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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앞 병원이 선별진료소예요. 누가 여기서 밥 먹으려고 하겠어. 손님이 아예 없어요. 월세가 300만 원인데... 하루 김밥 몇 줄 팔아서 월세는 택도 없어요." (갈현동, ㅁ국수)
 
코로나19는 세상을 멈췄다. "잠시 멈춤"이 찰나가 아닌 영원처럼 느껴지는 사람들, 동네 상인들은 대비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절망으로 내몰렸다. "코로나 민생·일자리 지킴이 은평주민연대(준)"는 4월 9일부터 13일까지, 은평 지역 상인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식당은 식재료를 폐기처분하고, 줄어든 매출과 식자재량을 맞추지 못해 마이너스 매출의 악순환에 빠진다. 배달 위주로 영업하거나 배달을 늘려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는 경우에도, 턱없이 높은 배달 앱 이용 수수료, 광고료에 치여 결국 마이너스다.

매일 먹어야 하는 식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소비를 줄이게 되는 커피, 디저트 종류나 옷가게 등은 하루 매출이 0원을 찍는 경우도 많다.
 
"요즘 장사가 너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손님 자체가 없어요." (갈현동, ㄴ옷가게)

"50년 넘게 장사하는 동안 지금이 가장 심해요. 며칠 동안 매출자체가 없어요." (제일시장, ㅈ옷수선)

"3월에 매출 30%가 떨어졌는데... 4월이 아직 다 안 끝났지만 3월보다 심하네요. 오늘도 손님 1명 왔어요." (갈현동, ㅇ마카롱가게)

"커피는 밥과 다르게 쉽게 소비를 안 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타격이 크죠." (갈현동, ㄴ커피)

"사회적 거리두기로 코로나 이후 매출이 1/3이 감소했어요. 개시도 못 한 날도 많아요." (갈현동, ㅁ이발소)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불광동 제일시장 안에 있는 ㅂ홍삼 사장님은 본인이 매일 기록한 장부를 보여주셨다. 매일 문을 열었지만 지난 1월부터는 매출이 거의 매일 0원이고, 세금을 못 내서 압류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눈물 흘렸다.
  불광동 제일시장 안에 있는 ㅂ홍삼 사장님은 본인이 매일 기록한 장부를 보여주셨다. 매일 문을 열었지만 지난 1월부터는 매출이 거의 매일 0원이고, 세금을 못 내서 압류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눈물 흘렸다.
ⓒ 코로나 민생 일자리 지킴이 은평주민연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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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개학 연기와 결혼 연기 등의 사태가 길어지면서 1년 중 가장 매출이 많을 시기에 위기를 겪은 업종의 절망은 더욱더 깊다. 앞으로 매출을 회복할 기회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졸업, 입학시즌이 1년 장사를 책임지는 행사인데 다 취소돼서 매출에 영향이 너무 크죠." (갈현동, O꽃집)

"혼수철인데 이불이 팔리지 않아서 정말 난감한 상황이에요." (연서시장,ㅅ이불가게)
 
가게를 운영하면 아무 것도 안 해도 고정적으로 나가는 큰 지출이 있다. 임대료, 부가세 등 각종 세금, 전기요금 등 공과금, 대출 이자, 인건비, 원재료비 등등... 이런 상황에서 상인들은 가게 문을 닫을 수도 없기에, 어차피 장사가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문을 열고 그저 무작정, 오지 않는 무언가를 기다릴 뿐이다.
 
"현재 전기료 수도세 등등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이 있는데 벌이는 없어서 계속 빚만 생겨버리고 있어요." (연서시장, ㄸ떡볶이)

"다니는 사람도 없고 매출도 매일매일 0원인데.. 그래도 매일 아침 7시에 문을 열고 오후 6시 반에 닫아요. 어제는 아들에게 장사가 너무 안 돼서 차라리 죽고 싶다고 이야기했어. 세금을 못 내서 압류고지서가 날아오는데 방법도 없고..." (불광동 ㅂ홍삼)

"재개발에 코로나에, 이중고예요. 창살 없는 감옥살이 중이죠. 안될 거 뻔히 알면서도 가게 문 열고 자리 지키고 있어야 하니까." (대조시장 ㄷ프라자)

"하루 종일 아무도 오지 않으니까... 가만히 있으면 미칠 거 같아서 억지로 뭐라도 하려고, 인터넷으로 동영상 강의 같은 거 보고 있어요. 공부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걸 안 하면 우울증 걸릴 거 같아서요." (구산동, ㅇ옷가게)
   
수입은 없지만 지출은 수백만 원인 상황에서 상인들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식사는 집에서 도시락을 싸 오거나 가게에서 직접 해 먹으면서 해결하기도 한다. 지금 당장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이미 폐업하는 가게가 속출하고 있고, 그나마 버티고 있는 상인들은 길어야 6월이라고 이야기한다.
 
