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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아낀다.'

MBTI 성격 검사 중 'ISTJ' 유형에 대한 설명이다. 한국인 4명 중 1명이 이 성격으로, 한국에서 가장 흔한 유형이다. 해외는 다르다. 'E'(Extroversion)로 시작하는 유형이 세계 인구 70%를 넘는다. E는 외향을 뜻한다. 기본적으로 사교성을 띠며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말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질문할 수 있다. 왜 한국인은 다른 나라 사람과 달리 유독 말을 아낄까?

<경향신문> 보도로 알려진 한 여성 경찰의 유산은, 한국인이 말을 아끼는 이유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여경은 상사에게 '출산 휴가를 고려해 기존 근무처에 남고 싶다'고 말했다. 상사는 '우리 조직에서 임신하면 죄인'이라는 취지로 답했다고 전해진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말하면, 돌아오는 건 격려가 아닌 불이익이다. 이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기에 우린 말하지 않는다.

엄기호의 <단속사회>엔 한국인을 입 닫게 하는 더 많은 사례가 제시돼 있다. 학교 폭력 피해자가 고통을 말하면 선생님은 "뭘 그리 심하게 말하냐"고 반응한다(48쪽). 상사는 공적 의견을 내놓는 후배를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라 여긴다(182쪽). 회사는 더 좋은 노동을 말한 노동자 최강서에게 막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214쪽). 우리 사회에선 이야기를 하면 해결책이 보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이익을 당한다.
 
ⓒ 창비
단속하며 성장이 멈춰버린 한국 사회

피해 보기 싫은 개인은 아예 입을 닫아 버린다. 자기 입을 '단속'한다. 단속이 해제될 땐, 자기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과 대화할 때 정도다. 영 답답하면 얼굴 맞댈 일 없는 SNS에 독백을 내뱉는다. 자신과 다른 부류라 여겨지는 이와는 대화도 교류도 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를 '동일성에 대한 과잉접속', '타자성에 대한 과잉단속'이라 표현한다.

자신을 단속하게 된 우리는, 다른 사람과 마주하는 일이 적어졌다. 그도 그럴진대 낯선 존재인 성 소수자, 노동자, 열등생 등은 더더욱 대면하려 하지 않는다. 배제할 뿐이다. 마포구청은 LGBT가 내건 현수막을 철거했다. 노동자는 가난하다며 무시된다. 열등생에겐 친구는 물론 학교 선생님조차 관심 가져 주지 않는다. 타자성에 대한 과잉단속이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성장은 낯선 이와의 만남, 새로운 환경과의 접촉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여행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여행에서 낯선 사람을 마주하고 새로운 환경을 목격하며 한층 성장한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와 다른 관점을 지닌 사람, 나와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을 마주해야 배울 수 있다. 낯섦을 마주하지 않는 우리 사회는, 그만큼의 성장 기회도 잃었다.

저자는 이런 사회를 참조점이 사라진 사회라 말한다. 누군가의 경험이 내게 참조점이 되고 내 경험이 다른 이에게 참조점이 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서로가 단절된 이 사회에선 경험의 전승도 지혜의 공유도 없다. 즉 파편화된 한국의 현실에서 성숙한 사회를 꿈꾸긴 어렵다.

단속사회를 벗어나는 길, '경청'

어떻게 해야 우린 다시 소통하며 성장할 수 있을까. 저자는 진지한 경청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간단한 논리다. 듣지 않으면, 사람들은 말하지 않는다. 특히 성 소수자, 노동자, 열등생 등 사회적 약자에겐 들어줄 사람이 간절하다. 이들은 약자이기에 쉽게 무시당한다. 그만큼 누군가 진지하게 경청해줄 때야 소수자들을 입을 열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건 경청이 사적 언어를 공적 언어로 바꿔준단 점이다.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이 이를 보여준다. '우리 마을이 파괴되는 게 싫다'라는 밀양 주민의 말을, 사회운동가들은 흘려듣지 않고 경청했다. 고통이 밴 목소리를 진지하게 듣다 보면, 이를 단순한 '남'의 사적 문제로 치부하기 힘들어진다. 이렇게 '남'의 문제는 '나와 너'의 문제가 된다. 공통의 문제가 되자 밀양 주민의 말은 스쳐 가는 한 마디가 아닌, 공적 언어로써 정치적 힘을 갖게 됐다.

다시 여성 경찰의 말을 떠올린다.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기 위해선 우린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 임신, 출산, 경력 단절 이야기는 우리가 듣지 않는 이상 '남'의 말이다. 하지만 귀 기울이면 '나와 너'가 공유한 고민이 된다. 공적 해결을 모색하게 만든다. 이는 결국 내 아내, 딸도 가질 수 있는 고민을 제도로 해결하게끔 한다. 이때 우리 사회는 여성도 아이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사회로 한층 '성장'한다.

저자가 내놓은 단속사회에 대한 해결책 경청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그래서 아쉽지만, 그래서 수긍이 간다. 왁자지껄 한 사회를 꿈꾼다면, 이 책을 읽고 경청의 중요성을 상기해보길 추천한다.

단속사회 -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엄기호 지음, 창비(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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