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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동유럽 끝자락, 코카서스 산맥과 흑해에 둘러싸인 조지아(Georgia)란 곳에 체류 중입니다. 구 소련연방 시절 그루지야라 불린 곳으로 현재 공식적으로 '조지아'라 불립니다. 미국 조지아 주 명과 발음이 같아 코로나 사태를 맞아 미국이라 오해한 분들이 안부를 물어오십니다. "저는 코카서스 조지아에서 건강합니다." -기자말
 
대한민국과 조지아 국기 : 조지아 트빌리시 분관
 대한민국과 조지아 국기 : 조지아 트빌리시 분관
ⓒ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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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와 냉대 사이에서

2020년 1월 중순 조지아에 도착한 이래 한국인에서 왔다는 이유로 늘 어깨가 으쓱했던 저였습니다. 입국을 위해 카자흐스탄 경유할 때 '신참' 입국심사관이 "너흰 비자 없이 조지아 갈 수 있느냐"고 화들짝 놀랄 때부터 예상했습니다. 실제 한국은 170개국에 여행할 수 있는 세계여권파워(Global Passport Power) 공동 3위에 속합니다.

한 동료는 제게 '딸이 BTS 광팬인데 말 잘 들으면 저녁식사 초대를 약속해도 되냐'고 물어옵니다. 수준 높은 하이엔드 제품을 생산하는 삼성, LG, 현대-기아 보유국 한국은 특히 제조업이 미비한 조지아에겐 선망의 대상입니다. 소위 '국뽕'의 화룡정점은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휩쓸 때였습니다. 해외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데, 조지아에서의 한 달은 허니문처럼 달콤했습니다.

중국 춘절 전후로 기억합니다. 이토록 자랑스러운 코리아(Korea)는 코로나19의 한 방에 코로나(Corona)로 조롱받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을 강타한 코로나 관련 자극적인 영상이 온라인상에 나돌면서 세계 각국의 동양인 혐오가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조지아 여행자 그룹톡에선 인종차별 당했다는 글이 하루에도 수차례 올라왔습니다.

2015년 메르스(MERS) 사태 당시 중동인에게 드러낸 불안감과 차별이 부메랑이 되어 2020년 동양인에 돌아온 것일까요? 설상가상으로 국가 비상사태인 북미, 유럽, 호주, 영국 등지에서 동양인에 대한 묻지마 폭행까지 발생했습니다. 최근 BBC 방송 인터뷰에서 강경화 장관은 발언을 마무리하며 '동양인에 대한 욕설과 물리적 공격을 멈춰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 정도로 상황이 녹록치 않습니다.
 
BBC 방송 홈페이지 캡쳐
 BBC 방송 홈페이지 캡쳐
ⓒ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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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기까지

2019년 12월 31일, 중국 우한에서 집단 폐렴 의심 증상이 첫 보고되고 1월 23일 도시 전체 봉쇄가 이뤄졌습니다. 인구 천만의 국제도시 우한에서 발병한 코로나는 감염률까지 높다보니 조지아 정부는 1월 29일을 기점으로 중국발 항공기를 차단합니다. 동시에 동양인, 특히 중국ㆍ한국 입국자를 대상으로 진단ㆍ역학조사를 수행했는데, 현재까지 결과는 모두 음성이었습니다.

서양에 '여섯 다리만 건너면 지구 사람 모두 아는 이들'(Six Degrees of Separation)이란 사회적 통념이 있습니다. 그만큼 현 인류는 시공간을 초월한 세계화 시대 속에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조지아 정부가 2월 26일 공개한 첫 감염사례는 이란에서 아제르바이잔을 경유한 자국인이었습니다. 그 뒤 28일 이탈리아를 다녀온 자국 여성이 두 번째 확진자였습니다. 당국이 중국발 입국 금지를 선포한 1월 말, 코로나는 어쩌면 이미 전세계 대유행(pandemic) 국면이었을지 모릅니다.
 
조지아 농업환경부 부지 건물 내 방역작업 현장
 조지아 농업환경부 부지 건물 내 방역작업 현장
ⓒ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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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진자가 계속 나타나는 가운데 3월 11일, 조지아 환경농업부 차관이 본인 아들로부터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소식이 공개됐습니다. 현지 고위직 공무원이 격리되자 선제적 대응이 본격화되면서 유엔 등의 국제기구가 제일 먼저 자택근무에 돌입합니다.

그리고 3월 21일, 정부는 대통령령 국가비상사태(State of Emergency)를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주요기반 시설(마트, 은행, 주유소 등)을 제외한 모든 시설의 폐쇄와 전 지역 10명 이상 모임 및 도시 간 이동 금지 등이 골자였습니다. 행정명령 위반 시 일반 노동자 한 달 평균 임금($300)을 웃도는 1500라리(Gel) 벌금형이 부과되고, 재범 시 3년 징역형에 처하게 됩니다.