"생활비는 그대로 나가는데 장사가 되지 않아서 마이너스 통장에서 돈을 빼서 버티고 있는 중이에요." (대조시장, ㄷ축산)

"매월 200만 원씩 야금야금 까먹고 있어요. 곧 문 닫을 판이에요." (갈현동, ㄴ옷가게)

"식사는 직접 가게에서 해 먹어요. 마스크 만들면 하루 3만원 수입인데, 밥을 시켜먹으면 아무 것도 남지 않아서... 굶어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 앞으로가 더 문제예요. 밤에는 잠도 잘 오지 않고... 어떡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해요. 가게는 내놔도 나가지 않을 것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지..." (대조동, ㅇ이불가게)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6월까지는 어떻게 버티겠지만 그 이후로는 솔직히 자신 없어요. 주인이 7월부터 10만원씩 임대료를 인하해주겠다고 하는데 그러면 뭐하나 지금 당장이 힘든데..." (대조시장, ㅈ음식)
  
착한 임대인? 글쎄...

무엇이든 해보려고 본래 영업과 관련이 없는 다른 것을 해보기도 한다. 옷가게에서 미역을 팔기도 하고, 이불 가게에서 마스크를 만들어 팔기도 하지만, 이런 것이 활로가 될 수는 없다.
 
"매출 0원을 찍는 날이 늘고 있어서... 참다못해 미역을 팔고 있어요. 옷가게에서 미역 파는 곳 본 적 있으세요?" (갈현동, ㅅ옷가게)

"이불을 만들어야 하는데 팔리질 않아서... 2월 마지막 주부터는 마스크를 만들고 있어요. 처음에는 너무 놀기만 하다 보니 시간이라도 보내고 봉사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업체에서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해서 마스크를 제작해서 납품하고 있거든요. 두 명이 하루 10시간씩 미싱을 돌리고 하루 200개 정도 만드는데, 합쳐서 수입이 3만원 정도..." (대조동, ㅇ이불가게)
 
한 달 지출 중에서 상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1순위는 무엇보다 임대료다. 연신내역 부근 로데오 거리에 임대료를 인하해주는 "착한 임대인"에게 고맙다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지만, 실제로 임대료를 인하해주는 임대인이 많지는 않다. 요구를 해도 답이 없거나, 차가운 거절만 돌아올 뿐이다. 심지어, 월세를 인상한 경우도 있었다.
 
"가겟세가 가장 큰 부담이죠. 3개월 매출이 한 달 가겟세도 안 돼요. 그래도 여기는 다른 상가보다는 싸지만 그것도 부담이 크고, 그래서 그만두어야 하나 생각 중이에요." (제일시장, ㅅ옷가게)

"월세가 제일 힘들어요. 월세가 50만 원인데 두 달째 한 달 매출이 10만 원이에요." (갈현동, ㅇ옷가게)

"임대료때문에 버티기 어려워서 집주인한테 깎아달라고 이야기했지만 싼데 뭘 더 깎냐고 오히려 한 소리 들었죠." (갈현동, ㅅ미용실)

"개인적으로 건물주에게 임대료 인하를 요청하는 문자를 보냈지만 답변이 없었어요." (갈현동, ㄴ옷가게)
 
재난기본소득이 필요하다
 
  연신내 로데오거리에 걸린 플랑카드. 내용과 달리 실제 임대료를 인하해준 경우는 많지 않았다.
  연신내 로데오거리에 걸린 플랑카드. 내용과 달리 실제 임대료를 인하해준 경우는 많지 않았다.
ⓒ 코로나 민생 일자리 지킴이 은평주민연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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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지금 당장 기댈 곳은 정부에서 진행하는 소상공인 대출이다. 대부분의 상인들은 대출 역시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생각하지만, 지금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대출 신청을 시도했다. 하지만 대출 절차가 너무 복잡하거나, 대출 요건이 너무 엄격해서 문턱이 높고, 처리 기간이 너무 길어서 마냥 기다리다가 결국엔 대출에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시기 매출이 높다는 이유로 대출 자격이 안 되기도 한다. 과거의 매출액이 높다고 해도 현재의 어려움을 피해 가는 것은 아니다. 안 그래도 버티기 힘든 하루하루인데, 비빌 언덕인 대출마저 모래 언덕이고 도움이 안 되는 현실 앞에서 상인들은 분노에 차 있다.
 
