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충암고를 졸업하고 LG 트윈스에 입단한 유망주 투수 신윤호는 7년 동안 단 2승에 그치다가 2001년 15승 6패 18세이브 평균자책점 3.12의 성적으로 다승, 승률, 세이브 1위를 휩쓸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하지만 많은 야구팬들을 감동시킨 늦깎이 스타는 더 많은 성공 스토리를 만들지 못했다. 2001년 골든글러브 수상자 신윤호는 이후 13년 동안 단 11승을 추가하는 데 그치면서 2014년 통산 28승의 초라한 성적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이처럼 KBO리그에서는 프로에 갓 입단한 신인이나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무명 생활을 하던 선수의 잠재력이 갑자기 폭발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신윤호의 경우처럼 '몬스터 시즌'의 상승세를 잇지 못하고 다시 부진하던 무명 시절로 돌아가는 선수도 적지 않다. 따라서 많은 야구 팬들은 '최소 3년 정도 꾸준한 성적을 유지해야만 그 선수의 진짜 실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작년 시즌 KIA 타이거즈는 외국인 투수와 4, 5선발의 부진 속에서도 뛰어난 불펜 투수를 3명이나 발굴했다. 무명 투수에서 일약 국가대표로 도약한 마무리 문경찬과 군 전역 후 엄청난 발전을 보인 잠수함 박준표, 그리고 작년 깜짝 활약으로 신인왕 후보가 된 전상현이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들은 작년 시즌을 제외하면 프로에서의 실적이 턱 없이 부족하다. KIA의 필승조 3인방에게 2020 시즌 활약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선동열급' 활약 문경찬, 풀타임 마무리로 구원왕 경쟁
 
 2경기 연속 블론 세이브를 기록한 KIA 마무리 문경찬

KIA 마무리 문경찬 ⓒ KIA 타이거즈

 
2015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2라운드(전체 22순위)로 KIA에 입단한 문경찬은 프로 데뷔전에서 선발승을 따냈을 만큼 선발 투수로 기대를 모았던 유망주였다. 문경찬은 루키시즌 4번의 불펜 등판이 있었지만 그 중 세 번이나 2이닝 이상을 소화했을 정도로 짧은 이닝을 책임지는 불펜 투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문경찬은 상무 입단 후에도 주로 선발 투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문경찬은 전역 첫 시즌이었던 2018년 1군에서 불펜으로만 32경기에 등판하며 전문 불펜 투수로 변신했다. 승리 없이 3패만 기록했지만 타고투저 시즌이었음에도 4.7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물론 당시만 해도 입대 전 긴 이닝을 소화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준 문경찬이 선발 투수로 성장하길 기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KIA 마운드에서 '선발투수 문경찬'은 상상하기 힘들어졌다.

작년에도 롱릴리프로 시즌을 시작했던 문경찬은 마무리를 맡았던 김윤동이 어깨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마무리 자리를 물려 받았다. 그리고 문경찬은 마무리를 맡은 후 43경기에 등판해 1승 2패 24세이브 ERA 1.07이라는 좋은 성적을 올렸다. 실제로 마무리 전환 후 문경찬이 기록한 자책점은 단 5점 뿐이었다. 문경찬은 시즌이 끝난 후 제2회 프리미어12 대표팀에도 선발되며 그야말로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프로 입단 6년 만에 억대 연봉(1억1500만 원) 대열에 합류한 문경찬은 맷 윌리엄스 감독 체제 하에서도 마무리 투수로 활약할 확률이 매우 높다. 이미 시즌 개막이 두 차례나 연기됐지만 문경찬은 풀타임 마무리로서 '돌아온 끝판왕' 오승환(삼성 라이온즈)을 비롯해 하재훈(SK와이번스), 고우석(LG) 등 각 구단 마무리 투수들과 진검 승부를 벌일 수 있게 됐다. 과연 문경찬은 풀타임 2년 차 시즌에도 호랑이굴의 뒷문을 든든히 지킬 수 있을까.

