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다큐멘터리 <시리즈 M - 더 디제이>의 한 부분,

MBC 다큐멘터리 <시리즈 M - 더 디제이>의 한 부분, ⓒ MBC


라디오 스타가 비디오에서 밀려났다는 말이 나온 지도 벌써 40년째이다. 지난 1979년, 더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가 발매될 때 나온 말인데,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라디오는 비디오에 밀려 사장된 '옛날 매체'가 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닌 것 같다.

MBC FM4U의 라디오 프로그램이자, 국내 최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인 <배철수의 음악캠프> 30주년을 조망하며 지난달 26일과 2일 MBC의 다큐멘터리 <시리즈M - 더 디제이>가 방영되었다. 누군가는 '비디오에 밀린다던' 라디오 스타를 오히려 두 주에 걸쳐 비디오가 다시 헌정하게 된 셈이다.

"처음에는 탈주범이었는데..."

다들 '6개월이나 갈지, 1년은 갈지' 내기를 했다던 배철수의 두 번째 라디오 프로그램인 '배캠'. 냉소 속에 시작되었던,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뉴 키즈 온 더 블록을 두고 청취자와 싸우기까지 했던 '이단아 프로그램'이 어쩌다 30주년을 하게 되었을까. <더 디제이>는 DJ 배철수의 출근부터 방송까지를 한껏 잡는다. 

1980년에, 같은 시간대 라디오를 했다가 6개월 만에 잘리기까지 했던 그가 다시 라디오 부스에 앉아 30년의 세월을 보냈다. 내레이션을 맡은 윤도현의 말대로 "청취율 1등을 한 번도 못한 프로그램"은 어떻게 30년을 지나올 수 있었을까.  

가장 먼저 이야기가 나온 것은 그의 태도였다. 매일 방송국으로 출근해 점심을 먹고, 4시 전에는 라디오 부스로 도착하는 삶이었다. 배캠 초창기를 함께한 조정선 PD도 "6시부터 방송하니까 5시 50분까지 가면 돼, 이게 아니에요. 4시까지는 방송국에 꼭 가야 하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MBC 다큐멘터리 <시리즈 M - 더 디제이>의 한 부분,

MBC 다큐멘터리 <시리즈 M - 더 디제이>의 한 부분, ⓒ MBC

 
30년 전 '배캠'의 1호 PD이자, 배철수 DJ의 아내가 된 박혜영 MBC나눔 대표이사도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박혜영 PD는 "잘 될 줄은 몰랐다"면서도, "본인이 들어오면서도 '너무 하고 싶었다'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오디션 테이프를 만들던 날 아침에 돌아가신 아버지 사진에 '저 좀 되게 해주세요' 하면서 나왔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랬던 덕분에 그만의 뚝심이 오히려 매력으로 발휘되고, 청취자와 언쟁도 벌여가며 만든 30년이 된 것이다. '배캠 멤버'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최장수 게스트, 임진모 음악평론가의 평이 가장 압권이다.

"사람들이 주변에서 다 이야기하네요. 멋있게 늙어간다고. 처음에는 탈주범이었는데, 차츰차츰 환골탈태하는 거예요. 솔직히 배철수 20대, 30대보다 50대 60대가 더 나아. 이렇게 놀라운 개량은 없어."

손으로 대본 쓰고, '녹방'도 노래 다 듣는 방송

그런 맥락에서 우직한 방송이라는 점도 부각되었다. 녹음방송일 때도 음악 파일을 따고, 멘트를 따로 빼는 대신 음악을 100%, 심지어는 광고까지 들으며 2시간을 채웠다. 모든 음악이 파일로 들어간 현재도 CD로 음악을 고른다. '배캠' 배순탁 음악작가도 "(MBC 도서관에서) CD 빌려 가는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 말했다.

배철수 DJ는 그 이유로 "자기가 음악을 안 들으면, 그 뒤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자기도 안 듣는 음악을 청취자들에게 들으라 그러면 안 되지"라며, "옛날 사람이라고도 얘기해도, 고리타분하다고, 21세기에 안 맞는다면 할 수 없지만, 그게 음악 프로그램의 기본 아닙니까?"라며 반문했다.
 
 MBC 다큐멘터리 <시리즈 M - 더 디제이>의 한 부분,

MBC 다큐멘터리 <시리즈 M - 더 디제이>의 한 부분, ⓒ MBC

 
오프닝과 매일 코너의 대본 역시 손에서 나온다. 30년 동안 함께한 김경옥 작가가 만년필로 오프닝을 쓴다. 런던 현지에서도 만년필로 대본을 쓴 그는 "힘든 상황일 때 어떤 사람들은 힘내라면서 위로하는데, 배철수 DJ는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함께 가자'고 한다. 그 말이 참 고마웠다."고 했다. 

조정선 PD는 "땅에 발을 딛고 살아라", "가로로 살아라"라는 '배철수 어록'을 소개하기도 했다. 인기 때문에 들뜨지 말고, 반짝 스타가 되어서 잠깐 반짝이는 대신 길고 오래가라는 것을 의미하는 두 마디. 박혜영 PD마저도 "고집을 꺾지 않는다"던 그의 이런 뚝심이 한 라디오를 30년 동안 진행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언제나 한결같은 소나무같은 방송

'배캠'은 방송이 언제나 피할 수만은 없는 시사 문제를 비틀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 당시, 마지막 선곡으로 그는 "종교가 없지만 간절히 빈다"며 유미르 데오다토의 '아베 마리아'를 선곡했다. 지금 '배캠'의 PD인 남태정 PD는 "구체적인 설명보다 음악과 말 한마디가 울컥하게 했다"고 그때를 되돌아봤다.

그런 음악캠프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벌어진 여러 사건사고와 국가위기 등, 한국의 가장 부끄러운 시기도 넘어야만 했다. 그럴 때도 배철수 DJ는 누군가를 훈계하거나 나무라는 대신 자칫 들으면 무뚝뚝한 말투와 음악으로 위로했다. 배철수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 주제에 사회를 위로할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고, 대중에게 메시지를 던지거나 교훈을 주자는 생각도 없었다. 청취자들은 온종일 힘들었다. 힘들고 뉴스도 넘쳐나는데 나까지 여기서 뉴스를 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프로그램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조그마한 위로라도 얻었으면 했다."
 
 MBC 다큐멘터리 <시리즈 M - 더 디제이>의 한 부분,

MBC 다큐멘터리 <시리즈 M - 더 디제이>의 한 부분, ⓒ MBC

 
배캠 청취자들의 이야기도 방송에 탔다. "배캠을 듣기 위해 일을 한다"는 이야기부터 "배캠이 없으면 MBC 라디오도 듣지 않겠다"는 작은 섬 서점 주인의 말도. 그리고 "시그널 음악이 응원가처럼 들린다"는 청취자의 이야기까지. 벽 너머 청취자들의 이야기에 디스크자키는 눈시울을 붉혔다.

<더 디제이>는 매일 6시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Satisfaction'으로 하루를 응원받는 청취자들이 부스 안에서의 '배캠'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어찌 보면 배철수라는 한 사람을 넘어, 라디오라는 매체가 갖고 있는 '한결같음'이라는 매력을 보여준 게 아닐까. 

<더 디제이>에는 라디오를 듣는 이에게 공감될 내용이 많았다. 그리고 '배캠'의 애청자라면 구절마다 절로 머리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프로그램이 내일 끝나더라도 오늘까지는 재미있게, 즐겁게, 그렇게 방송 진행하도록 하겠다"며 웃던 배철수 DJ의 모습이 끝까지 여운으로 남던 2시간의 다큐멘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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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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