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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오후 서울 명동 의류매장 쇼윈도의 진열된 봄옷 앞으로 마스크를 쓴 시민과 관광객들이 오가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 명동 의류매장 쇼윈도의 진열된 봄옷 앞으로 마스크를 쓴 시민과 관광객들이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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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에서 방문을 꺼리는 듯합니다. 취재는 잠시 유예하고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른 아침이었다. 프리랜서로 에디터 일을 하는 내게 외주로 기사 작성을 의뢰한 잡지사에서 전화가 왔다. 지난 23일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대한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에 들어서자, 취재해야 하는 업체에서 외부인 방문을 꺼리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다음 주가 지나야 취재가 가능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했다. 

통화를 끝내고 30분 후, 이번에는 3월 초 참여하려던 북페어가 연기될 예정이라는 메일이 도착했다. 스케줄 앱을 켜 다시 퍼즐을 맞추듯 취재와 원고 일정을 정리했다. 

프리랜서의 비수기

일정을 재조정하는 수준으로 끝나는 나 같은 프리랜서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찾아온 프리랜서 비수기가 벌써 두 달째 이어지고 있다. 6개월 계약으로 모 국가 관광청 홍보 업무를 맡았던 프리랜서 지인 A는 코로나19가 점차 확산되자 결국 계약한 일이 무기한 연기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계약을 성사하기까지 A가 한 달을 넘게 공들인 프로젝트다. 지난해 말 최종으로 계약이 확정되자 내년 상반기 먹거리는 이걸로 해결됐다며 즐거워하던 A의 모습이 떠오른다.

또 다른 프리랜서 지인 C는 지난 1년간 집필한 책을 지난 1월 말 출간했다. 독자를 만나는 만큼 책이 팔린다는 게 요즘 출판계의 트렌드지만, C는 '코로나19 사태'로 북토크를 여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나마 일정이 확정됐던 북토크도 행사를 열기로 한 공간에 확진자가 다녀간 것이 알려져 무기한 연기됐다.

C뿐만 아니다. 최근 신간을 낸 작가들의 북토크 소식은 이전과 다르게 확연히 줄었다. 출판사에서 큰 예산을 들인 책은 출판 시기를 연기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큰 출판 마케팅 행사를 하기에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질병관리본부의 능동 감시와 방역, 적극적인 치료로 감염자 31명, 완치 1명으로 비교적 한국 정부는 바이러스에 잘 대응하고 있었다. 그러나 집단행동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진 한 종교단체에서 확진자가 나오자 사태가 급격히 전환됐다. 일주일 만에 감염자는 977명으로 증가했고, 사망자는 10명을 기록했다(2월 25일 오후 4시 기준).

감염자 31명일 때와 977명일 때의 사회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위생관리를 잘하는 등 예방 수칙대로 행동하면 걱정할 것 없다는 여론이 순식간에 뒤집혔다.

2차, 3차 감염자가 손 쓸 수 없이 확산되고 사실상 안전지대가 없는 상황에서 출퇴근과 같이 피할 수 없는 외출이 아니라면 부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가지 않았다. 쇼핑몰과 영화관이 텅텅 비었다. 겨울이 성수기인 분야를 제외하고 안 그래도 비수기인 겨울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자영업자들은 그야말로 울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순식간에... 상반기를 어떻게 버텨야 하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2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 제37회 베페 베이퍼페어 행사 취소 안내문이 붙어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2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 제37회 베페 베이퍼페어 행사 취소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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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재난 상황에 프리랜서의 먹거리도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자 예정된 행사와 공연, 강연 등이 무더기로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됐다. 프리랜서 강사, 통역사, 공연계 프리랜서 등 강연과 행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프리랜서들은 순식간에 일자리를 잃고 올 상반기를 어떻게 버텨야 하나 걱정하고 있다. 

홍보·광고 업계도 마찬가지다. 광고 촬영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있다. 큰 사회적인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홍보 업계는 적극적으로 프리랜서를 고용해 홍보 콘텐츠를 만들기보다 사태가 진정되기를 기다리는 분위기다. 

도서관, 미술관, 평생교육원 등 지자체와 국가에서 이용하는 시설도 줄줄이 임시 휴관을 선언했다. 평생교육원 강사, 프리랜서 큐레이터, 작가 등 관련 시설에서 강의나 기획으로 먹고사는 프리랜서는 원치 않는 무급 휴가를 받게 됐다. 그나마 은평구 평생교육원 등 공공기관에서 강연하는 프리랜서 강사에게는 기관 차원에서 보상을 고려 중이라는 소식이 있지만, 민간 기업과 계약해서 일하는 프리랜서는 별다른 보상을 기대할 곳이 없다. 

