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 스틸컷

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저녁을 먹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아들에게 물었다.

"만약 신생아 때 아기가 바뀌어서 친엄마가 따로 있으면 어떡할래?"

스무 살이 훌쩍 넘은 시크한 아들은 말했다. "이 나이에 친엄마가 따로 있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야? 엄마랑 살면서 가끔 그 엄마도 만나면 되지." 하긴 맞는 말이다. 근데 뭔가 기분이 나빠져서 "그니까, 그렇게 상관없으면 그 엄마랑 살면서 가끔 나를 만나러 오면 안 되겠니? 엄마 밥하기 너무 힘들어." 아들은 황당해하며 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물어봐서 자기를 괴롭히냐며 억울해한다.
 
출생의 비밀과 첫사랑 코드는 드라마의 단골 메뉴다. 하도 우려먹어서 식상할 만도 한데, 약간 다르게 변주될 뿐 아직도 먹히는 서사다. 특히 아침드라마.
 
여기 뻔해 보이는 영화가 개봉했다. 불치병, 옛사랑, 출생의 비밀 3종 세트가 차려진 <애프터 웨딩 인 뉴욕>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원작 <애프터 웨딩>(2006)을 할리우드 스타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의 감독이 믿고 보는 감독인 '수잔 비에르'다. 몇 해 전 수잔의 영화 <인 어 베러 월드>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나는 이후 그녀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수잔은 이 뻔한 3종 세트로 전혀 뻔하지 않은 이야기를 끌어냈었다.
 
과연, '수잔 감독의 이 명작을 어떻게 변주했을까?' 기대를 품고 극장으로 향했다. 결론은 원작 이상의 감동과 여운을 끌어냈다는 게 나의 한 줄 평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다시 벅차오른다. 미셀 윌리엄스와 줄리안 무어. 이 두 배우를 어떻게 설명할 도리가 없다. 대사 사이사이 행간을 살리는 귀신들. 표정과 몸짓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연기의 신들. 바트 프룬디치 감독이 리메이크한 이 영화는 원작과 달리 남녀주인공의 상황이 바뀌어 있는데, 개인적으론 바뀐 이 버전이 더 좋았다.
 
20년 만에 마주하게 된 헤어진 연인
 
 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 스틸컷

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인도에서 보육원을 운영 중인 이사벨(미셸 윌리엄스 분)은 뉴욕의 미디어 그룹 회장인 테레사(줄리안 무어 분)로부터 후원금을 줄 테니 뉴욕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는다. 후원하려면 그냥 후원금을 보낼 것이지, 뉴욕으로 오라 마라 하는 테레사가 마땅치 않지만, 당장 보육원 사정이 좋지 않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수밖에.
 
뉴욕으로 간 이사벨은 최고급 호텔에 리무진까지 보내준 테레사가 마뜩잖다. 이 정도 돈이면 당장 인도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 수십 명의 예방접종을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호화로운 생활에 돈을 쓰는 게 불편하다. 게다가 기부금을 얻기 위해 만난 테레사는 자꾸 기부 이야기를 매듭짓지 않고 외려 주말에 치러지는 자신의 딸 결혼식에 와 달라고 초청한다. 을의 입장인 이사벨은 마지못해 결혼식에 참가한다.
 
결혼식장에 도착해서 보니 20년 전 헤어진 연인인 오스카가 테레사의 남편이 되어있다. 점입가경, 결혼식을 치르는 딸 그레이스가 자신과 오스카가 낳아 입양을 보냈던 그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론 그레이스는 이사벨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테레사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이사벨을 부른 것이다. 원작을 모른다면, 테레사가 진짜 마더 테레사거나, 막 나가는 삼류로 빠지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20년간 자신이 키워온 딸의 결혼식에 친모를 불렀으니.
 
테레사가 이사벨을 부른 이유는 예상대로다. 테레사가 불치병에 걸려 곧 죽을 운명이기 때문이다. 테레사와 오스카 사이에는 그레이스 외에 열 살 정도 되는 쌍둥이 아들이 있다. 테레사는 자신의 빈자리를 이사벨이 메워주길 바란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미 성인이 된 딸에게 낳은 정이냐 기른 정이냐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친모 따라가겠다고, 혹은 길러준 엄마를 떠나지 않겠다고 울고불고할 어린아이가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고 당신이 친모든 아니든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지도 않다.
 
