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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는 세월호 생존자 24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월호의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안고 매일같이 안정제와 수면제로 잠을 청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배를 타고, 화물차를 끌며 제주와 육지를 오가는 이들은 오늘도 세월호의 악몽을 꾸며 살아갑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6년, 아직도 그날의 참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실어보려 합니다.[편집자말]
오용선(1962년생)씨는 화물 기사들 중에서 큰 형님으로 통한다. 가장 나이가 많은 탓도 있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 후 제주도 세월호 화물차·생존자 대책위원장을 맡아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오씨 역시 사고 후유증으로 한동안 정신적 고통을 치료하기 위해 약물치료를 받았다. 그날의 악몽을 잊기 위해 육지와 제주도를 오가는 화물차를 더 이상 몰지 않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화물기사다.

지난 17일 그와 서귀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최근 오씨는 제주세월호생존자와그들을지지하는모임'(아래 제생지) 대표를 맡아 여기저기 세월호 6주기 관련 인터뷰를 하며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따라 '당일 예약'이 됐던 배
 
 폐기물차량 앞에서 오용선 대표. 이제는 배를 타지 않는 화물차를 몰고 있다는 오 대표.
 폐기물차량 앞에서 오용선 대표. 이제는 배를 타지 않는 화물차를 몰고 있다는 오 대표.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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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어떻게 지내시나요?
"요즘은 화물차 대신에 5t, 11t 롤차를 몰고 있어요. 롤차는 '쓰레기차'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녹색으로 된 쓰레기 폐기물 차를 운영합니다. 00개발이라는 회사 차인데, 건설현장에서 중간처리업체로 폐기물을 수송하는 일을 해요. 폐기물을 싣고 제주시로 갈 때도 있고, 서귀포로 갈 때도 있습니다. 출근 퇴근 시간이 아주 정확해요. 7시에 출근했다가 오후 6시에 퇴근합니다."

 - 일하는 것은 좀 어떠세요.
"지금은 몸이 좀 안 좋아요. 특히 허리가 안 좋아요. 그래서 오래 걷거나 무리한 일을 하기는 좀 어려운 상태입니다."
 
 근무 중인 서귀포에서 기념사진 찍는 오용선 대표. 그는 현재 폐기물처리업체에서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다.
 근무 중인 서귀포에서 기념사진 찍는 오용선 대표. 그는 현재 폐기물처리업체에서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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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물차 운전은 얼마나 하신 건가요?
"화물차 운전은 오래됐죠. 1989년 12월부터 했으니까요. 처음에는 5t 라이노라는 화물차를 몰고 다녔어요. 제 차가 아닌 사촌동생 차였는데 사촌동생이 사고가 나서 운전을 할 수 없게 되어, 제가 사촌동생 대신 차를 몰게 된 것이죠. 제주에서 밀감 옮기는 일부터, 육지로 화물을 옮기는 일까지 했어요.

그 당시는 밀감 화물 일 5개월 정도 하면 화물차 값을 뽑는 그런 좋은 시절이었어요. 그렇게 일하다가 IMF 때 화물차 값이 똥값이 되자 제가 5백만 원 주고 11t 차를 샀어요. 나중에 그 차를 1천만 원에 팔았으니 아주 싸게 산 것이죠. 그때는 제주 대정 마늘을 옮기는 일을 했는데 화물 값이 좋았어요. 그때는 t당 7~8만 원 할 때예요. 한 번 실을 때 30~40t씩 실어요. 그럼 돈이 얼마예요. 돈 많이 벌었죠.

2003년도엔 25t 화물차를 임대해서 일을 했어요. 그리고 2009년도에 회사로 들어가서 화물기사로 일을 시작했어요. 겨울에는 제주 감귤을 수송하는 일을 했고, 감귤이 없는 때는 일반 짐을 싣고 육지로 갑니다. 대부분 고정적인 짐이 있었는데 반코팅이라고 빨간 장갑을 싣고 육지로 나갔다가, 내려올 때는 라텍스장갑, 완전 코팅장갑, 순면장갑 등을 가지고 옵니다. 그 화물차를 타다가 세월호 사고를 당한 거죠."

- 세월호에 탑승했던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나요?
"원래는 인천에서 짐을 싣고, 또 경기도 광주로 가서 짐을 실어서 녹동항(고흥)에 가기로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일정이 변경되어 경기도 광주로 갔다가 인천으로 가게 되었죠. 그래서 급하게 오전 10시에 인천항에 전화를 해서 배가 있는지 알아보니 그날따라 배가 있다는 거예요. 원래 당일 예약이 거의 안 되거든요. 그런데 그날따라 인천배가 예약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인천으로 간 것이죠. 인천항에 가니 동수랑 화물기사 동생들 몇이 있더라고요.