콘텐츠 업계 프리랜서들은 기업이나 기관의 외주 외에도 자체적인 콘텐츠 브랜드를 구축하고 워크숍, 강연, 세미나 등 모임을 통해 보조 수익을 올려 창작비에 보태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런 프리랜서 중 하나다. 프리랜서 매거진 <프리낫프리(Free, not free)>를 만들며, 느슨하게 연대하는 프리랜서 모임을 기획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네트워크와 소액의 수익금을 바탕으로 다시 매거진을 만드는 순환 구조를 만들었는데,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며 프리랜서 모임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프리랜서 모임을 하기 위해 지난 1월 강남의 크리에이터를 위한 공간 멤버십에 유료로 등록했지만, 행사는 기획 문서로만 남아있다. 혹시나 내가 기획한 행사가 코로나19를 전파하는 매개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4월 초 계획했던 팟캐스트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매거진 <딴짓>의 박초롱 편집장과 공동 진행) 구독자 모임 기획도 문서 단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관통하며 프리랜서의 고용 불안정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다가온다. 언제든 계약과 해지가 쉬운 프리랜서의 계약 구조는 재난 상황에서 썩은 동아줄조차 없이 끊어진 동아줄을 멍하니 쳐다보는 것밖에 할 수 없게 만든다.

악몽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범정부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범정부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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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변종 바이러스가 출몰할 때, 한국 직장인의 악몽이 사람 가득한 대중교통을 뚫고 매일 출근해야 하는 일이라면, 프리랜서의 악몽은 당장 밥줄이 끊어져 버리는 생계에 대한 위협이다. 지금 같은 때는 하루하루가 IMF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코로나19로 자영업자의 매출이 격감하자 정부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범정부 대책을 발표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경영안정자금 200억 원을 편성해 코로나19로 피해 입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7천만 원 한도 내 대출 기간 5년으로 융자 지원이 이뤄진다.

행정안전부는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업체에 취득세, 지방소득세, 주민세 등 각종 지방세의 신고·납부를 6개월 이내로 연장하고 징수 및 체납처분도 유예(6개월 이내)하고 있다. 이외에도 지역신용보증재단에서 지원하는 특례보증 프로그램과 법인세, 부가가치세 신고·납부기한 연장 등 대출, 보증, 세제 중심으로 자영업자 구제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자영업자 못지않게 생활에 타격을 입고 있는 프리랜서를 위한 구제책은 요원하다. 사회적 이슈로 계약이 파기된 프리랜서에게 생활을 보전할 수 있는 대출, 지원 제도는 거의 없다. (직장인에 한해) 코로나 의심 환자로 14일 이상 자가격리할 경우 유급휴가와 세대수에 따른 생활지원비를 지급하는 지원책도 있지만, 이는 격리를 할 경우에만 해당된다.

좋은 소식은 문체부에서 30억 원 규모의 긴급생활자금 융자를 예술활동증명이 된 예술인에게 제공한다는 것이다. 자영업자(중소벤처기업부)와 예술인(문화체육관광부), 직장인(고용노동부)에게 지원 대책이 마련되는 것을 보면 결국 정부 부처의 유무로 지원대책의 유무가 판별나는 모습이다. 

프리랜서는 (모든 프리랜서가 해당되지 않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굳이 사람이 가득한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할 필요가 없고, 누군가 허락하지 않아도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일하는 공간의 자유'라는 유일한 장점을 끌어안고 코로나19 사태를 관망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확진자가 300명을 돌파할 때쯤부터 나도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평소에는 카페를 선호한다).

다만, 자율적으로 선택해서 집에서 일하는 것과 바이러스 창궐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집에 가두고 일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감각을 가진다. 

재난이 와도 밥줄만은 끊기지 않기를
     
불안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자영업으로 스테이셔너리숍을 운영하며 글 쓰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지인 B는 올 상반기는 그냥 포기했다며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정된 일이 줄줄이 취소되자 프리랜서들은 평소보다 일감 영업에 열을 올린다. 동시에 SNS에는 연일 코로나19로 인해 행사는 취소되고 공간은 휴관한다는 소식이 올라온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될지 모르겠다. 다음 주를 기점으로 소강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예측이다. 노동자 지위에서 별다른 사회 안전망이 없는 프리랜서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견디는 것뿐이다.
  
공허하게 들릴 수 있지만, 프리랜서들이 모두 잘 견뎌주기를 바란다. 힘들어도 잘 자고 잘 먹어서 몸의 면역력을 기르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고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마음 근육을 기르고, 온라인으로 생존 확인을 하며 힘든 시기를 잘 보낼 연대의 온기를 느끼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줄줄이 밥줄이 끊기는 프리랜서에게 생활비라도 대출해주는 지원책이 나와주면 좋겠다. 회사원과 자영업의 중간에서 사용자이자 동시에 노동자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성실히 소득세를 납부하는 프리랜서에게 그 정도 지원은 해줄 수 있는 것 아닐까?
 
 전국이 흐리고 비가 내린 25일 오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 등을 위해 마스크를 쓴 한 시민이 우산을 쓰고 서울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고 있다.
 전국이 흐리고 비가 내린 25일 오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 등을 위해 마스크를 쓴 한 시민이 우산을 쓰고 서울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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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년차 프리랜서, 안전하며 유연한 노동을 꿈꾼다. 지면으로 만나는 느슨한 프리랜서 연대, 매거진 <프리낫프리 Free, not free>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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