환골탈태한 타이거즈의 잠수함, 불펜 리더 역할도 기대

박준표는 고등학교를 서울(중앙고)에서 나왔지만 전학가기 전까지 광주에서 학교를 다녔고 대학 역시 광주의 동강대학교로 진학했다. 대학에서 타이거즈의 레전드 출신 문희수 감독의 지도를 받은 받준표는 2013년 신인드래프트에서 7라운드 62순위로 KIA의 지명을 받았다. 특급 유망주가 아니었음에도 자신이 나고 자란 연고구단에 입단하는 행운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하지만 박준표의 고향팀 적응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16년까지 프로에서 4년을 보낸 박준표는 107경기에서 7승 4패 10홀드를 기록했지만 평균자책점이 6.72에 달하는 그저 그런 투수에 지나지 않았다. 사이드암 투수로서 비교적 위력적인 공을 던지지만 구종이 단조롭고 경기운영능력도 서툰 편이라 상대 타자들에게 수를 읽히고 난타를 당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평범한 불펜 투수였던 박준표는 경찰 야구단에서 군복무를 마친 후 전혀 다른 투수로 환골탈태했다. 군복무 기간 동안 싱커의 완성도를 높이며 기존의 빠른 공, 커브와 함께 3가지 구종을 자유자재로 던질 수 있는 까다로운 투수로 거듭난 것이다. 그 결과 박준표는 작년 시즌 49경기에서 56이닝을 던져 5승 2패 15홀드 ERA 2.09의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투구내용만 보면 리그 최고의 불펜 잠수함으로 불리는 한현희(키움 히어로즈)를 능가한다.

박준표는 아직 20대의 젊은 투수지만 어느덧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스윙맨' 임기준(1991년생)을 제외하면 KIA 불펜에서 가장 나이도 많고 연차도 긴 고참급에 속한다. 이제는 개인 성적뿐 아니라 불펜에서 후배들을 이끄는 리더 역할도 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박준표를 중심으로 하나로 뭉치는 KIA 불펜이야말로 윌리엄스 감독과 서재응,앤서니 르루 투수코치가 가장 바라는 그림일 것이다.
 
 경찰청 전역 후 확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박준표

KIA 박준표 ⓒ KIA 타이거즈

 
신인왕 놓친 전상현, 타이거즈 최고 셋업맨 노린다
 
작년 신인왕 투표에서는 LG의 잠수함 정우영이 유효 투표수 110표 중 94표를 득표하면서 총점 380점으로 1997년의 이병규(LG 타격코치)에 이어 22년 만에 LG에 신인왕 타이틀을 안겼다. 하지만 야구 팬들 사이에서 작년 신인왕 투표는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 정우영은 작년 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가 0.66(스탯티즈 기준)으로 KIA 외야수 이창진(2.50)과 우완 전상현(1.83)보다 현저히 낮았기 때문이다.

대구 상원고 시절 경북고 최충연(삼성)의 라이벌로 꼽히기도 했던 전상현은 KIA입단 첫 해 8경기에서 2패1홀드8.10을 기록한 후 상무에 입대했다. 전상현은 상무에서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전역 후 5경기에서 다시 평균자책점 6.10으로 부진하면서 유망주의 껍질을 벗지 못했다. 하지만 전상현은 프로 입단 후 첫 풀타임 시즌을 보낸 작년 시즌 드디어 KIA 불펜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한 전상현은 4월 말 1군에 등록돼 시즌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2군에 내려가지 않았다. 57경기에서 60.2이닝을 소화한 전상현은 1승 4패 15홀드 ERA 3.12의 성적으로 박준표,문경찬과 함께 KIA의 필승조로 맹활약했다. 이닝당 출루허용수(WHIP) 1.09와 .205의 피안타율이 말해주 듯 전상현은 겉으로 드러난 성적보다 훨씬 좋은 투구내용을 기록했다.

3300만 원이던 연봉이 7600만 원으로 인상(130.3%)된 전상현은 풀타임 2년 차 시즌을 맞는 올해 진정한 시험대에 섰다. 전상현이 상대 팀에서 본격적으로 약점을 공략해 올 올 시즌에도 좋은 성적을 이어간다면 KIA를 대표하는 우완 불펜 투수로 인정 받을 수 있다. 참고로 타이거즈의 화려한 역사에서도 2년 연속 15홀드 이상을 기록한 불펜 투수는 아무도 없었다. 전상현은 풀타임 2년 만에 타이거즈의 '역사'에 도전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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