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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에 나비가 날아와 나풀거리면 아름다움을 넘어 평화, 한가로움의 행복, 감탄, 곧 천국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봄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학교에도 봄이 왔다. 하지만 아름답지 않다. 학교는 아이들의 꿈이 영글고, 웃음소리가 들려야 아름답다. 아이의 꿈과 웃음이 없는 학교는 하나의 건물이다.

나는 부산국제외고 3학년 담임이다. 우리 아이들의 학번과 번호를 다 외우고 있다.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 진로와 자율 활동 시간에 아이들의 관심 분야와 독서 활동을 하였기에 우리 아이들이 무엇에 관심 있고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 얼굴은 자신이 없다.
  
힘든 상황에 놓인 아이들을 위한 위로
  
문제지와 OMR 카드를 개별 포장하고 있다.
 문제지와 OMR 카드를 개별 포장하고 있다.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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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당일 학생들을 격려하려고 간식을 포장하고 있다.
 시험 당일 학생들을 격려하려고 간식을 포장하고 있다.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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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명 중 111명의 아이가 3월 학력평가 문제지를 수령하기 위해 학교로 온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어떻게 맞이할까를 두고 생각이 많았다. 아이들을 토닥토닥 다독여 주고 싶은 마음은 넘쳐나지만,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먼저 아이들을 격려하는 '힘내자! 우리 부산국제외고 15기 해내자!'라는 현수막을 교문에 걸고, 현관 입구 현수막에는 128명의 이름을 새겼다. 그들에게 전해 줄 문제지와 OMR카드를 개인용 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오답 정리 노트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먹을 간식도 조금 마련하여 하나하나 포장했다. 따뜻한 마음을 담은 장미꽃 한 송이도 준비했다.
    
문제지 수령하는 학생들을 교사가 격려하고 있다.
 문제지 수령하는 학생들을 교사가 격려하고 있다.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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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은 "그동안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 걱정에 하루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학교는 늘 너희들과 함께하니 '힘내자'라는 바람을 담고 싶어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아이들도 여기에 화답했다. "선생님들께서 다 나와 응원해 주신 덕분에 잠도 다 달아나고 시험도 열심히 치를 것 같다" 등의 문자가 날아왔다. 학부모에게서도 "정성스러운 선물에 아이들이 감동했네요. 열심히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는 문자가 왔다.
   
학교 믿어준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다
 
문제지 받아서 귀가하는 학생
 문제지 받아서 귀가하는 학생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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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물면 유난히 아픈 손가락이 있다. 올해 우리 학교 3학년 아이들이 아픈 손가락이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할 때 정원은 200명이었다. 그런데 현재는 128명이다.

2018학년도에 학생들에게 더욱 더 넓은 선택권을 주는 2015 교육과정 도입되면서 우리 학교는 학교 전환을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했다. 어려운 선택의 갈림길에서 학교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현재 외고의 교육과정으로는 학생들의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해 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래를 열어갈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부득이 일반계로 전환하는 어려운 결정을 하였다.

학부모님들은 일반계로 전환을 반대하면서 그 결정을 취소할 것을 학교에 강력하게 요구하였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70여 명의 학생이 전학을 갔다.

학교에서 미래의 교육을 위해 일반계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학생과 학부모에게 거듭 말씀드리고, 외고로 입학한 학생들에게 이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쏟아 외고로서 마무리를 잘하겠다고 약속하면서 학생-학부모들과 의사소통을 지속해 나갔다.

학년별 전용 자습실을 더 쾌적하게 만들고 방과후학교 강좌를 무료로 하는 동시에 알찬 강좌를 준비하는 등 학생 개개인에게도 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학생들은 최선을 다해 학업에 열중하고, 학부모님 또한 학교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면서 학교는 안정을 찾았다. 그 결과 2020 대입에서는 좋은 결과를 거두었다.

현재 남아 있는 128명의 우리 아이들은 학교를 믿고 끝까지 함께한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에게 마지막 외고로서 자존감을 지켜 주고 싶고, 10대를 아름답게 마무리 짓게 하고 싶다. 학교는 우리 아이들의 꿈이 영글어 가고 웃음으로 가득하여야 한다.

코로나19는 사회적 거리를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과 마음 거리는 가까워지고 있다.

태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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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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