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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집은 자영업을 하는 집도 아니고 직장 생활을 하는 세대도 아니다. 남편 나이 70세 때 일에서 손을 놓고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나이 든 두 사람이 조용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네 명의 딸들은 모두 출가해서 멀리 살고 있었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은 우리 집과는 무관한 줄만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세상에 전파되면서 예기치 않게 우리 집에도 도둑처럼 훅 치고 들어와 삶에 방향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

첫째 딸 가족은 뉴욕에 살고 있다. 뉴욕에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세계 최고의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할 즈음 나는 불안하고 두려움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잃는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얻는 것도 있다. 항상 밖에서 바쁘게만 생활하는 엄마와 부모 사이가 더 돈독해지는 변화를 느끼는 점도 있다.

엊그제, 따르르~ 하고 영상 전화가 왔다. 뉴욕 딸이구나 싶어 빨리 받으니 "할머니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하고 더듬거리며 손녀가 한국말을 한다. 깜짝 놀랐다. 손녀가 한국말을 하다니... 예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말만 했지 다른 말은 못 했다. 말을 못 하니 소통이 안 되고 답답했다.
 
손녀가 엄마에게 배운 한글을 우리부부에게 써서 보여준다
▲ 손녀가 처음 써준 한글 손녀가 엄마에게 배운 한글을 우리부부에게 써서 보여준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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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카일리가 나한테 한국말과 한글을 알려 달라고 했어"라고 딸이 말한다. 손녀가 화이트보드를 가져오더니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누나, 동생을 한글로 쓰고 사람 그림도 그리면서 보여준다.

한글을 알게 되면서 얼마나 보여주고 싶었을까? 뉴욕은 가까운 사람도 없는 곳, 학교에도 갈 수 없고 친구도 못 만나고 집에서만 살아내는 삶이 얼마나 외롭고 답답했을까. 하고 생각하니 반가우면서도 울컥했다. 그래 너희들도 절반은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은 한국 사람이다.

둘째 딸 가족은 일이 줄어 남는 시간을 활용해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텃밭을 하게 되었다. 각종 야채를 기르며 초보 농부 실습을 하게 되면서 텃밭 가꾸기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글도 써서 보내고 시민기자가 된 딸은 내 후배 기자다. 코로나19로 인해 오마이뉴스 가족 시민기자가 되다니... 예상치 못하는 일과 마주하게 되는 게 인생이다.

[관련기사 : "일이 없다"고 느낄 때, 벼락같이 찾아온 땅뙈기 http://omn.kr/1nd3v"]

어제는, 둘째 딸의 아들이 그동안 코로나19로 집에서 온라인 수업만 받다가 처음으로 대학 기숙사에 입소하는 날이었다. 둘째네는 서울에서 내려오고 우리는 군산에서 올라가 세종시에서 만났다. 집으로 출발하기 전 둘째 딸이 텃밭에서 수확한 상추와 야채를 건네주면서 "내가 처음 키운 상추니 맛있게 드셔봐" 하고 말을 한다.

집으로 돌아온 그날 저녁상부터 식탁이 싱그러워졌다. 자식이 손수 땀 흘려 가꾼 농산물이라서 애정이 더해져 맛있고 신기함마저 들었다. 딸이 가꾼 상추로 밥을 먹다니. 코로나19 이전 삶이었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항상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둘째 사위가 있어 딸은 텃밭도 가꾸고 어려움을 견뎌내는 힘이 된다.

셋째 딸 가족은 지금 나와 함께 살게 되었다. 겨울방학 때 한국에 방문차 나왔다가 코로나19라는 감염병으로 발이 묶여 중국에는 들어갈 수가 없게 됐다. 이번 기회에 한국에 정착하기로 하고 당분간 우리와 함께 살게 됐다. 딸네 가족과 살게 되면서 생활에 변화가 찾아왔다. 조용하기만 집안이 북적이고 사람 사는 집답다. 유쾌하고 발랄한 손주들이 주는 기쁨 또한 크다.

나이 들고 세상 밖 소식에 캄캄했던 나는 여러 나라 사람 사는 정보도, 시사에 밝은 사위를 통해 알게 되고 지난 아픈 삶의 내밀함까지도 알게 되어 더욱 애틋하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 동안 사위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었다!

[관련기사 : 코로나 난민, 바로 접니다 http://omn.kr/1n6iv]

끝으로 막내딸 가족. 막내는 직장에 나가고 사위는 자영업으로 작은 식당을 하지만 잘 견뎌내고 있다. 막내 사위는 밤에만 예약 손님을 받는 식당이라 손님이 끊이지 않아 다행이다. 사람 적은 곳을 찾다 보니 오히려 사람들이 잘 찾아온다고 한다. 요즘 세상은 우리 때와 달라도 뭔가 다른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정말 다행이다.

딸들의 삶은 코로나19 때문에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영향을 받으며 여러 빛깔로 삶을 헤쳐 나가고 있다. 우리 부부의 삶도 딸들 생활에 영향을 받는다. 조용하고 한가롭기만 했던 일상이 정신없이 바쁘다. 하루 세끼 밥을 챙기는 일은 쉽지만은 않다. 때론 힘이 부치는 날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일은 생각을 바꾸고 힘을 낸다.

나는 내 자리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내가 지금 밥을 하고 살림을 하는 것은 미래세대를 위해 봉사하는 일이라고,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을 위해 밥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자기 암시를 건다. 가족은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와야 가족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남편도 많이 도움을 준다.

사람 사는 일이,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다고 했다. 나는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인류에게 큰 비극이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얻은 교훈도 많다. 산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지만 사소한 즐거움을 잃지 않는 한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다.

인생이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한 끈으로 묶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가족은 서로 묶여 있는 끈으로 산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딸들 가족과 우리 부부에게 변화된 삶을 살도록 동기가 부여가 되었고 단단한 끈이 되었다.

코로나19 이후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나는 날마다 우리 가족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하고 글을 쓴다. 훗날 가정의 역사가 되리라고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코로나19, #딸들 변화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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