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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컴퓨터를 켰다. 해야 할 업무를 마저 하기 위해서이다. 장소는 교실이 아닌 우리 집 거실. 코로나19 감염병 예방을 위해 3월 2일부터 재택 근무를 시작했다.  

나는 4살, 6살 두 아이를 키우는 초등학교 교사 워킹맘이다. 나에게 '재택근무'는 '돌봄'과 '노동'의 결합을 의미한다. 아이가 엎지른 우유를 닦으면서 수업 계획을 짜고, 애들 낮잠을 재우는 틈틈이 변화된 학사 일정에 따른 업무 보완 대책을 구상한다. 돌봄과 노동. 할 수야 있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애들은 며칠째 바깥 활동을 거의 못 했다. 에너지가 차고 넘친다. 잉여 에너지는 죄다 집에 있는 보호자에게 쏟아진다. 세 끼 밥 먹이고, 빨래와 청소, 설거지를 한 후 컴퓨터를 할라치면 "엄마, 이리 와주세요", "엄마, 어부바 해주세요", "엄마, 책 읽어주세요" 한다. 체력은 부치고, 별 일 아닌데도 예민해졌다.

결국 낮에 버럭하고 밤에 미안해 하느니, 낮에 웃어주고 밤에 피곤하기로 했다. 늦은 밤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재택 야근을 시작한 것이다.

학생들은 학교에 못 왔다. 개학이 연기 됐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을 못 본 채, 선생님의 이름만 문자로 알 수 있었다. 3월인데도 아이들이 학교에 없는 건 처음이었다. 심지어 앞으로 몇 번 더 개학이 연기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으니 불안했다.
 
 3월 2일, 아이들은 학교에 오지 못 했다.
 3월 2일, 아이들은 학교에 오지 못 했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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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간의 육아휴직을 마친 후 복직하는 날. 나는 재택 야근을 했고, 우리 집 두 아이들은 울지 않을 정도로만 외출을 했으며, 학교에는 학생들이 없었다. 이게 다 코로나19 때문이다. 하버드대 마크 립시치 교수가 1년 내 전세계 인구의 40~70%가 감염될 것이라 내다볼 만큼 강한 전파력을 가진 바로 그 코로나19 말이다. 

1월 말, 복직 전 연수를 받을 때만 해도 개학이 연기될 줄 몰랐다. 2월 초, 전 교직원이 모여 교육과정 함께 짜기 주간을 가질 때까지도 전혀 예상 못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국민에게 코로나19란 호흡기 증상이 있으면 마스크를 하고, 2주 이내 코로나19 오염 지역을 다녀온 사람들만 자가격리 하는 정도의 전염병이었다.

70만 명(추정치)이 감염되었던 2009년 신종플루 때에도, 2015년 메르스 사태에도 전국적인 휴교령은 없었다. 과거 사례에 비춰, 코로나19를 막연히 두려워하기보다 2020학년도 교육과정을 준비하는 게 맞다 생각했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2월 18일, 31번째 확진자가 나타난 것이다. 해외여행력 없이 감염경로가 모호한 환자였다. 그 후, 확진자 수는 세 자리 수를 넘어 네 자리 수로 집계되기 시작했다. 신종플루나 메르스와 비교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신종플루처럼 치료제도 없고, 메르스보다 전파력이 강했다. 오직 마스크 쓰기와 '거리두기'가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결국 3월 2일, 개학은 1주일에서 2주로, 3주간 연기됐다. 아이들은 집 현관문 밖을 나가기 어려워졌고, 그 누구도 교실 책상에 앉을 수 없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바로 내가 하던 일이었다
 
 3월 2일인데 아이들이 없다니, 가슴이 쿵 내려 앉으며 어색하고 불안하다.
 3월 2일인데 아이들이 없다니, 가슴이 쿵 내려 앉으며 어색하고 불안하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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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불안했다.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도, 나이 든 부모님을 둔 자식들도, 당장 마스크를 못 구한 사람들도, 텅 빈 상가에 씁쓸해 하는 시민들도 코로나19와 싸우는 방법을 몰랐다.

물론 뉴스는 넘쳐났다. 그럼에도 질병관리본부의 행동지침 외에, 일반 시민이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갖춰야 할 태도가 적어도 맹목적인 '두려움'과 특정 단체나 국가에 대한 '혐오'는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뉴스로는 불안을 해소할 수 없었다. 대신 소설을 집어 들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였다. 이 소설 속에는 치명적인 전염병 앞에 신의 구원 말고 단지 사람들의 건강만을 바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 무신론적 성자이자 과학적 개인인 의사 '리유'다.
 
