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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 소개를 계획하면서 난 열 권 정도를 미리 정해 놓았다. 연재하다가 다른 책을 소개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읽으며 좋았던 책을 우선 골라본 것이다. 하지만 글감을 찾아놓고도 고민되었다. 제일 먼저 어떤 작가의 무슨 책을 소개하지 하는.

사실 두 작가를 놓고 고민했다. 두 사람의 작품들은 내게 동화에 대한 감각을 새로이 잡아주었고 예비 작가가 배울만한 점도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고민 고민하다가 송미경 작가를 1번으로 골랐다.

아마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송미경이라는 이름을 모두 들어봤을 것이다. 송미경은 2010년대에 많은 어린이 독자에게 선택을 받은 동화작가이다. 이야기가 매우 새롭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사실 독자에게 선택을 받는 동화라면 당연히 새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런데 송미경의 동화는 그런 동화들과 비교해도 매우 다른 지점이 있다.

갈등이 아닌 인물이 살아 숨쉬는 이야기
 
송미경 동화집 <어떤 아이가> 다섯 편의 단편 동화가 실렸다.
▲ 송미경 동화집 <어떤 아이가> 다섯 편의 단편 동화가 실렸다.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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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는 책은 송미경의 동화집 <어떤 아이가>이다. 다섯 편의 단편 동화를 엮었다. 송미경 작가는 장편동화도 여러 편 썼지만, 예비 작가들이 교과서로 삼는 훌륭한 단편 동화도 많이 썼다.

송미경 동화를 다른 작가의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캐릭터가 유독 눈에 띈다. 많은 동화가 등장인물 간의 갈등이나 그 갈등을 일으키는 사건의 흐름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갈 때, 송미경은 세상에 이런 캐릭터가 있을까 싶은 등장인물을 등장시킨다. 그들이 살아 숨 쉬는 이야기를 만든다.

그렇다고 송미경의 작품에 능력이 뛰어나다거나 외모가 튀는 아이가 나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어린이는 더더욱 아니다. 동화집 <어떤 아이가>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보면 특히 그렇다.

살 곳이 없어서 남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 사는 '어떤 아이가'의 주인공. 아기의 몸에 어른의 정신이 깃든 '어른동생'의 주인공. 몸이 없이 태어난 '없는 나'의 주인공. 애착 인형이 되어버린 '귀여웠던 로라는'의 주인공. 가방 속에 사는 아버지를 둔 '아버지 가방에서 나오신다'의 주인공. 이런 범상치 않은 캐릭터들은 그 아이들이 가진 결핍이나 상처를 은유한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단편 '어떤 아이가'에는 1년 넘게 어떤 집에 숨어 산 어떤 아이가 나온다. 직접 등장하는 것이 아닌 가족들에게 남긴 편지로 등장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 아이의 존재를 까맣게 모른다. 심지어 가족 행사에 참여하고 가족사진도 찍었는데도.
 
"이건 내가 처음 찍어 보는 가족사진이었어. 가족도 집도 없는 난, 늘 이렇게 남의 집에 몰래 숨어 살았거든."

(송미경 동화집 <어떤 아이가>에 수록된 단편 '어떤 아이가' 본문 중)
 
송미경은 어떤 인터뷰에서 "남의 집에 숨어 살던 사람이 몇 달 만에 발각되었다"는 뉴스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했다. 그 뉴스의 주인공은 들켰지만, '어떤 아이가'에 나오는 아이는 무사히 다른 집으로 숨어들어 간다.

송미경은 이 작품에서 집 없이 떠도는 아이들의 문제를 짚기도 했지만, 가족 간의 단절을 꼬집기도 했다. 그렇다고 작가가 직접 "이래야 합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하고 직접 외치지는 않는다. 다만 캐릭터 그 자체로, 등장인물 간 벌어지는 상황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 틀을 깨도 괜찮아

송미경의 동화는 이렇듯 현실인 듯 현실 아닌 판타지 세계를 그린다.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작가 '아서 클라크'는 "(판타지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다루지만 사람들은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판타지를 정의했다. 송미경은 이런 판타지에 현실 비판을 덧붙인다.

단편 '어른동생'에서는 다섯 살 먹은 동생이 사실 서른세 살의 영혼을, 서른세 살 먹은 삼촌이 사실 열세 살의 영혼을 가졌다는 설정이 나온다. 세상은 'ㅇㅇ답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아이는 아이답게, 노인은 노인답게, 혹은 여자답게, 머슴답게 등.

송미경은 '연령 기준'에 맞게, '젠더 기준'에 맞게 살라고 하는 세상의 기준을 비꼰다. 마치 책을 읽는 어린이 독자들에게 틀 밖의 것이 이상한 건 아니라고 다독이는 듯하다. 단편 '귀여웠던 로라'에서는 엄마의 기준 안에 머물러야 했던 아이의 갈등과 성장을 보여준다.

로라는 엄마가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의 모델이다. 인형처럼 생긴 열 살 여자아이인데 아직 유치원 사이즈의 옷을 입는다. 로라의 엄마는 신상품을 입은 딸의 사진을 찍지만, 로라의 눈을 쳐다보지는 않는다. 로라는 엄마를 계속 쳐다보지만, 엄마는 카메라만 쳐다볼 뿐이다.

이 작품에서 로라의 엄마는 로라보다는 쇼핑몰 운영에만 신경 쓴다. 이가 빠지면 사진이 예쁘게 나오지 않을까 봐 로라를 치과에 데려가지 않고, 살이 찔까 봐, 가루가 신상품에 떨어질까 봐, 로라에게 막대 사탕을 깨무는 시늉만 하라고 한다.

그런 로라는 토끼 인형 토순이를 너무 사랑한다. 너무 사랑했을까. 거울에 비친 로라는 토끼 인형이 되어 있었다. 토순이는 진짜 토끼가 되어 있었고. 진짜 토끼가 된 토순이는 토끼 인형이 된 로라에게 말을 건다.
 
"(숲으로) 같이 갈래? 아니면 그냥 여기 있든지. 거기 귀엽게 앉아서 거울을 보며 한겨울을 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고, 좀 귀찮겠지만 나와 함께 숲으로 가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야."

(송미경 동화집 <어떤 아이가>에 수록된
단편 '귀여웠던 로라는' 본문 중)
 
송미경은 어른의 틀 안에 아이를 머물게 하는 세태를 비판한다. 대신 아이들에게는 그 틀을 깨어버려도 괜찮다고 귀에다 속삭인다. 내가 만약 어린이가 되어 이런 송미경의 동화를 읽는다면 통쾌함이 더욱 커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몸이 없이 태어난 아이를 등장시킨 '없는 나', 가방 안에서만 사는 아버지와 아이와의 관계를 그린 '아버지 가방에서 나오신다', 이 두 단편도 아이들을 옥죄는 어른들의 시선과 이기심을 보여주면서 어린이 독자에게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자극을 준다.

이번에 송미경의 작품을 다시 읽어 보니 그 어떤 단어도 쉽게 쓴 게 없는 것 같다. 모든 명사나 동사 그리고 조사에도 그 역할과 의도가 있어 보였다. 그 덕분이었을까. 매일 바라보던 세상에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것이 많다고 알려준다. 두껍지 않은 어린이 책이지만 내게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도록 이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대호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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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후반전을 위해 하프타임을 보내는 50대 남자. 월간문학 등단 수필가이자 동화 공부 중인 작가. 그리고 여러 매체에 글을 연재 중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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