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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2월 18일 대구에서 코로나19 31번째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2월 20일에는 제가 살고 있는 포항에서 첫 번째 환자가 발생했고, 2월 23일에는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환진자가 나오면서 강제로 재택근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밀접 접촉자는 아니어서 일주일 만에 출근을 하게 되었지만, 지역에서 계속 환자가 생기는 것을 보며 자발적으로 지역 격리를 택했습니다. 이날 이후로, 저는 지역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두 달을 보내고 있어요.

평소라면 어디든 직접 움직여야 직성이 풀렸을 텐데, 올해는 많이 다른 방식이라 어색하기는 하지만 지금을 즐기는 저만의 비법이 있답니다. 여러분들의 비법도 나눌 수 있으면 좋겠고요!
 
코로나19 이전에는 저는 어디로든 찾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의 어느 곳이든 찾아가곤 했습니다. 벽에 붙어있는 세계지도에 핀을 하나씩 꽂아가던 시간이, 언제든 다시 돌아올 것을 기원합니다.
▲ 코로나19 이전의 여행의 기록 코로나19 이전에는 저는 어디로든 찾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의 어느 곳이든 찾아가곤 했습니다. 벽에 붙어있는 세계지도에 핀을 하나씩 꽂아가던 시간이, 언제든 다시 돌아올 것을 기원합니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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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는 매일 동네 탐험을 하고 있어요. 2월 중순보다는 훌쩍 길어진 햇살의 도움으로 아직은 밝은 저녁시간을 즐기는 중입니다. 하늘이 맑은 날은 해가 지는 노을을 즐길 수 있는 길을 택하고, 흐린 날은 동네 시장의 단골 책방 주변으로 시장 탐험에 나섭니다.

어느 날은 새순이 나기 시작한 침엽수들 뒤로 해가 지는 풍경에 감탄하면서 노르웨이의 숲을 떠올렸고, 어느 날은 유채가 샛노랗게 피어난 지역의 작은 간이역 주변으로 봄날의 제주도를 떠올렸습니다.

시장 탐험은 냉장고에 오래 보관할 수 없는 신선한 야채나 특별한 계절 나물들을 구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코스예요. 단골 책방에 새 책이 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집에서 읽을 거리도 채워 넣을 수 있으니 더 좋고요. 덕분에 자체 격리 기간 동안 평소보다 더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어요.
 
매일 차를 타고 지나쳤을 퇴근길의 풍경입니다. 걷게되니 보이는 풍경이 눈부시네요. 때마침 새순이 피어나는 침엽수 뒤로, 해가 지고 있는 하늘이라니! 감사할 뿐입니다.
▲ 노르웨이의 숲! 매일 차를 타고 지나쳤을 퇴근길의 풍경입니다. 걷게되니 보이는 풍경이 눈부시네요. 때마침 새순이 피어나는 침엽수 뒤로, 해가 지고 있는 하늘이라니! 감사할 뿐입니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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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유명한 곳을 찾아다니던 '여행'을 동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명소로 바꿨어요. 벚꽃이 한창이던 봄날의 꽃놀이는 일터 여기저기에서 환하게 빛을 발하는 벚나무를 택했어요.

일터가 지역의 학교 캠퍼스 안에 있었기에 평소라면 학생들로 북적일 테지만, 이번 학기에는 비대면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해서인가 학생들을 찾아보기는 어려웠어요. 그래서인가, 유모차를 앞세운 가족들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꽃그늘 아래로 산책을 나오곤 하더군요.
 
제주도라고 속여볼랬더니, 제주도엔 기차역이 없다네요. 퇴근길의 산책에서, 동네의 공단으로 화물을 실어나르는 기차를 만났습니다. 노란 유채와 기차 뒤로 붉게 물드는 노을이, 아름답지 않아요?
▲ 유채꽃이 만발한 동네 간이역 제주도라고 속여볼랬더니, 제주도엔 기차역이 없다네요. 퇴근길의 산책에서, 동네의 공단으로 화물을 실어나르는 기차를 만났습니다. 노란 유채와 기차 뒤로 붉게 물드는 노을이, 아름답지 않아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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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햇살이 좋길래, 근처의 연못으로 도시락과 피크닉 매트를 챙겨들고 걸어나갔어요. 피어나는 봄의 새싹들과 나무에서 떨어진 솔방울의 송진 냄새까지 기분을 좋게 했습니다.

분명히 매일 지나는 공원이었을 텐데 여유를 갖고 앉아 있으려니, 꽃들이 가득한 고향의 수목원에라도 찾아간 느낌이었습니다. 상황이 진정되면 엄마를 모시고 가고 싶은 곳이기도 해서, 더 아련했습니다. 
 
