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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내게 골칫덩어리였다. 대학 시절 예술 교양 수업을 들을 때면 머리가 아파졌다. 클로드 모네의 인상주의, 게오르게 그로스의 다다이즘,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등등. 어려운 용어들은 진입 장벽을 만들어 나를 막아섰다. 그뿐이랴. 작품들은 난해함을 넘어 기이하게 다가왔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 그랬다.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물감칠한 것 같은데, 희대의 거작이라니. 나름의 이유는 공부했으나, 마음 깊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예술은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가? 예술이 치열한 사회 현실에 그 어떤 해답을 줄 수 있을까? 난해한 작품을 공부할 땐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예술 수업>의 저자 오종우 교수는 이런 내 의문에 답을 제시한다.

예술은 사회가 규정한 시스템과 규범을, 전복적으로 사유할 힘을 길러준다. 쉽게 말하면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준다. 이 책은 언어, 소설, 음악, 영화, 미술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넘나들며 예술이 가진 '전복적 힘'을 소개한다.
 
 예술 수업
 예술 수업
ⓒ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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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비판 없이 살게 하는 규범은 공기와 같다. 너무 당연하게 여겨서, 규범을 넘어선 다른 상상을 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언어다. '봄'이란 단어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보편적으로 벚꽃, 설렘 같은 걸 떠올린다.

그렇다면 한자어 봄(春)은 어떠한가. 하나의 그림이라 생각해보자. 해(日)를 뚫고 하나의 새싹이 솟아오르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영어 봄(spring)도 마찬가지다. 용수철(spring)이 모진 겨울을 뚫고 '팅' 하고 튀어 오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다른 언어로 치환했을 뿐인데, 우린 봄에 대해 더 풍부한 상상을 할 수 있다.

그림화한 언어가 다른 생각을 하게 했듯, 예술은 다른 상상을 하게 하는 촉매제다. 온갖 관점이 뒤엉킨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들이 그 사례다. 피카소는 하나의 시점이 아닌 다양한 시점을 그림에 녹였다.

'나'의 시선이 아닌, '여러' 사람의 시선을 투영한 것이다. 나만의 시선에 갇히지 않아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저자는 "예술작품을 통해 새롭게 보고, 새롭게 듣고, 새롭게 느끼며, 새롭게 이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림에 피카소가 있다면, 소설엔 안톤 체호프가 있다. 체호프는 상상을 자극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체호프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에서 내리는 눈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눈을 보면 그들만의 의미를 규정한다.

연인에겐 낭만, 아이에겐 행복, 군인에겐 지옥이다. 하지만 눈을 무언가로 틀 짓는 순간, 상상의 공간이 사라진다. 내리는 눈에 특정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야, 자유로이 생각할 수 있다. 비평가 버지니아 울프가 "체호프를 읽으면 자유의 놀라운 의미를 알게 된다"고 말한 이유다.

예술은 기존 규범을 파괴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음악엔 '조성'을 정하고 이에 따라 작곡해야 한다는 상식이 있었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이를 파괴한다. 조성은 조화를 지향한다. 하지만 세상은 조화 없는 카오스다.

나치의 광기를 목격한 유대인 쇤베르크의 눈엔 특히 더 그랬다. 그러한데 어찌 조성음악만 추구하겠는가. 결국 그는 조성의 틀에서 벗어난, 무조음악을 탄생시켰다. 무조음악과 조성음악이 뒤섞인 <바르샤바의 생존자>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 음악으로 쇤베르크는 인간의 광기와 폭력을 고발한다.

때론 예술이 기성관념에 도발적으로 저항했다. 기성관념은 새로운 생각을 방해하지 않던가. 마르셀 뒤샹의 혁명적 작품 <샘>이 대표적이다. 뒤샹은 거리에서 구한 변기를 전시회에 출품한다. 이는 예술은 마땅히 '창작'되어야 한다는 관념을 뒤흔든 행위였다. 창작되지 않은 변기, 즉 '기성품'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기성품을 활용해 기성 예술에 도전한 창조적 작품이었다.

이 글로 소개한 전복적 힘을 가진 예술 작품은 극히 일부분이다. 책에는 고대인의 동굴 벽화, 음악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등 상상력을 자극하는 사례들이 풍부히 제시돼 있다. 그 사례들을 따라가다 보면, "예술작품을 대하면서 길러진 해석능력, 그리고 창의성과 상상력은 남아 세상을 읽어내는 시야가 넓어"진다는 저자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내게 여전히 의문인 부분이 있다. 예술이 사회적 연대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냐는 점이다. 예술은 비판적 사고를 하게 만들고, 주체적 삶을 이끈다는 점에서 개인에겐 효과적이다. 그러나 거대한 사회를 바꾸려면, 개인들이 뭉쳐 연대해야 한다. 혼자서 불합리한 사회를 바꾸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 질문엔 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 수업>은 예술을 매개로 새로운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예술에 관심 있는 자라면, 일독할 가치가 충분하다. 

예술 수업 - 천재들의 빛나는 사유와 감각을 만나는 인문학자의 강의실

오종우 지음, 어크로스(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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