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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용 배우며 노년의 삶을 준비하는 안경식 씨
 한국무용 배우며 노년의 삶을 준비하는 안경식 씨
ⓒ 임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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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한 일상에 한 줄기 햇빛과 같았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한국무용이 마음을 바꾸고 몸을 변화시킬 줄은 몰랐다. 언제든 떠날 거라고 생각했던 당진이 이제는 인생의 마지막을 보낼 안식처가 됐다. 우연한 인연, 그리고 작은 실천이 삶을 완전히 바꿔 놓은 것이다. '조금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도 들지만, 당시에 시작한 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한 일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고, 오늘이 우리 삶에 가장 젊은 날이니까.

무료했던 삶에 변화가 찾아오다

안경식(충남 당진시 읍내동·72) 씨가 당진에 온 지 어느덧 5년이 지났다.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았던 그는 남편이 은퇴하면서 당진에 오게 됐다. 남편의 고향은 천안이지만, 서산에 사는 친구의 권유로 아무 연고 없는 당진에 온 것이다.

줄곧 대도시에 살았던 그에게 당진은 따분한 곳이었다. 아는 사람도 없고, 할 것도 없었다. 외로움과 적적함에 매일 울다시피 하며 '언젠가 다시 서울로 갈 거야'라는 생각만 하면서 겨우겨우 하루를 버텼다.

그러다 우연히 한국무용 공연을 접했다. 고운 한복을 입고 추는 절제된 동작과 부드러운 춤사위가 눈을 사로잡았다.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모습에 빠져들었다. 이전에 전혀 춤을 춰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면서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느즈막이 한국무용을 만났다.

"처음엔 뻣뻣한 고목나무 같았어요. 무릎 수술 이후 다리를 제대로 펴지도, 굽히지도 못했거든요. 게다가 나이 드니까 오십견이 와서 어깨도 불편했죠. 그런데 한국무용을 하면서 몸이 상당히 좋아졌어요. 균형감각도 생기고 관절도 훨씬 부드러워졌고요."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동작들을 배우느라 진땀을 빼지만, 한 동작, 한 동작 완성해 나갈 때마다 성취감을 느낀다. 안경식씨는 "취미니까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겁게 하려 한다"며 "몸치라 걱정이 많았는데, 요즘엔 고목나무에 꽃이 핀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배우고 도전하는 설렘

특히 1년 동안 열심히 배운 것을 선보이는 발표회를 할 때는 떨리기도 하지만 설렘과 보람이 더 크다. 무언가를 배우고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고,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돼준단다. 배움에 나이는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가슴 뛰는 설렘과 열정을 느끼게 해주는 무언가는 꼭 필요한 일이다.

현재 백수경무용단에 소속돼 총무를 맡고 있는 그는 올 하반기 공연을 앞두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요즘엔 연습도 쉽지 않고,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지만 나름대로 차근차근 준비해나갈 생각이다. 빨리 이 사태가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1949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교사를 꿈꿨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무척 어려웠던 시절이었던데다 딸들에게는 배움의 기회도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25살에 결혼해 평생 주부로만 살았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맏며느리로 살면서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든 날도 많았다. 마음의 짐이 무거웠던 그에게 한국무용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하나의 탈출구였다.

자매 같은 친구들 만나

한편 그는 한국무용을 하면서 건강을 되찾은 것뿐만 아니라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외로웠던 당진살이에서 희망을 갖게 된 건 함께 한국무용을 하면서 만난 자매 같은 친구들 덕분이다. 특히 2시간 가량 연습을 하면서 팀원들과 호흡을 맞추다 보면 자연스럽게 친밀해지고 결속력이 생긴단다.

날마다 수업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는 그는 "노후를 함께 할 좋은 사람들을 만난 건 정말 큰 복"이라며 "함께 하는 사람들 덕분에 당진에 마음의 뿌리를 내리고 잘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당진은 이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낼 곳이 됐어요. 한국무용을 통해 당진에 정착한 것이나 다름 없죠. 처음엔 작은 도시가 답답하고 싫기만 했는데, 이제는 애정이 넘쳐요. 서울과 가까우면서도 번잡하지 않고, 다양하고 신선한 농산물을 쉽게 주변에서 구할 수도 있고요. 당진이 너무 좋아요."

안경식씨는 앞으로 한국무용을 더 열심히 해서 봉사활동에도 참여하고 싶다고 전했다. 실력을 더 키워서 주위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고. 다른 사람들을 도우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게 그의 바람이다.

안씨는 "한국무용 덕분에 여생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며 "무언가를 배우고 도전하는 일이야 말로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자신을 사랑하게 되며, 또 한편으로는 일상에 지친 자기 자신을 위로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무용을 통해 우리 나이에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면서 "내가 행복하니 가족들 모두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태그:#당진, #당진시대, #한국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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