어딘가 멀리 떠나지 않아도, 볕이좋은 동네 공원에 도시락을 챙겨들고 매트를 깔았습니다. 나무 그늘도 따스한 햇살도, 모두 행복한 시간이네요.
▲ 동네 공원으로 소풍을! 어딘가 멀리 떠나지 않아도, 볕이좋은 동네 공원에 도시락을 챙겨들고 매트를 깔았습니다. 나무 그늘도 따스한 햇살도, 모두 행복한 시간이네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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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확진자 수 증가세가 안정화되고 나서부터는, 주말을 이용하여 근처의 산을 정기적으로 오르는 중입니다. 평소였으면 한 번 오른 산은 제외하고 다른 곳을 찾았을 텐데, 지역을 벗어날 수 없으니 등산의 목적을 바꿨거든요. 정기적으로 찾아가면서, 바뀌는 자연을 확인하는 것으로요.

등산로 곳곳에서 보였던 진달래 나무가 꽃을 피워내는 과정도 보고 싶었고, 겨울을 보낸 산이 초록으로 물들어 가는 것도 볼 수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역시나, 해가 부쩍 길어지며 기온이 올라간다 싶더니, 색을 잃었던 산은 금세 봄으로 가득해졌습니다.

처음에 갔을 때만 해도 진달래 꽃봉오리가 달려있는 정도였는데, 두 번째 갔더니 등산로 초입의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더라고요. 하지만, 산 중턱이나 정상 부근의 아름드리 진달래나무는 아직 소식이 없었기에, 언제쯤 꽃을 피울까 계속 신경이 쓰여서 엉덩이가 들썩거렸답니다.

그래도 산에 오르는 것은 날씨와 몸의 컨디션이 도와줘야 가능한 것이라서, 이번 주말이 되어서야 다시 산에 올랐고, 거기에서 놀라운 선물을 받았습니다. 만개한 것은 아니었지만, 산 중턱의 진달래가 한창이었고 정상 부근의 진달래도 일부 꽃을 피워냈습니다.

예년 같으면 전국 곳곳에서 봄꽃 축제가 열렸을 텐데... 가는 봄꽃이 아쉽다면 여러분들도 동네의 산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껴보시면 어떨까요?
 
정상 부근의 진달래도 활짝 꽃을 피웠습니다. 제대로 봄이 온 느낌이예요.
▲ 키보다 높은 진달래 나무! 정상 부근의 진달래도 활짝 꽃을 피웠습니다. 제대로 봄이 온 느낌이예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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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코로나19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한 일이니 '정신 승리'로 여겨질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저는 재앙을 견뎌내는 시간을 통해, 매일 지나치던 동네의 보물들을 발견하며 무척이나 신나고 있어요.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놓쳤던 자연의 변화에 눈을 돌릴 수 있었고, 어디론가 떠나야만 느낄 수 있었던 여행지의 풍경들도 주변에서 찾아낼 수 있었거든요. 게다가, 겨울을 견뎌내며 꽁꽁 얼어붙었던 숲이, 봄을 맞이하며 말라있던 가지에 물을 채우고 새잎을 올리고, 환하게 꽃을 피워내는 과정을 그대로 지켜볼 수 있었으니, 행복해질 수밖에요.

다음번에 산을 찾을 즈음에는 정상의 진달래마저 꽃이 가득할 듯한데, 그때쯤엔 우리의 코로나19 상황도 조금은 안정 되지 않았을까요? 
 
봄이 조금씩 피어나더니, 이제는 놀라운 속도로 초록이 점령하는 중입니다. 메말랐던 겨울의 자연이 금세 봄으로 변신했어요!
▲ 봄이 만발한 단석산입니다 봄이 조금씩 피어나더니, 이제는 놀라운 속도로 초록이 점령하는 중입니다. 메말랐던 겨울의 자연이 금세 봄으로 변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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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짓눌릴 것 같은 두려움으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던 두 달을 보내면서, 소중한 보물을 하나 더 발견했습니다. 바로 우리의 놀라운 '시민 의식'이에요. 매일 지나치던 동네 탐험에서 보물을 찾아내며 기뻐했던 것처럼, 항상 함께하던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소중한 보물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이런 보물들을 통해 저는 두려움에 잡아먹히지 않을 수 있었고, 우리가 지금을 이겨낼 것이라는 자신감도 채워지는 것을 느꼈어요. 대한민국의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자랑스럽고 감사할 뿐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지나갈 것입니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는 코로나19 이전의 삶과는 분명히 달라져 있을 거예요.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서는 지금을 통해 발견해 낸 보물들이 큰 힘이 될 것을 믿습니다.

예측하지 못한 고난을 함께 견뎌내며, 행복이란 것이 언제나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을 실감했으니 말이에요. 여러분들도 소중한 보물을 찾아내셨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태그:#일상 비틀기, #코로나19, #동네탐험, #일상의 행복, #보물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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