"대출 알아보니 저는 해당사항이 없더라고요." (연서시장, ㅂ축산)

"대출지원이 무의미해요. 대출받는 것 진행 자체가 어려워요." (갈현동, ㄲ분식)

"대출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요. 기존 대출이 있으면 해당사항이 없어요. 기존 대출이 있다 해도 이런 상황에는 긴급대출을 해줘야 해요. 경기가 괜찮아지면 대출을 갚는 식으로 빌려줬으면 좋겠어요." (갈현동, ㄴ옷가게)

"다들 비슷한 이야기할 거 같은데 대출받기 너무 어려워요. 일주일, 아니 한달 안에 바로 해준다고 하면 장사 안 접고 받아서 급한 불부터 끄고 잘 이끌어 가 볼 텐데... 대출을 좀 더 쉬운 절차로 이자를 좀 더 저렴하게 빌려주면 좋겠어요. 공짜로 받겠다는 것도 아닌데 대출이 너무 어려워요." (갈현동, ㅅ옷가게)

"규제를 너무 많이 하면 하루 벌고 하루 사는 사람들은 그걸 맞출 수 없어. 지금 하고 있는 대출 정책은 문턱이 너무 높지." (갈현동, ㅁ미용실)

"TV에선 누구나 쉽게 소상공인 대출 받을 수 있다는 듯이 나오는데 실제로 받으러 가면 까다로워요. 한 달 전에 신청한 대출 관련해서 연락을 받았는데, 현금서비스 내역이 많아서 처리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미리 현금서비스 내역을 정리하고 갔는데 서류상으로 완결이 나지 않아서 대출승인이 취소가 됐어. 너무 허탈하죠. 문서상으로 확실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건 아는데 그렇다고 죄인처럼 대하는 게 너무 속상했어요.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은행권 문턱이 너무 높아요." (갈현동, ㅇ옷가게)
 
앞으로 위기가 더욱 길어지고 커질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진짜 필요한 대책은 무엇일까? 상인들 사이에서도, 이제 재난 소득과 같은 직접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상인들 역시 생계비가 막막한 당사자일 뿐 아니라, 현재의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국민 모두에게 재난 소득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생계비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야... 재난기본소득 100만원 즉시 지급, 이런 이야기처럼 직접 지원이 꼭 좀 되면 좋겠어." (불광동, ㅂ홍삼)

"재난소득 액수도 거의 생색내기 수준으로 너무 적잖아요. 나라가 하는 것을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어요." (대조동 ㅇ이불가게)

"정부가 재난소득지원을 지속적으로 해야 경기가 살아 날 텐데 한시적으로 일회성 지급은 반짝하고 말 거예요." (대조시장, ㅊ도매)
 
코로나 민생·일자리 지킴이 은평주민연대(준)는 지난 3월 중순부터 실태조사와 대책위 가입을 진행했다. 주민연대가 상인들을 만난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인사를 나누었던 무수히 많은 가게들이 연이어 문을 닫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

사실 코로나19로 인한 생계의 위협은 비단 상인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경제위기는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 모두의 위기가 된다. 상인들의 생계위기는 지역상권이 살아야 가능하고, 국민의 경제위기는 노동자가 일자리로부터 밀려나지 않을 때 가능하다.

지금 위기의 핵심은, 재난은 아래로부터 오고 있는데 지원은 위부터 가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온몸으로 재난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들은 대부분 실질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경제 활성화"의 방향은 대기업 살리기-법인세 인하, 정리해고 요건 완화 등-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 국가의 재난대책의 핵심이 경제 활성화라면 이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영세자영업자, 노동자들에게 가장 먼저 시행되어야 한다.

또한, 각자 알아서 살아남거나 살아남지 못하는 이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서, 지역공동체가 함께 힘을 합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내가 속해 있는 "은평주민연대(준)"가 앞으로 모색할 일은 국가의 직접적 재난대책 즉각 시행, 지역공동체의 상생의 모색 등이다.

태그:#코로나19, #재난소득, #영세상인, #자영업자, #은평주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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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오월 공인노무사. <세상을 바꾸는 2022 대선공동행동>, <사라진 노동찾기 대선행동단>에서 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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