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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냉장고를 털어서 냉동 떡국을 물에 불렸다가 떡국을 끓여서 점심을 먹습니다. 격리된 채 <세계대전 Z>를 읽고 있자니, 지금의 상황과 너무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요.
▲ 재택근무 기간의 점심시간입니다.  집의 냉장고를 털어서 냉동 떡국을 물에 불렸다가 떡국을 끓여서 점심을 먹습니다. 격리된 채 <세계대전 Z>를 읽고 있자니, 지금의 상황과 너무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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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고 있는 회사 숙소 아파트 주변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시작된 재택근무로 집에서 꼼짝도 못 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관련기사 : 강제 재택근무라니... 재난이 나의 일상으로 들어왔다 http://omn.kr/1mn2o). 하루에 채 3천보를 걷지 못하지만, 침대에서 잠을 깬 후,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고, 거실에서 운동하는 식의, 제한적이긴 하지만 '꽤나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자가 격리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답답함이 가중되지만, 지금의 상황을 돕는 길은 나 스스로가 '환자'가 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며 정부가 지시한 기준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퇴근 후의 여유로운 시간을 틈타 책꽂이의 책들 중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좀비 전문가' 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 Z>입니다. 예전에는 그저 좀비와의 세계대전을 벌인 인류의 승리 기록이라고 읽었었는데, 오늘은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은유로 다시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한창 잘나갈 때 이 지역은 인구가 3500만이 넘는 것이 자랑거리였다. 지금은 고작해야 5만 명 남짓이 산다. 정부가 재건 기금을 집중 투입할 곳으로 인구가 밀집된 연안 지역을 택하면서 이곳은 제때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잔해들을 치운 거리는 깨끗했고, 지역 '안보 평의회'가 모든 종류의 전후 소요를 미연에 방지했다. 평의회 의장은 (첫 번째 환자의 발발을 알리려 했으나 국가 안전부에 체포되어 공식적인 기소 과정 없이 투옥되었던) 의사 광진슈이다. - p.11

공교롭게도 정체불명의 '좀비 바이러스'가 발발한 것은 중국의 충칭이었습니다. 바이러스를 처음 발견한 의사는 중국 정부에 의해 강제로 투옥되고, 바이러스의 발발과 좀비의 출현은 은폐되었습니다. 하지만, 은폐로는 창궐한 바이러스를 막을 수 없었고, 금세 유럽을 관통해 수많은 나라들을 충격에 빠트렸지요. 결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집단 발병이 발생하면서 더 이상은 숨길 수 없게 되었을 때에야, 지도자들은 '아프리카 광견병'이라는 이름으로 혼란을 관리하려 하죠.

1단계 작전 상으로는 잘못된 게 없소. 하지만 알파 팀은 그야말로 미봉책이어야 했소. 그들의 임무는 그 위협 자체를 절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2단계 작전을 진행시킬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거였소

하지만 2단계 작전은 결코 완료되지 못했죠.
완료는 고사하고 시작조차 못했지. - p.85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은 최정예 알파팀을 투입하여 상황을 정리하고자 했으나, 파악되지 않은 적을 상대하기는 불가능했고, 결국 좀비와의 전쟁은 전 지구적으로 확대됩니다. 그런데,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아세요? 현실의 두려움을 이용하여 돈을 벌려는 세력들, 지금의 불안을 자기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사용하려는 정치인들, 그런 정치인이나 권력자들에게 기대어 힘을 차지하려는 사람들 등등, 너무나 많은 세력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결국 여기서도 가장 큰 피해자는 어떻게든 지금을 버텨 살아남으려는 힘없는 시민들이었습니다.

"두려움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고가의 상품이다. 두려움을 자극하면 팔린다." - p.89

뭐, 우리가 사람들에게 진실을 고백하는 게 나았다는 말을 하려는 거요? 그게 신종 광견병이 아니라 시체를 소생시키는 불가사의하고 초자연적인 역병이라는 말? 어떤 무서운 상황이 발생했을지 당신이 짐작이나 하시오? 시위와 폭동으로 사유재산이 파괴되면서 수십억 달러가 허공으로 사라지는데? - p.98


제약회사는 사회의 두려움을 이용하여 아주 쉽게 돈을 법니다. 여기서는 '팔랭스'라는 가짜 백신이 등장하죠. 두려움에 휩싸인 지도자들은 그들의 권력이 위협받을까 두려워서 너무 쉽게 백신을 승인하고 맙니다. 결국, 제대로 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권력자들이 보호하지 않은 '공익'은 막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전투를 점점 더 관리할 수 없는 상황으로 끌고 갑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인류가 선택한 '생존의 방식'은 무엇이었을까요? 상황이 극한으로 몰리고 인류 절멸의 상황이 도래하자, 국가 지도자들은 '레데커 플랜'이라는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돼요. 이것은 안타깝지만 '구해야 하는 사람들만 선별하여 구하자'라는 것이었습니다.

