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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정부는 4월 19일 낮 12시를 기준으로 코로나19 확진자 596명이 추가로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싱가포르의 전체 확진자 수는 6588명으로, 인도네시아 (6575명)와 필리핀 (6259명)을 넘어 동남아시아 국가 중 가장 많아졌다. 싱가포르 인구가 57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인구 대비로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방역 모범국이라고 불리던 싱가포르가 이처럼 갑자기 동남아시아 최대 감염국가가 된 건 이주노동자가 집단으로 거주하는 기숙사에서 발생한 집단감염이 주된 원인이다. 아래 표에서 붉은 색으로 표시된 막대가 기숙사에서 발생한 확진자만 따로 표시한 것이다.

기숙사에서 번진 코로나19
 
싱가포르 코로나19 확진자 표. 4월부터 이주노동자의 감염 (붉은 색)이 급격하게 늘어 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싱가포르 코로나19 확진자 표. 4월부터 이주노동자의 감염 (붉은 색)이 급격하게 늘어 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싱가포르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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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보건국의 (역학조사 결과가 포함된) 공식 집계가 나온 4월 18일까지의 상황을 보면 전체 확진자 5992명 가운데 69.5%인 4162명이 이주노동자 기숙사에서 나왔다. 하루 확진자 수가 942명으로 사태 시작 후 하루 단위로 가장 많이 발생한 4월 18일의 경우 기숙사에서만 893명이 나왔다.

싱가포르에는 모두 43개의 이주노동자 기숙사가 있는데 이 중 열두 곳이 집단 감염 발생으로 건물 전체를 격리한 채 검사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검사를 다 마칠 때까지 추가 확진자가 더 발생할 거라고 예상된다.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S11 기숙사의 외부 모습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S11 기숙사의 외부 모습
ⓒ 이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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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풍골 지역에 위치한 S11기숙사의 경우 이 곳 한군데서만 1375명의 확진자가 발생해서 단일 건물로는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왔다. 지난 3월 30일 처음으로 4명의 확진자가 이 기숙사에서 나온 후 불과 19일만에 이처럼 급격하게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코로나19의 전염 속도와 함께 싱가포르 이주노동자 기숙사의 열악한 시설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렸다.

2019년 기준으로 싱가포르의 인구는 570만 명이다. 그 중 실제 싱가포르 시민권자는 350만 명 정도고, 영주권자 수가 50만 명 정도 된다. 나머지 170만 명은 장기 혹은 단기로 싱가포르에 일하러 온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 그리고 유학생과 가족이다.

이 170만 명 중에 싱가포르에서 취업허가증을(Work Permit Holder) 받아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수가 98만 명, 이 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을 하는 25만 명 정도를 제외한 73만 명 정도가 이번 집단 감염 사태의 한 가운데 있다.
 
싱가포르 인구 구성. 싱가포르 전체인구에서 이주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은 것을 알 수가 있다.
 싱가포르 인구 구성. 싱가포르 전체인구에서 이주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은 것을 알 수가 있다.
ⓒ 싱가포르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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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를 깎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모습. 이들은 주로 싱가포르인들이 꺼리는 험한 일들을 도맡아 한다.
 잔디를 깎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모습. 이들은 주로 싱가포르인들이 꺼리는 험한 일들을 도맡아 한다.
ⓒ 이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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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대부분 중국, 인도, 미얀마 등에서 온 노동자인데 주로 건설현장이나 제조업 공장, 식당, 청소일 등 주로 싱가포르인들이 하기 꺼려 하는 일들을 도맡아 하고 있다. 취업허가증의 경우 기본적으로 가족들은 함께 올 수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회사에서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머문다.

기숙사는 건물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한 방에 네 명에서 여덟 명 정도가 함께 생활하고, 세면장과 화장실을 공용으로 사용하는데 그 시설이 열악하다는 불만이 많이 제기되었다. 출퇴근은 보통 트럭 짐칸에 나란히 앉아서 회사 혹은 건설 현장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

거리두기를 할 수 없던 사람들
 
S11기숙사에 자가격리 중인 노동자가 바깥을 바라 보고 서 있는 모습
 S11기숙사에 자가격리 중인 노동자가 바깥을 바라 보고 서 있는 모습
ⓒ 이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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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정부의 역학조사에 따르면, 인도인들이 주로 방문하는 무스타파 쇼핑센터에서 감염된 노동자가 기숙사에서 다른 노동자들에게 전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좁은 곳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출퇴근할 때도 트럭 짐칸에 바짝 붙어서 하다 보니 사태 초기부터 싱가포르가 역점을 두고 실시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았다.

실제로 전체 확진자 가운데 이주노동자 수를 제외하면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난 4월에도 하루 30명에서 4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4월 초부터 "서킷 브레이커"를 시행하며 사업장과 학교 문을 닫고, 사적인 모임마저 다 금지시켰지만, 정작 집단 감염에 취약한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대응이 늦어 지금과 같은 대규모 확진자 발생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기숙사에서의 집단 감염이 확산된 후에야 싱가포르 정부는 증상이 없는 노동자들을 엑스포 전시장 등에 임시로 마련한 숙소로 옮기고, 출퇴근용으로 쓰는 트럭 짐칸에도 1미터씩 띄어서 앉을 수 있도록 지침을 마련했다. 19일에는 창이이스트 지역에 추가로 기숙사를 신축하기로 했으며, 기존의 건물들도 개보수하겠다고 밝혔다.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 이주노동자 가운데서도 특히 감염자가 많이 발생한 건설현장 노동자와 가족 28만4300명에 대해 4월 20일부터 2주간 자가격리를 하도록 지시했다. 이로써 향후 2주간 싱가포르 내 모든 건설 현장이 멈춰 서게 됐다.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이주노동자를 활용해 산업 전체의 밑바닥을 지탱해온 싱가포르가 코로나19 때문에 예기치 못한 큰 도전에 직면했다. 최소한 지금처럼 동남아시아의 값싼 노동력을 불러 모아 집단 거주 시설에 수용하며 일을 시키는 방식은 지속되기 어렵게 됐다. 코로나19가 각 나라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들춰 내고 있는 중이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284,300명 전체에 대한 2주간 자가격리 실시로 모든 건설현장이 일시멈춤하게 됐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284,300명 전체에 대한 2주간 자가격리 실시로 모든 건설현장이 일시멈춤하게 됐다.
ⓒ 이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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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싱가포르,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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