히 사셨군요. 고마워요."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중년의 내가 아름답고 푸르렀던 청춘의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이다. 많은 도전을 하며 열심히 살았지만 성취보다 실패가 더 많았고, 실패에 좌절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일어서 다시 도전에 나섰다. 이 말은 꿈꾸던 근사한 모습은 아니지만 지금도 두 발로 버티고 있는 힘껏 살아내는 수많은 중년에게 해주고 싶은 응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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