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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난 친구가 없었다. 슬플 것도 없었다. 엄마가 한 살 터울의 언니와 비교하며 '너는 왜 친구랑 놀지 않니' 할 때마다 나의 친구 없음을 상기했을 뿐, 딱히 그 필요나 아쉬움을 느끼지 못했다. 가져본 적이 없으니 중요한 줄도 몰랐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고 고학년으로 올라가며 내게도 자연스레 친구가 생겼다. 그렇게 사귀어서 지금까지 만나는 초등학교 동창도 여럿 있으니 이 정도면 무난했다고 해도 될까. 없을 땐 몰랐는데 생기고 보니, 친구란 참 소중한 존재였다. 이제는 친구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 후 청소년기를 보내며 집단 따돌림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어 본 기억은 없다. 하지만 삼삼오오 뭉쳐 다니며 어울리던 친구들 무리에서 갑작스럽게 내처진 적은 있다. 당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려 무던히도 애썼다. 상처 받았음이 드러나면 더 비참할 것 같아서. 다행히도 금세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며 별 탈 없이 그 시기를 지나 왔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약간은 가슴이 쓰려 말하기가 어렵다. 아직도 그 일은 상처인가 보다.

<나의 가해자들에게>를 보며 잊고 있던 옛 일들이 떠올라 몇 번이고 멈칫했다. 이 책의 부제는 '학교 폭력의 기억을 안고 어른이 된 그들과의 인터뷰'. 동영상으로 제작되어 반향을 일으켰던 '왕따였던 어른들'을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펼치기도 전에 가슴이 울컥했다. 
 
"이 책은 같은 아픔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동시에, 아무렇지 않게 타인을 가해하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책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우리의 공감대였다."(8-9쪽, 시작하기 전에)
 
 <나의 가해자들에게> 책표지
 <나의 가해자들에게> 책표지
ⓒ 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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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펼쳐 놓은 인터뷰이들의 진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이 책이 더 많이 읽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어설픈 리뷰라도 쓰기로 마음 먹었다. 마음과 달리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책을 읽으며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지, 또 내 벗들은 어떤 학창 시절을 보내 왔는지. 어쩌면 누군가는 가해자였을 것이고, 또 피해자였을 것이고, 대부분은 방관자였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기억을 안고 어른이 되었을까. 
 
"출연자 10명을 포함한 402명의 응답자 중 96퍼센트가 그때의 기억이 현재의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했다. 소외를 경험한 이들 대부분이 무너졌던 존엄성이 회복되지 않은 채 어른이 되어 버린 것이다. 크고 작은 트라우마와 함께. 그렇다면 우리는 이 트라우마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13쪽)

피해자들은 말한다. 욕설과 비난, 야유, 심지어 폭행을 당해야 했다고. 거기엔 대체로 이유가 없었고, 이유가 있다 한들 합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던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대로 먹잇감이 되고 만다.

인터뷰이들은 말한다. 스스로가 불쌍한 것이 싫어서, 친구들의 욕설을 내면화 해 자신이 이렇게 당해도 되는 인간이라고 생각해 왔다고. 피해자였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말엔 가슴이 아리다.

누군가는 고백한다. 학교를 졸업한 지 몇 해가 지났지만 이제 아무도 믿을 수가 없노라고. 오죽하면 당시 괴롭힘을 당했던 때보다 지금 이것이 더 힘들다고 말한다. 평생을 아무도 믿지 못한 채 살게 될 테니까. 학창시절의 경험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번은 '내가 어른이 되어서 왕따를 당했다면 지금과 같았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아닐 겁니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커 나갈지 만들어지는 시기에 당했던 그 경험은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빼앗아가 버렸습니다."(263쪽)

지금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겐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아파본 적 있는 책 속 인터뷰이들은 말한다. 남의 상처를 재단할 수는 없기에 차마 어쭙잖은 동정이나 훈계를 하지 못하겠노라고. 다만 아파도 버텨주어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나 역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할 뿐이다. 집단 따돌림에 대한 법적 조치를 주장해야 할까,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야 할까. 나의 어설픈 말이 한줌의 위로는 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과연 나에겐 그럴 자격이 있을까. 

할 말을 찾지 못한 내게 <친절에 대하여>가 보인다. 이는 맨부커상 수상 작가인 조지 손더스가 시러큐스 대학교의 어느 졸업식 때 축사한 것을 엮은 것으로, 그는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청춘들에게 꿈이나 야망이 아닌, '친절'을 강조한다.

당시 육십을 바라보던 그가, 중학교 1학년 때 놀림받던 아이에게 친절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뭉클하다. 그는 다행히도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더 친절해진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건 회개일지도 모른다고.

나 역시 기억하는 불친절과 기억하지 못하는 불친절들을 더해 회개할 일이 많아 마음이 무겁다. 어느 집단에서든 마찬가지지만 부디 청소년들이여, 회개할 일을 짓지 않았으면 한다. 코로나19 국면이 진정되고 다시 일상을 되찾을 학교에, 부디 폭력만은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나 또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힘든 세월을 이겨낸 사람들에게, 지금도 이겨내고 있을 이들에게. 당신은 결코 지지 않았다. 이름 모를 당신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나의 가해자들에게 - 학교 폭력의 기억을 안고 어른이 된 그들과의 인터뷰

씨리얼 (지은이), 알에이치코리아(RHK)(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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