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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저녁 두 번째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지난달 30일 저녁 두 번째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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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0일 저녁 8시 고이케 유리코 도쿄 도지사가 두번째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혹시라도 도쿄 '로크다운'(lockdown·도시봉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두려운 마음으로 유튜브로 TV방송을 시청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로크다운의 ㄹ자도 안나왔다. 40여분에 걸친 기자회견의 핵심은 밤거리의 유흥 행위를 자제해 달라는 것이었다.

즉, 젊은이들은 가라오케와 나이트클럽을 가지 말고, 50대 이상의 중장년층 남자들은 크라브, 스나쿠, 걸즈바 같이 사람이 많은 술집을 피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무슨 말인지는 잘 알겠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고 있는 내용을 다시, 그것도 저녁시간에 긴박한 분위기를 팍팍 풍기며 기자회견을 연다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가 죽은 다음날 열린 고이케 도지사의 기자회견

그래서인지 이번 기자회견은 전날 죽은 일본의 국민 코미디언과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는 말들이 많이 나온다. 원래 시무라 켄은 도쿄의 유흥가 긴자의 황제로 불리웠고, 전성기 때는 '매일' 일이 끝나면 긴자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코로나19에 걸려 목숨을 잃은 그의 감염 경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긴자 이야기가 새어나왔고, 그래서 고이케 도지사가 지금까지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않았던 밤의 유흥가를 거론한 게 아닌가라는 의심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현지 언론 관계자로부터 이야기가 흘러들어왔다. 오사카 기타신치(北新地)의 고급 크라브 '후지사키(藤崎)'가 지난달 25일부터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다.

일단 이 소식은 두 가지 점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먼저 아무리 유흥업소 매상이 떨어지고 있다 하더라도 오사카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후지사키'같은 고급 술집이 자발적으로 문을 닫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도쿄가 아닌 오사카의 술집이 문을 닫았는데 이게 왜 도쿄 도지사의 회견과 연결되는가 하는 부분이다.
  
지난달 29일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한 일본의 국민 코미디언 시무라 켄의 생전 모습.
 지난달 29일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한 일본의 국민 코미디언 시무라 켄의 생전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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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어진 소식이 또 날아들었다. 역시 '후지사키'가 시무라 켄의 죽음과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시계열적으로 따라가보면 다음과 같다.

1. 후지사키에서 일하는 호스테스 두 명이 2월 중순 스페인 여행을 떠났다가 2월 21일 귀국.
2. 그들이 귀국한 후 후지사키에서 평소대로 일함.
3. 23일 도쿄 긴자의 고급 크라브 '브레아'에서 시무라 켄의 고희를 기념하는 파티 개최. 이 파티에 후지사키의 마담이 참석해 시무라 켄과 동석.
4. 3월 14일 후지사키의 파티에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 후지나미 신타로 등 젊은 선수들 몇몇이 참가.
5. 3월 17일 시무라 켄 코로나19 증상 나타남.
6. 3월 24일 호스테스 2명 및 후지사키 마담 코로나19 양성 판정(하지만 이 셋은 거의 증상이 없거나 경증이었다고 함.)
7. 한신 후지나미 선수 코로나19 양성 판정.
8. 3월 25일 후지사키 휴업.


시무라 켄의 측근으로부터 흘러나왔다는 이 이야기를 따라가면, 2월 23일부터 시무라 켄이 발병한 3월 17일까지는 약 21일 정도의 잠복기를 거친다. 또한 호스테스 둘과 마담은 24일 양성 판정을 받을 때까지 무려 한달 동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잠복해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보통 14일이 잠복기인데 비춰 다른 감염 경로가 있지 않나, 한달은 너무 길지 않은가 라는 의심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확실한 것은 시무라 켄과 접점이 있는 이들이 일단 모조리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점이다.

아니 크라브 '후지사키'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하는 게 정확할지 모르겠다. 위의 후지나미 선수 등 당시 파티에 참가했던 한신 선수들 셋이 모두 양성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에게 옮겼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와 관련해 국민 개그 콤비 '다운타운'의 마쓰모토 히토시가 시무라 켄이 입원돼 있을 당시 이에 관한 의미심장한 말을 했었다.

"사실 누가 누구에게 옮겼는지 아무도 모른다. 시무라씨한테 누가 옮겼을 수도 있고, 시무라 씨가 누군가에게 옮겼을 가능성도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옮았을지도, 옮겼을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그런 자리가 한 두번이 아니지 않은가. 암튼 시무라씨가 퇴원하면 무조건 담배는 끊게 할 생각이다."

일본의 코로나19 검사는 이제 거의 무리에 가깝다. 위의 예만 보더라도 2월 23일과 3월 14일 파티에 참가했던 수 십명, 수 백명의 사람들의 경로를 2주에서 한달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어떻게 추적한단 말인가. 그래서 고이케 도지사는 아예 그런 곳에 가지 말아 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라인이 울렸다. 후생노동성으로부터 온 알림이었다. 제목은 '제1회 신형코로나 대책을 위한 전국조사'라고 되어있다. 코로나 국면이 시작된지 두 달 하고도 절반이 지났는데 '제1회' 조사가 시작됐다. 만시지탄의 감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테츠의 선데이도쿄 https://uenotetsuya.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시무라 켄, #고이케 유리코, #코로나19, #후지사키, #후지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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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도쿄거주. 소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 에세이 <이렇게 살아도 돼>, <어른은 어떻게 돼?>,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썼고,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번역했다. 최신작은 <쓴다는 것>. 현재 도쿄 테츠야공무점 대표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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