인천부두 앞에서 기사들과 밥을 먹고 있는데 오후 5시쯤 선사에서 전화가 왔어요. 빨리 배로 와서 차를 실으라고... 차를 몰고 배에 오르는데 안개가 가뜩 끼었어요. 화물 기사 중 세월호 선장을 아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날 선장이 휴가를 가서 부선장(대리선장)인 이준석이 배를 운항한다더라고요. 이래저래 좋지 않은 조건이 다 물려 버린 것이죠. 안개 때문에 출항 못 하다가 결국 밤 9시 넘어서 안개가 좀 걷히니 배가 출항을 했죠."

어깨 수술에 단기 기억상실증도... 세월호 참사 후유증
  
 세월호 탈출 당시 세월호 선내 그림을 그려보이는 오용선 대표
 세월호 탈출 당시 세월호 선내 그림을 그려보이는 오용선 대표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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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항 후 사고가 날 때까지 어떻게 계셨나요.
"세월호 안에 기사들 객실은 3층에 따로 있어요. 그곳에서 화투도 치고, 포커도 치면서 놀아요. 방 가운데 화장실, 샤워실이 있고 그 양 옆으로 침대 4개씩 8개가 있었어요. 아침에 나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이 쑤시면서 객실로 들어가는 도중이었는데 갑자기 배가 와당탕하면서 기울었어요. 그때 넘어지면서 왼쪽 어깨를 부딪쳤는데 정신을 잠깐 잃었어요. 금방 정신을 차려보니 아무도 없었어요. 복도로 나와 화물기사 동생들에게 섬이 보이냐고 물어봤더니 섬은 잘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그곳이 어딘지 전혀 몰랐어요."

- 배가 기울어지고 곧바로 나오지 않으셨어요?
"처음 배 기울고 나서 첫 번째 안내방송이 나왔는데 '움직이지 말고 가만있으라'는 말이었어요. 그리고 다시 약 10분 정도 지나자 '손님 여러분 움직이지 마세요. 한쪽으로 움직이면 배가 기울기 때문에 움직이지 말아 달라'고 했어요. 다시 약 30분 정도 지나서 전기가 잠깐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는데, 다시 방송에서 '가만있으라'고 했어요.

그러고는 화물 동생들이 말하길, 차량이 들어가고 나가는 램프가 약 2m 정도 남기고 다 잠겼다는 겁니다. 그때까지 화물기사가 15명 정도 램프 쪽에 있었거든요. 우리는 난간 손잡이를 잡고 버티고 있었죠.

다행히 배가 완전히 넘어가기 전에 해경 보트가 와서 세 번인가 왔다갔다하면서 기사를 구해서 모두 살았죠. 기사들은 거의 마지막에 나왔어요. 우리 기사들 나오고 뒤돌아 세월호를 보니까 배가 침몰하면서 배에서 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데 거기로 사람들이 막 뛰어 나오더라고요. 저 멀리서 김동수가 어선 배를 타고서 물에 빠진 사람들을 건지고 있었고요."

- 탈출하셔서 어디로 이동하셨어요?
"나는 서거차도로 갔어요. 해경123정 타고 팽목항으로 간 사람도 있고, 나처럼 서거차도로 간 사람도 있었어요. 우리를 구조한 배가 서거차도 배였거든요. 서거차도에서 다시 팽목항으로 농협 바지선을 타고 간 것이 오후 5시 정도였는데 약 3시간 정도 걸리더라고요. 저와 같이 서거차도로 간 사람은 박세홍, 전창진을 비롯한 10여 명이었어요."

- 구조되신 후에 적절한 치료를 받으셨어요?
"치료는 무슨요. 팽목항에 도착해서 버스로 진도 체육관으로 이동했는데 버스에서 인원 확인하고 병원 갈 사람을 별도로 분리하더라고요. 우리는 화물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진도체육관에서 밤 9시까지 있다가 제주도 기사들끼리 모여서 회의를 했어요. 서울로 갈지, 제주로 갈지 논의를 했는데, 기사들 모두 해남 가서 오전 배를 타고 제주로 가자 그렇게 의견이 모였어요. 그래서 진도군수를 찾아가서 사정을 하고, 차용증을 써주고 10만 원씩 빌려, 우수영에서 잠을 자고 아침 배를 타고 제주로 왔죠.

제주 도착하니 대한통운 직원이 나와서 병원을 지정해주는데 중앙병원, 한국병원, S-중앙병원 세 군데만 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화물 기사들은 각자 병원에 흩어져 입원을 했죠. 나는 16일 정도 입원했다가 나왔어요. 퇴원 후에 정신과 약을 타야 하는데 제주에 있는 병원이 너무 멀었어요. 그래서 서귀포에 있는 정신과 병원에 다닌다고 하고, 서귀포 정신과 병원과 보건소만 다니게 되었습니다."