리유(의사):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랑베르(신문기자): "성실성이 대체 뭐지요?"
리유: "일반적인 면에서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로 말하면, 그것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페스트> 중, 알베르 카뮈 지음, 민음사

뉴스에는 없던 것, 드디어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았다. 바로 내가 하던 일들을 하는 것이다. 코로나19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었다. 경직됐던 일상을 풀기 시작했다. 잘 먹고, 잘 쉬고, 틈틈이 몸을 움직였다. 바닥을 깨끗이 쓸고 닦았으며, 매일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었다. 아이들 손과 발을 비누로 자주 씻어 줬다.

냉장고도 채웠다. 마트에 자주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균자일 수도 있고, 이웃이 보균자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웃이 나를 만나지 못하도록, 나는 이웃을 스치지 못하도록, 사람을 피해다니는 중이다.

다음으로 마스크를 구했다. 매번 마스크를 구하는데 실패해 6장 남은 일회용 마스크와 면마스크로 버티고 있던 중이었다. 3월 1일, 마스크 대책이 발표된 후, 그나마 인터넷에서도 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비쌌다. 여전히 한 장에 3천~4천원이었다. 그래도 사야 했다. 비상금을 털었다. 인터넷 쇼핑을 어려워하시는 양가 부모님들께 보내드리고, 우리집 네 식구 것도 샀다.

냉장고를 채우는 일, 그리고 비싼 마스크를 사는 일에는 모두 돈이 들었다. 한 달 45만 원이던 식비 예산은 55만 원이 됐다. 양가 부모님과 우리집 네 식구의 열흘치 마스크 80매를 사는 데에는 30만6900원이 들었다. 사태가 길어질수록 앞으로 더 많은 돈을 써야 할 것이다.
 
 1월 28일에 약국에서 샀던 마스크. 미세먼지 차단 기능은 없지만 8매에 2천원이었다. 장당 250원. 3월 1일, 인터넷에서 80매를 사는 데 30만원 넘게 들었다. 장당 3750원.
 1월 28일에 약국에서 샀던 마스크. 미세먼지 차단 기능은 없지만 8매에 2천원이었다. 장당 250원. 3월 1일, 인터넷에서 80매를 사는 데 30만원 넘게 들었다. 장당 3750원.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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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많이 들긴 했지만, 우리집 살림은 휘청이지 않았다. 적금을 깨면 됐다. 2년 육아휴직 하면서 소득이 반으로 숭덩 줄었지만, 저축을 했던 덕이다. 외식 대신 집밥 먹었고, 예쁜 옷을 사는 대신 가진 옷을 오래 입었으며, 키즈카페나 장난감 대신 공원과 도서관을 오갔다. 그때 모은 돈으로 냉장고도 채울 수 있고 마스크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취약 계층은 사정이 다르다. 취약 계층에게 절약이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매달 돈을 적게 써도 남는 돈이 거의 없거나, 심지어 곧잘 부족하다. 결국 그들은 바깥 상황이 조금만 거칠어져도 삶이 뿌리부터 휘청대며 흔들린다. 밥도, 공부도, 위생도, 모두 위태롭다. 모두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돈이 없어 못 한다.

그래서 기부했다. 작지만 30만 원을 보탰다. 기부를 하게 된 계기도 소설 <페스트> 덕분이었다. 페스트 속 주인공들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자발적인 봉사단을 꾸린다. 그런데도 칭찬 받을 일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페스트나 코로나19와 싸우려면 누구나 해야 할 필연적인 일이었다.
 
문제는 오로지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죽는다든가 결정적인 이별을 겪는 것을 막아 주자는 데에 있었다. 그러려면 유일한 방법은 페스트와 싸우는 것이었다. 그 진리는 칭찬을 받을 만한 것은 못 되고 다만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 <페스트> 중, 알베르 카뮈 지음
 
 기부했습니다. 작지만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기부했습니다. 작지만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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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둔 엄마가 바라는건 특정 국가나 특정 단체를 일관되게 탓하고 혐오하는 프레임이 아니다. 그저 우리들의 건강이다. 다른 무엇보다 사람들의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불필요한 혐오와 불안 말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하는 나날을 이어가자.

아이를 돌보는 부모로서 씻기고, 청소하고, 빨래하며, 냉장고를 채우는 일. 부모를 둔 자식으로서 마스크를 구해다 드리는 일. 시민으로서 질병관리본부 행동수칙을 지키고, 여유가 된다면 기부하는 일.

즉, 내가 맡은 바를 매일매일 해내는 게 코로나19를 상대로 포기하지 않고 싸울 수 있는 방법이었다. 시민의 성실성. 이거야말로 건강한 아이들이 터질 듯한 에너지를 분출하며 교실로 뛰어들어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일 것이다.
 
 모든 교실 문에 감염병 예방 수칙이 붙었다. 이 또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해보는 것 중에 하나였다.
 모든 교실 문에 감염병 예방 수칙이 붙었다. 이 또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해보는 것 중에 하나였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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