"그때는 너를 낳는 것까지가 내겐 최선이었어"

영화는 새로울 게 없어 보이는 스토리에 새로운 시각을 넣어 세련된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러니까 그레이스가 죽은 줄 알았던 생모가 살아 돌아왔을 때 생모에 대해 느끼는 혼란스러움과 그 존재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랄지, 이사벨이 옛 연인이었던 오스카를 다시 대면하고 느끼는 감정과 회한, 자신이 일궈놓은 가정을 다른 여인에게 넘기는 테레사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표현하는 방식이 그렇다.
 
그레이스는 이사벨을 만나 자신의 어린 시절 앨범을 보여준다. 이사벨은 자신이 보지 못했던 그레이스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보며 안타깝고 그레이스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가슴이 멘다. 이 모습을 보며 그레이스는 왜 나를 버렸냐고 묻는 대신 "저라면 아이를 버리지 못했을 것 같아요"라고 한다. 이사벨은 비통한 얼굴로 "나도 처음부터 그럴 계획은 아니었단다. 하지만 그때는 너를 낳는 것까지가 내겐 최선이었어"라고 말한다. 
 
이사벨은 18살의 나이에 그레이스를 갖게 되었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던 이사벨과 오스카는 그레이스를 입양 보내기로 한다. 그것이 딸의 행복을 위한 최선이라 믿었다. 그렇게 딸을 입양 보내고 이사벨과 오스카는 헤어진 채로 20년을 살았다. 그 사이 이사벨은 딸을 보낸 죄책감을 씻기라도 하듯 인도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봐왔다. 오스카는 입양 보낸 딸을 유예기간인 한 달 사이 다시 데려왔고, 이후 테레사를 만나 살아왔던 것이다.
 
18살의 이사벨을 그려보면, '아기를 버린 비정한 엄마'가 아니라 '아이를 낳는 것까지 최선'을 다한 엄마일 수 있다. 아이를 둘 낳아 키워본 나는 '아이를 낳는다는 것'의 무게를 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하는 이사벨의 말에 기어이 눈물이 떨어지고 말았다.
 
테레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도 매각하고 어마어마하게 큰돈을 재단을 설립해 인도 아이들을 돕는 데 쓰기로 사인한다. 조건은 이사벨이 인도로 돌아가지 않고 뉴욕에 남아 자신의 역할을 대신해 주는 것. 테레사는 후원금도 남편도 아이들도 모두 이사벨에게 넘기려 한다. 남겨진 가족들에겐 제일 나은 방법이고, 이 선택을 자신이 했음에도 마음속 번뇌가 만만치 않다. 평생 일궈온 가족을 넘겨야 하는 일,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일, 이사벨에 대한 질투심과 같은 격정적으로 출렁이는 마음을 줄리안 무어는 마치 신들린 듯 연기한다.
 
이사벨 또한 이 조건을 덜컥 받기가 어렵다. 그녀도 그녀대로 인도에서의 삶이 있고, 자식처럼 돌보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사벨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진한 여운을 준 영화 
 
 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 포스터

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 포스터 ⓒ 영화사 진진

 
죽음을 앞둔 테레사의 마지막 생일 파티에서 그녀가 말한다. "우리가 세상을 지나가는 걸까? 세상이 우릴 지나치는 걸까?" 2차 폭풍 눈물이 쏟아졌다. 스쳐 지나가는 세상에, 스쳐 지나지 못하고 억지로 붙잡느라 부질없는 짓을 했던 순간들이 날카롭게 다가왔다. 세상이 지나치든 내가 지나치든 그저 지나치는 거라는 것을 인지했다면, 나 자신에게도 다른 누군가에게도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레이스 역으로 출연한 가수이자 배우인 애비 퀸이 부른 주제가 'knew you for the moment'가 영화 끝에 흐르는데 이 곡이 주는 감성과 영화의 진한 여운이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붙잡는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멈춘 듯했지만, 봄은 왔고 5월, 가정의 달이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삶의 모양을 편견 없이 보기를 바라며 이 영화를 추천한다. 줄거리 이상의 여운이 남을 것이다. 참, 마스크와 손수건 필수!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애프터 웨딩 가족의 탄생 아름다운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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