- 정신과 약은 언제까지 드셨어요?
"2016년 1월까지 먹고 안 먹었어요. 정신과 약을 먹으니 몸이 안 좋아지는 걸 느끼겠더라고요. 의사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약을 조금씩 줄이자고 해서 약을 줄이면서 잠을 자는 연습을 했어요. 잠이 오지 않아도 불을 끄고 누웠어요. 그러다 보니 규칙적으로 잠을 자게 되었고, 약도 자연스럽게 끊게 되었죠."

- 화물차 보상은 제대로 받으셨나요?
"전부 보상받았죠. 나는 회사 차라서 보상은 받지 않았어요. 세월호 관련해서는 국가배상을 받았는데, 받고 싶어 받은 것이 아니라 '도장 찍지 않으면 나중에 아무것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얼떨결에 밀려 도장을 찍어버렸죠."

- 세월호 사고 이후 가장 큰 후유증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사실 저는 저 스스로 후유증을 이겨내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물론 힘든 느낌은 아직도 있죠. 몸이 좋지 않으니 옛날처럼 활동하지는 못해요. 그래도 꾸준히 운동을 해서 체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올해는 4월이 되니까 마음이 다른 때보다 좀 어수선해요. 이번 달은 유난히 세월호 때 생각이 나더라고요."

- 사고 직후 단기기억상실증세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지금도 조금 그래요. 조금 전 일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세월호 사고 이후에 그런 증상이 생겼어요."

- 몸과 마음에 세월호를 새겼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무슨 의미인가요?
"세월호 사고날 때 어깨를 부딪쳐서 어깨가 너무 아프더라고요. 2017년에 결국 어깨 수술을 했으니, 그 수술이 세월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술한 어깨를 보면 늘 세월호가 생각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평생 세월호 기억을 몸에 새긴 꼴이 되어 버린 것이죠." 

"아픔에 귀 기울여 주세요"
 
 인터뷰중인 오용선 대표
 인터뷰중인 오용선 대표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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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들과 지내는 것은 어떠신가요? 감정표현이 잘 되시는지요?
"전 원래 결혼하지 않고 형제들과 살았어요. 동생들하고 살다가 남동생에게 아파트를 주고 원룸으로 이사를 했어요. 혼자 사니까 좀 외로움을 많이 타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소년소녀가장을 도울 수 있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회사 동료들이 동사무소에 가면 도와줄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누가 알려줘서 소년소녀가장들을 도울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세월호 6주기 기자회견에 참석중인 세월호 생존자들
 세월호 6주기 기자회견에 참석중인 세월호 생존자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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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위에서 세월호, 세월호 생존자를 어떻게 보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요즘은 일 끝나면 사람들 모여 있는 곳에 가지 않으려 해요. 퇴근 후 바로 운동하러 갔다가 곧장 집으로 가죠.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어요. 하지만 아직도 세월호 이야기냐고 하는 사람도 있고, 저를 걱정해 주는 사람도 있고 각양각색입니다.

화물 생존 기사들끼리 만나면 세월호 이야기를 곧잘 해요. 그런데 우리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일반인들 있는 곳에서는 말을 잘 하려고 하지 않아요."

- 제생지에 참여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있나요?
"우리는 그 배에 탔던 생존자잖아요.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세월호에 탑승했다 살아난 우리의 이야기를 더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생존자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을 공유해 서로 호응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방법이 좋을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더 노력해서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제생지에 참여하게 된 이유였죠."
  
 세월호 6주기 행사를 마친뒤 뒷풀이를 갖는 세월호 생존화물기사들
 세월호 6주기 행사를 마친뒤 뒷풀이를 갖는 세월호 생존화물기사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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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에게 세월호란 어떤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으신가요?
"트라우마라는 것이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당신도 겪어보면 이 고통을 알게 될 것이다. 세월호로 아직도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세월호에 대해 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생존자들 중에 건강하게 사는 사람이 몇 사람 안 될 겁니다. 그나마 내가 싱싱한 상태입니다. 우리의 아픔에 귀 기울여서 얘기를 좀 들어주었으면 좋겠어요.

옛날 화물 기사 생활을 하다 보면 차가 고장 나는 일이 자주 있어요. 차량을 길가에 세우고 고치다 보면 지나가던 제주 화물차들이 다 같이 서서 함께 차를 고쳐주고는 했습니다. 제주도 화물차들끼리는 의리가 좋았습니다. 그런 기사들의 마음으로 고통과 어려움을 서로 나누고 살아가면 제생지도 잘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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