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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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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도쯤 나눔의 집에서 역사관 연구원으로 일할 때였다. 매일처럼 밀려드는 방문객들과 자원봉사자들로 늘 바쁜 일상을 보낼 때였다. 방문자를 관리하고, 역사관을 안내하고, 때로는 할머니들로부터 직접 증언을 듣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할머니와의 만남을 마련하며 바쁘게 지냈다. 적게는 몇 팀에서 많게는 십여 팀 넘는 방문객이 찾아올 때였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 방문객을 대하는 내 태도가 직장인처럼 되어 버렸다. 나눔의 집에 오는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무뎌지며 오늘은 또 몇 팀인가, 또 어디까지 설명해야 하나 하는 생각부터 앞섰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무리의 학생들과 조금 젊어(?) 보이는 교수가 나눔의 집을 찾아왔다. 안내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는 녹음기 틀 듯 튀어나오는 안내를 시작했다. 한국사를 전공한 교수라고 하니 내 설명에 불쑥 끼어들지 않을까 하고 걱정을 하면서 말이다. 그 교수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내 설명을 듣는 학생들은 중간중간 눈시울을 훔쳤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학생들은 사전에 학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충분히 토론하고 온 것이었다.

안내가 끝나자 학생들을 인솔한 교수는 좋은 안내를 해주어 고맙다는 말과 함께 감사의 말을 전했다. 돌아서는 아이들에게 '역사는 책이나 강의실이 아닌 이곳에 있습니다. 오늘 더 없는 역사 강의가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교수는 매년 틈틈이 학생들을 데리고 나눔의 집을 찾아왔다. 그리고 진지하게 안내를 듣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한홍구 교수와는 이렇게 만났다.

가해자 없는 피해자는 없다

한홍구는 기억 투사다. 기억과 기록을 파괴하려는 세력에 맞서 기억하고 기록하는 사람이다. 그가 기억 싸움을 하며 추진한 대표적인 일이 평화박물관 건립이다. 평화박물관 건립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명금, 김옥주 할머니의 기부금으로 시작됐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전쟁의 참상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경험했던 두 할머니는 다시는 자신들과 같은 전쟁 피해자가 없기를 바란다며 박물관 건립에 거금을 보탰다.

전쟁은 태평양전쟁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일어났으며 그 고통의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 아이, 노약자였다.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많은 후유증을 남기고 돌아왔다. 베트남 전쟁으로 상처받고 피해 입은 사람들, 사망한 사람들, 전쟁에 휩쓸렸던 사람들의 묻혔던 기억을 복원하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진상을 밝히고 기억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평화박물관은 지금까지 '춤추는 평화'와 같은 공연과 '시국선언전'(홍성담, 2013), '우당 이회영 전' 등 전시,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 강연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 왔다.

한홍구의 또 다른 기억 싸움은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사업이다. 해방 전후 민간인을 학살한 자, 공안사범으로 조작하려고 어두운 밀실이나 지하실에서 고문을 자행한 자, 형제복지원과 같은 인권유린에 부역한 자, 불공정한 재판에 관여한 자 등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후 국가권력을 동원해 내란, 부정선거, 학살 고문 및 조작, 각종 인권유린 등 우리 헌법의 가치와 정신을 파괴한 이들의 행적을 기록하는 작업이다.

내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거쳐 시민단체 '지금여기에'에서 아직도 바로 잡히지 않은 과거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을 하는 데에는 기억 투사 한홍구의 영향이 컸다.

지금도 어느 건물 옥상에서, 굴뚝에서, 톨게이트 지붕에서, 국회 의원회관 지붕에서 농성을 벌이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가 없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우리는 피해자의 반대편에 있는 가해자를 찾아내고 그들을 기록해야 한다. 그 일을 위해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한홍구에게 기사를 쓰겠다고 하자 그는 나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아휴, 스승은 무슨... 동지, 동지!"

추신) 한홍구는 평화박물관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사무처 활동가들과 갈등을 빚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의 지난 역사기록 사실에 상처로 남은 사건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그에 대해 글을 쓰는 이유는 과거를 올바로 기억하고 기록하려는 그의 노력만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태그:#한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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