레데커는 모두 구하려고 하다가는 정부 자원이 한계에 이르러서 결국 모두 죽는다고 믿었소. 그는 그 상황을 이렇게 비유했지. 침몰하는 배에서 모든 사람을 보트에 태울 공간은 없다고 말이오. 레데커가 어느 정도였냐면 누구를 보트에 태워야 할지까지 계산해 놨소. 그는 사람들의 소득, 지능지수, 출산능력, 위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지대와 구제 대상자가 있는 곳까지 거리를 포함한 모든 '바람직한 특성'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었소.

"이 전투로 인한 첫 번째 희생자는 바로 우리 자신의 감상적인 생각으로, 이것을 제거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파멸하게 된다."
이것이 그의 제안서의 마지막 구절이었소. - p.174


레데커 플랜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간신히 성과를 보이자, 이후 독일이나 대한민국 등에서 유사한 방식으로 소수의 선별된 국민들을 구해내는 방법을 택하기도 하죠. 전 세계가 한꺼번에 공격 당하는 상황이었으니 다른 방법을 써볼 수도 없었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방식이 적용되었다니 허구의 이야기임에도 읽는 내내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막았어야 하는데,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어요.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였고, 전파 속도나 방식도 상상할 수 없었기에 저항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몰려드는 좀비들에 대항하여 그들을 절멸시키는 것만으로도 힘든 상황에서, 인류를 더 괴롭힌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잘못된 정보와 거짓말, 언론의 오보는 상황을 더 악화시켰습니다. 

무지가 우리의 적이었어요. 거짓말과 미신, 오보, 허위 정보가 적이었죠. 가끔은 정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무지가 수십억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무지가 좀비 전쟁을 일으켰어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고 있었다면 어땠을지 한 번 상상해 보세요. - p.311

사람들은 너무 많은 오해를 하고 있었어요. 어떻게 된 일인지 좀비에게 지능이 있다는 둥, 좀비들도 감정이 있고, 적응 능력이 있고, 도구와 심지어 인간의 무기까지 쓸 수 있다는 둥, 때로는 좀비도 일종의 애완동물처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훈련도 시킬 수 있다는 거였죠. 이런 오해를 하나하나 불식시키는데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죠. 민간인이 제작한 생존 가이드가 도움이 되긴 했지만 한계가 있었어요. - p.314


지금 우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는 재난 상황임에도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 언론, 지금의 상황을 그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정치세력들, 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신천지를 비롯한 다양한 이익집단들. 잠복기가 짧고 전파력이 강한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우리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한다 해도 쉽지 않을 텐데, 정부는 잘못된 정보와도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결과가 무엇일까요? 결국 우리의 안전이 위협받는 것이겠죠. 부디,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쓰게 하지 맙시다. 우리의 정부가 지키려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결국, 우리 국민이라는 게 너무 자명하잖아요?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까지 써낸 유명한 좀비 전문가인 저자이지만, 인류의 미래에 대해 절망적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에요. 처음에 바이러스가 발발한 충칭의 경우 인구 3500만이던 도시가 인구 5만으로 줄어들기는 했지만, 인류는 끝내 다시 평화를 찾아요. 살아남은 인류는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세상은 후대를 통해 이어집니다. 우리도 결국은 이겨낼 거예요. 앞으로, 이런 식의 수많은 전쟁을 치러내야 할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광진슈는 그날 마지막 왕진으로 일종의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꼬마를 보러 갔다. 아이 엄마는 결핵일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의사가 그냥 기침감기라고 안심시키자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아왔다. 그녀는 먼지투성이 길가까지 배웅하며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다.

아이들을 다시 보게 되니 마음이 놓여요. 내 말은 전쟁 후에 태어난 아이들, 좀비들이 있는 세상 말고 다른 세상은 모르는 아이들 말입니다. 이 아이들은 물가에서 놀아서는 안 되고 혼자 외출하거나 봄 또는 여름에 어두워진 후에 나가서는 안 된다는 걸 압니다. 이들은 두려움을 모르는데, 그것이 제일 큰 선물이자 우리가 아이들에게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선물입니다. - pp.519~520


바이러스와 힘겨운 싸움을 치르고 있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보면서, <세계대전 Z>의 다양한 장면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2월 27일 오늘 하루에만 확진자가 5백 명 가깝게 늘어나면서, 두려움이 더 커지는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희망을 갖고 충실하게 일상을 유지해 나간다면, 끝은 반드시 승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려면, 은폐하려는 것들을 세상에 드러내고, 우리는 정부의 행동지침에 따르면 됩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 - p.523

어! 자가 격리(재택근무)가 해제되었다는 안내 메시지가 왔네요. 나오지 말라고 할 때도 갑작스럽더니, 격리 해제도 느닷없네요. 어쨌든, 일주일 만에 밖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조심해서 지내야 하겠지만, 너무 두려워하지는 않아야겠어요. 우리는 반드시 이깁니다!

세계대전 Z

맥스 브룩스 지음, 박산호 옮김, 황금가지(2008)


태그:#오늘날의 책읽기, #세계대전 Z, #바이러스와의 전쟁, #언론의 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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