조지아는 2월 첫 감염사례 공개부터 한 달이 지난 3월 27일 기준으로 83명이 감염됐고, 247명이 입원 중이며 4505명이 자가격리 중입니다. 조지아는 이웃 간 친밀한 공동체적 삶이 존재하는 인구 400만 명의 작은 국가이기에 꾸준히 나타나는 감염사례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가가호호 테라스식으로 연결된 조지아 올드타운 가옥
 가가호호 테라스식으로 연결된 조지아 올드타운 가옥
ⓒ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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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경제적 여파와 사회 혼돈

천만 국제도시 중국 우한에서의 확산과 코로나19의 독특한 무증상 사례 등으로 초기진압이 늦어진 상황에서 해결책은 사실상 하나였다고 봅니다. 생명 수호를 위한 일시적 자유 제한, 즉 행정명령에 따른 철저한 개별 봉쇄입니다. 조지아 국가비상사태 선언 배경엔 정부 권고를 아랑곳 않고 외출하던 '지정' 자가격리자들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는 성숙한 시민의식 측정의 테스트 베드가 됐습니다. 누적 사망자 1만여 명을 넘어선 이탈리아에선 전국 봉쇄령에도 버젓이 야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포착됐습니다. 시장, 도지사들이 시민들에게 욕을 하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신천지임을 끝내 숨기다 파견 의료진 전체에게 위험을 노출시킨 공무원 사례가 있었죠. 인류는 1의 일탈이 99에 위협이 될 수 있단 사실을 매 맞아가며 배우는 중입니다. 전염병 사태에서만큼은 흑백논리가 적용돼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지아 국가비상사태 이후 마트 입장 제한 인원 상황(10명 이내)
 조지아 국가비상사태 이후 마트 입장 제한 인원 상황(10명 이내)
ⓒ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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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각 국이 개별 봉쇄 수준까지 가드를 올린만큼 전문가들은 (적어도 유럽의 경우) 돌아오는 주(week)를 정점으로 감소하리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합니다. 최근 코로나 위기를 한국에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투명한 정보와 대중협력 측면에서) 저명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 사태 전후로 세계가 '여러 의미에서'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 예견했습니다. 국제 신용평가서 무디스는 3월 26일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주요 20개국(G20)이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며 상반기 전례 없는 충격을 경험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선진국도 그러한데 조지아 같은 중ㆍ저소득 국가엔 전운이 맴돕니다. 미국이 최근 발표한 개인당 $1200(+알파) 지급 방안은 언감생심입니다. 하루 벌어 먹고 사는 빈곤선 가정이 일정 비율 남아있어 국제기구 개발원조가 여전히 이뤄지는 이 코카서스 땅에서 상업 활동 중단은 뼈아픈 선택입니다. 이미 몇몇 회사가 폐업했고 실업자가 발생했습니다. 현지 달러 환율은 2.7에서 3.48까지 치솟았습니다.

코로나 극복을 위한 국제 연대

현 사태를 잠재우기 위한 국제 연대는 필수적입니다. 세계보건기구 말마따나 코로나 역유입도 간과해선 안 될 문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속한 선별검사를 가능케 하는 한국의 코로나19 진단키트 해외수출 및 지원은 고무적입니다. 조지아에도 20만 개의 한국산 키트가 전달됐습니다.

무엇보다 세계에서 가장 투명하다고 호평받은 국내 코로나 누적 데이터와 전면적 국경 차단 없이 대응한 한국식 방역은 (잘 마무리될 경우) 향후 다른 팬데믹 상황 시 경제악화와 재난방지를 최소화하는 지속가능한 방역모델의 시초가 될 수 있습니다.

대구 신천지 집단감염 사태로 세계 2위 감염국 오명을 쓰던 한국이 이젠 코로나 구원 투수로 불립니다. 혹자는 한국 없인 세계가 무너질 것 같답니다. 하지만 국내 하루 확진자 수가 100여 명 선으로 이어지면서, 내부에선 혈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막 본 게임에 들어간 조지아에 비해 한국은 2개월간 지속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피로도가 극심합니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대한예방의학회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대책위원장)는 "2주만 완벽하게 하면 되는데 안 되니까 자꾸 길어진다"고 모 인터뷰에서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조만간 4월 6일 개학 여부도 결정해야 합니다. 코로나 종식을 위한 정부의 현명한 정책과 성숙한 시민행동이 절실한 때입니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 마무리 투수를 기다리는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 주세요. 지금껏 대한민국이 그래왔던 것처럼.

[참고 기사]
1. [코로나19 두 달] "올해 안 끝날 듯... 4월 6일 개학 어려울 거다"
2. "바이러스에겐 인간이 블루오션… 매년 전염병 올 수 있다"
3. Georgia to receive 200,000 rapid tests from S. Korea to diagnose COVID-19 

태그:#조지아, #그루지아, #그루지야, #트빌리시,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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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프리랜서 기자/에세이스트 前) 유엔 FAO 조지아사무소 / 농촌진흥청 KOPIA 볼리비아 / 환경재단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 유엔 사막화방지협약 태국 / (졸)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 (졸)경상국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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