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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뉴스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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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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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말 주민등록부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 인구 6명 중 1명은 65세 이상 노인이다. 노인 인구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서 이대로라면 2025년에는 1000만 명을 넘어설 것이고 노인 비율 20%가 넘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고령화 사회'라는 말은 종종 '해결할 문제가 산적한 사회'라는 말과 동일시되곤 한다. 젊은층의 경제적 부담 가중, 각종 노인질환에 대한 의료비 증가, 노인 돌봄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 확충, 노인들의 고립과 소외에 따른 각종 사회문제 등 수많은 사안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러한 고민의 와중에, 2009년 도입된 '노인 데이케어센터'는 노인성 질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어주고 있다. 유치원이 어린 아이들을 위한 돌봄, 학습, 친교의 장인 것처럼,'노인 데이케어센터' 역시 노인들에게 그와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종 '노인 유치원' 즉 '노치원'이라 불린다.

노인 데이케어센터는 단순히 노인들을 돌봐줄 뿐만 아니라, 집에서는 하기 힘든 물리치료, 체조나 요가를 비롯한 각종 신체활동, 음악치료나 미술치료 같은 인지치료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고 있다.

경증 치매환자의 경우 다양한 인지활동을 통한 자극이 치매의 진행을 막아주고,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노인들이 서로에게서 위로와 공감을 얻음으로써 정신건강을 회복하기도 한다. 또한 여러 가지 배움의 과정을 통해 자존감의 향상을 경험하게도 된다.

가족들의 삶의 질 향상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이점이다. 치매 등의 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과 한 집에서 산다는 것은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한다. 한시도 곁을 떠날 수가 없지만 그렇다고 생업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인시간을 포기해야 하는 데서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노인 데이케어센터는 그러한 간병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환자 가족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게다가 '노인장기요양보호법'에 따라 시설 이용비의 85%를 건강보험공단이 부담하고 나머지 15%만을 본인이 부담하면 된다.

이렇게 만족도가 높다보니 지자체들의 관심도 커서 서울시의 경우 몇 년째 노인 데이케어센터 확충에 많은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그렇지만, 노인 데이케어 센터를 오픈하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는 않아 보인다.

요즘 서울 마포구의 한 대형 아파트 앞에는 여러 개의 현수막들이 위세등등하게 걸려있다. 9일 JTBC 뉴스룸은 <[밀착카메라] "우리 아파트엔 안 돼"…문 못 여는 노인시설>을 통해 데이케어센터를 반대하는 아파트 주민들의 움직임을 전했다. 

'노인주간보호센타 설치 결사반대', '내생에 첫번째 실수는 마포구에 사는거고 두번째 실수는 마포구청장을 믿은거다!' 울긋불긋한 글씨 색 만큼이나 강한 적의가 느껴진다. 아파트 입구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A 문화건강센터 건물, 그곳에 노인 데이케어센터가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주민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종종 사회적 문제가 되곤 하는 '님비현상(NIMBY, Not In My Backyard)'이 또다시 나타난 모양이다. '내 집 앞에는 안돼!'라 외치는, 그래서 배척과 이기심의 상징이 되어버린 그 현상 말이다. 그러나 왜? 노인복지시설이 어째서 혐오시설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일까?

반대하는 이들은 '위험성'을 그 이유로 내세운다. 주변에 아이들이 자주 이용하는 놀이터가, 도서관이, 혹은 어린이집이 있어서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 같다고 한다. 노인들과 동선이 겹치는 것이 위험하다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 위험하다 주장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당당하기만 하다.

노인 데이케어센터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한 일은 이번만이 아니다. 7일 조선일보 <아파트값 떨어진다고… 노인 케어센터 반대하는 주민들>라는 기사를 통해 부산 서구에서도, 대전 대덕구 법동의 아파트 단지에서도,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의 취재에 응한 대덕구의 한 센터장은 "어르신들은 버스로 등하원하기 때문에 건물 밖으로 나설 일이 거의 없다", "혹여 건물 밖으로 나가더라도 경증 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들이 누구에게 위험하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데이케어센터 반대 움직임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보도들에 따르면 번쩍대는 LED 현수막을 동원하는가 하면, 공사를 막기 위해 건물 주변에 그물을 쳐 공사차량의 접근을 막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관공서에 소복을 입고 찾아가 데모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 아이에게 유치원이 필요하다면 노인들에게도 '노치원'이 필요하다. 늘 푸르고 강할 것만 같았던 부모가 작고 쇠약해져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누구라서 피할 수 있을까. 내 부모도 노인이 되고 나도 역시 노인이 될 테고 상상이 잘 안되지만 내 아이들도 언젠가는 노인이 될 것이다. 더구나 노인 10명 가운데 한 명이 치매 환자라는 요즘, 자신이 치매환자가 되지 않을 거라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는가. 20%의 구성원들이 외면 당하고 구석으로 내몰리는 사회를 건강하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행히도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 뒤에는 코로나19 사태로 급식을 받으러 나오지 못하는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나르는 사람들이 있다. 꼭 필요한 것이라면 어디에든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우리들도 그곳에 갈 날이 있을테니 그때를 생각해서 서로 이해하고 양보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다수일 거라고 믿고 싶다. 그들이 한 걸음 나와 '이건 아니지 않냐'고 더 크게 목소리를 내었으면 좋겠다.

눈부신 청춘이라 한들 천년만년 가겠으며, 빛바랜 노년이라 한들 마음까지 바랬을까. 우리는 필연적으로 누구나 노인이 된다. 눈 가린 경주마 마냥 눈앞의 이익만을 좇으며 노인들의 앞을 막아섰던 이들이 훗날 백발이 성성해졌을 때, 과연 뭐라 말을 바꿀 것인지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에서 남편, 그리고 세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태그:#노인 데이케어센터, #노치원, #노인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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